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
종교 경전
여호와는 자애롭고, 자비로우시며, 화를 참으시며, 사랑이 지극하시다. 여호와는 모든 것을 인자하게 보살피시고, 그 부드러운 사랑은 모든 피조물에 미친다.
시편 145.8-9 (기독교)
알라는 친절하며 친절한 자를 사랑한다. 알라는 깨끗하며 깨끗한 자를 사랑한다. 알라는 관대하며 관대한 자를 사랑한다.
무슬림 하디스 914.2(이슬람)
신은 모든 것의 원인이 아니라 좋은 것의 원인이다.
플라톤, 국가 2 (헬레니즘)
구제자 신 구원자 신 전능하신 그를 우리는 기쁘게 숭배하네. 강력한 신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간청되는 인정 많은 그가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리그 베다 7.100.4 (힌두교)
세계의 주님, 그분은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며, 그분은 나에게 일용할 양식과 마실 것을 주시며, 내가 병들었을 때 나를 치료해 주시며, 나의 생명을 앗아간 후 다시 생명을 주시며, 그리고 내가 바라건대 심판의 날에 나의 잘못을 사하여 주실 분이시다.
꾸란 26.78-82 (이슬람)
언제나 그는 창조만물을 소중히 여기시고 모든 이의 번영을 도모하도다. 주여! 당신의 은총은 실로 존귀하며 당신의 너그러움은 가없나이다.
아디 그란트, 키르탄 소힐라 M.1, p.12 (시크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으되, 인간이 감사하고 불신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라.
꾸란 76.3 (이슬람)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비추어 주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복음 5.45 (기독교)
천도는 편애하지 않는다. 항상 선의 편에 있다.
도덕경 79 (도교)
도는 만물 속에 있는 근원이다. 착한 사람의 보배이며, 또한 착하지 않은 사람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도덕경 62 (도교)
나는 육체적 존재가 아니다. 우주적 자비가 나의 성스런 몸이다. 내 힘은 육체에 있지 않고 공정함에 있다. 내게는 지혜가 주는 것 이상의 어떤 종교적 투시력도 없다. 내게는 평온한 행복감의 성취 이상의 기적은 없다. 내게는 관용의 실천 이외에 그 어떤 법칙도 없다.
스미요시 신사의 신탁 (신도)
말씀 선집
하나님은 희로애락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하는 분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슬플 때 위로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주인의 자리에 서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 삼고 볼 때 역사이래에 한 분밖에 없는 절대적인 부모라는 겁니다. 참사랑을 중심 삼고 절대적인 부모의 자리에 서 있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203-228, 1990.06.26)
하나님이 아무리 영원하시다 하더라도 거기에 내려감이 있고 세상과 하늘땅 앞에 손해를 준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원하는 영원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류, 혹은 피조세계, 존재세계에서 필요적절하고 가치 있는 내용을 언제나 보급해 주는 자리에서 영원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과거에도 필요했고 현재에도 필요하고 미래에도 필요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 그러한 내용이 우리에게 없다 할진대 그 영원한 하나님은 우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22-317, 1969.05.11)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기쁨입니다. 기쁨을 누리시고자 인간과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홀로 느낄 수 없습니다. 기쁨을 누리시려면 반드시 대상, 혹은 짝이 필요합니다. 주체와 대상이 서로 상대기준을 이루어 주고받을 때 비로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기쁨은 사랑을 주고받을 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대상으로 지으시고, 그 대상과 더불어 무한한 사랑을 주고받으시면서 영원히 기쁨을 누리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곧 창조목적이었던 것입니다.
(100-241, 1978.10.19)
우리 개인은 물론,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 중에 선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방향도 선을 지향하여 나왔으며, 교육자들이나 신앙인들도 선의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며 싸워 나온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것도 선을 위하여 태어나야 되겠고, 사는 것도 선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고, 죽는 것도 선을 위하여 죽어야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목적 뿐만이 아니라 인간생활을 엮어온 역사의 목적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24-13, 1969.06.22)
타락한 우리 인간은 어떻게 다시 선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느냐? 먼저 양심을 통하여 본체의 선을 닮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여 하나님의 본체의 선과 말씀의 가치를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피조만물을 지으신 선의 이상인 기쁨을 찾으실 것이요, 선의 목적을 지향해 온 인간들도 하나님의 선의 가치를 느끼는 선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2-321, 1957.07.21)
하늘나라의 이상적 인간이 어떤 것이냐? 그 문으로 어느 도적놈이 들어가거나 어느 누가 들어가도 마음대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세계의 별의별 살인강도라 하더라도 그 문으로 들락날락하는 것을 가만 둔다는 것입니다. 도적놈이 살더라도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판도권 내에 있다 이것입니다. 그건 내 소원권 내에 있는 것입니다. 물건을 가져갔더라도 그건 내 소유권 내에서 이동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천국에 담이 있어서 열쇠를 채우고 그러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224-328~329, 1991.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