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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 수도생활, 그리고 금욕생활

속세로부터 완전히 자신을 분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은둔을 선택하거나, 수도승이나 수녀의 삶처럼 독신생활을 주장할 것이다. 불교와 자이나교, 로마 가톨릭과 기독교 정교에서는 최고의 종교적 성직을 독신생활을 하는 승려, 수녀, 그리고 신부로 여기고 있다.
금욕주의는 힌두교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일생 동안 금욕생활뿐만 아니라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인생의 말년을 고독한 독신생활로 보내는 브라만들의 전통이 있다. 기독교의 수도원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여성에 대한 사랑보다 귀하게 여겨 청빈과 순결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이들에게 환경적 조건을 지원하기 위해 제도적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슬람에는 수도원 체제가 없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에 한 달 동안 이어지는 금식을 통해 폭넓은 금욕생활을 실천한다. 금식과 철야기도는 음식과 잠에 대한 육욕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과거에 영적 엘리트 소수자들만이 향유했던 전통적 수도원 체제와는 달리, 일반인들도 쉽게 행할 수 있는 금욕생활의 실천이다. 태국과 스리랑카의 젊은 남성 불교도들은 보통 가정을 꾸리기 전에 6개월 동안 수도원 훈련을 받는다.

육욕을 억제할 것을 강조하시는 문선명 선생도 몸 마음 통일을 이루기 위한 수도원의 수행은 높이 평가하신다. 독신생활을 하는 신부들과 인간 창조 시에 가정이상을 꿈꾸셨던 하나님의 이상 사이에는 분명 어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런 맥락에서 이 절의 마지막 부분에는 지나친 금욕적 삶에 대해 비판하는 몇 가지 구절들을 실었다. 이런 비판은 금욕을 실천하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지나친 금욕주의는 동정심이 결여된 인성으로 발전될 수 있다. 수도원 생활은 하나님이 경륜하시는 풍부하고 생산성 넘치는 사회와 결코 유비할 수 없을 것이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은 인간의 타락으로 잘못된 결혼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금욕과 독신생활을 강조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심정까지 언급하신다. 마지막으로 결혼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고 더 이상 독신 훈련이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과거의 독신생활은 고귀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종교가 독신생활보다 결혼의 가치를 더 고양시켜야 할 때가 도래했다. 변화하는 해수면의 높이는 수도원과 독신생활이 사라지고 있음을 암시하며, 이것은 모든 종교세계에서 감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