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세계로의 통로
죽음의 순간에 내생으로 가는 통로는 거의 투시할 수 없는 신비에 쌓여있다. 임상적인 죽음에서 되살아난 사람들에 의해 의사죽음의 체험들에 관한 서적들은 어떤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터널을 지나 다른 세계로 가는 것, 빛의 존재를 만나는 것, 아주 따뜻함을 느끼는 것, 사랑을 받는 것 등을 말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는 길의 첫 단계를 체험했을 것이다. 그 통로가 어떻게 끝나는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사후에도 무언가가 존속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죽은 사람들은 처음에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계속하여 스스로 의식적이고 지각력을 갖고 있는 존재인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죽음은 보다 고차적인 존재의 단계로 옮겨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번데기에서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것처럼, 그것은 새로운 몸을 입는 것이다. 편안한 자궁의 세계를 떠나야 하는 태아의 출생에 비유하여, 문선명 선생은 그것을 두 번째 출생이라고 부른다. 출생 전까지 자궁이 태아를 양육하지만 자궁이 파괴되고 태아가 지상의 삶을 위해 그곳을 떠나는 것처럼, 죽음 이전까지 육신은 영혼을 양육하지만 육신이 그 수명을 다할 때 영계에서 태어나기 위해 지상계를 떠난다. 그러므로 삶의 세 단계, 즉 자궁의 수중 세계, 지상 존재의 공기 세계, 사랑의 대기를 숨 쉬는 영계가 있다.
그러므로 죽음은 두려워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영혼의 생일로 기념되어야 한다. 핵심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 세계에서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는 영적 품성을 지닌 영혼을 합당하게 준비했는가 하는 점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랑하는 우리의 능력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