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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전쟁

죄악의 투쟁에서 일말의 타협이 없는 신앙이 살아있는 역동적 신앙이다. 최고선의 실현은 하나님의 방식을 고수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을 이슬람에서 ‘지하드(성전)’라고 부른다. 그중 하나의 차원은 악령과 이기적 욕망을 다스리는 내적 투쟁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영적 투쟁’이라고 부르고, 이슬람에서는 ‘위대한 성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회가 부정부패로 뒤덮여 있고 평화가 공격자에게 위협받는다면, 그 세계에서는 정의 편에 설 투사가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종교에서는 약자를 보호하고 공격자들의 악행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사랑의 외침으로 여기는 반면, 사회적 부정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죄로 다룬다.

자기 방어나 공격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히 총(무기)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고선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할 때 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사들의 임무는 세계 정의를 향한 것이기에 그 투쟁은 근본적으로 영적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의 적들이 갖는 적대감 배후에 악령의 ‘권력과 주권’이 작용하고 있다. 적진의 육신을 공격하여 승리하는 것이 반드시 그들의 내면적 원한까지 소멸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더 악화할 수 있다. 특히, 승리자들이 무자비하고 보복심을 가지고 대처했다면 더욱 그렇다.
이와 달리, 상대방의 내면적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악령은 자연굴복하고 퇴각할 것이다. 비록 적이 깊은 원한에 차 있어서 반드시 무력을 통해서만이 굴복시킬지라도, 진정한 승리는 적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교육할 때까지 확보되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영적 전사들이 가야할 길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의 실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들 자신을 희생하여—비록 그들이 거부하거나 비웃거나 심지어 핍박할지라도—원수의 복리를 위해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수를 향한 사랑은 오직 희생을 통해서만 명백히 드러난다.

마치 예수님이 그렇게 한 것처럼, 원수의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다면 죽음도 문제되지 않아야 한다. (제13장 '원수를 사랑하라' 참조) 어느 측면에서 영적 전쟁은 어떤 물리적 전쟁만큼이나 위험하기 때문에 영적 투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용기와 강한 의지가 요구된다. 문선명 선생의 전투의식이란 대부분 영적 전사로서 영적 투쟁의 길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