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언자의 사명
종교 경전
모든 공동체에는 예언자가 있노라. 그러므로 그들의 예언자가 오게 되면 그들은 공평하게 심판받을 것이며 그들은 잘못되지 않으리라. 그들이 말하길, 만일 너희가 진실을 말한다면 이 약속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말하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우가 아니면 어떠한 해와 이득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없노라. 모든 공동체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노라. 그들의 시간이 오면 그들은 한순간도 그것을 늦추거나 빨리 할 수 없노라.
꾸란 10.47-49 (이슬람)
내가 받은 여호와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아! 여호와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마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해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그러시고 여호와께서는 손을 내밀어 나의 입에 대시며 이르셨다.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준다.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헐어버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라.”
예레미야 1.4-10 (기독교)
칠일이 지난 다음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너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운다. 너는 나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을 듣고 나 대신 그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너는 못되게 구는 자들은 죽는다는 나의 선언을 그대로 전하여 깨우쳐 주기만 하면 된다. 못되게 구는 자에게 그 그릇된 길을 떠나 살 길을 찾으라고 일러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제 죄로 죽겠지만, 너도 내 앞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못되게 구는 자를 일깨워 주었는데도 그가 못된 생각과 그릇된 길을 버리고 돌아서지 않는다면, 그는 제 죄로 죽겠고 너는 죽음을 면할 것이다.”
에스겔 3.16-19
나는 온종일 어디든지 가서 여러분과 마주앉아 여러분을 깨우치고 타이르고 나무라도록 하기 위해 신이 이 나라에 붙여 놓은 그 등에 같은 사람입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31 (헬레니즘)
양심에 반하여 사는 것은 옳지도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부정할 수 없으며 또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할 몫은 여기까지입니다.
나의 주 하나님. 아멘.
마르틴 루터
말씀 선집
신이 성자나 선지자들을 지상에 보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이 바라시는 인격과 생활의 본을 보이면서 신의 참사랑의 뜻을 만민에게 교육하는 것입니다. 특히 위정자나 지도자들에게 천도를 교육하고 실천케 함으로써 마음의 세계와 몸의 세계가 신의 참사랑의 뜻을 중심하고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마치 양심이 원하는 대로 몸이 따르지 않듯이 많은 위정자들이 성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 가르침을 받지 않고 경고를 묵살해 왔습니다. 가치관의 혼란, 도덕적 부패, 마약 중독, 테러, 인종차별 등 현대사회의 참상과 병폐를 그 누가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정치가가 공권력에 의해서 이런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어느 때보다도 다원화된 사회, 또 국제적으로 서로 엉켜 있는 이 시대에 정치가들의 판단과 선택에 수반하는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이겠습니까? 위정자들이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는 겸허하게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천도를 따라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219-110, 1991.08.27)
이렇게 볼 때 이 세계에는 철학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언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민주주의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예언자들이 주장해서 나왔습니까, 철학자들이 주장해서 나왔습니까? 확실히 대답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분석해야 됩니다. 공산주의가 예언자에 의해서 제창돼 나왔습니까, 철학자에 의해서 제창돼 나왔습니까? 「철학자입니다.」 오늘날 세계인들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주장을 따라가지만, 우리가 그들의 주장을 완전히 믿고 아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철학자가 주장하는 세계는 날아가 버리고, 예언자가 주장하는 세계가 온다는 그 말입니다.
그러면 철학자는 어디에 있느냐? 대학에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언자는 어디에 있느냐? 종교에 있습니다. 그러면 예언자는 어디에 있느냐? 종교 믿는 사람 가운데에 있지 그 외에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좋아합니까, 학교를 좋아합니까? ‘학교입니다.’ 이런 망할 자식들! 그래 학교에 희망이 있습니까, 종교에 희망이 있습니까? 어디에 희망이 있습니까? 「종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의 유명한 하버드니, 케임브리지니, 옥스퍼드니 하는 대학들보다도 오히려 이름 없는 종교에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자라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학 박사가 많습니까, 무식한 사람이 많습니까? ‘무식한 사람이 많습니다.’ … 그것을 볼 때, 일반 사람이 보게 될 때 공부 많이 한 사람을 믿겠습니까, 공부도 안 한 무식한 사람을 믿겠습니까? ‘공부한 사람.’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은 그릇된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79-334, 1975.09.28)
교회가 가정의 갈 길, 씨족의 갈 길, 나라의 갈 길을 바르게 교육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과거의 모든 예언자들은 그 나라의 책임자를, 군왕이 잘못하면 군왕을 전부 다 끌고 갑니다. 항소해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라는 모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미래의 가정과 미래의 씨족과 미래의 세계의 백성으로, 시민으로 만들자 이겁니다.
(106-35, 1979.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