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투쟁
현실적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내적 충돌 현상에 직면해 있다. 인간이 이러한 내적 모순에 사로잡혀 있는 한, 신성적 자아를 실현할 수 없으며 온전한 상태를 이룰 수도 없다. 역설적으로 세속의 삶에 빠진 인간은 뚜렷한 죄의식을 제외하고는 그들 내부의 싸움을 감지하지 못한 채 살아 갈 것이다. 반면, 양심적인 삶이나 종교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문선명 선생은 인간의 내적 모순은 인간 타락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가르친다. 그는 하나님이 그런 모순을 가진 인간을 창조할 리가 없으며,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선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인간도 완성을 이룰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간의 내적 모순은 타락으로 인해 인간성이 왜곡됐다는 증거다. 타락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의 투쟁도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종교 경전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내가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을 하는 장본인은 나 자신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죄일 것입니다.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선을 행하려는 의욕은 내게 있으나 나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행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선을 행하려는 내게 악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으나 내 지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 내 마음의 율법에 대항하여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가두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인간입니까?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로마서 7.15-24 (기독교)
나는 무엇이 선인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을 애써 행하지 않으며, 무엇이 악인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또한 그것을 금하려 하지 않도다. 마치 내 가슴에 어떤 거룩한 혼이 있어 나를 내몰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언제나 그렇게 행하느니 오호라, 나는 몹쓸 사람이로다.
마하바라타 (힌두교)
랍비 이삭이 말하였다. “사람이 악으로 기울기 쉬운 경향은 날마다 새로운 변화를 가지면서 사람을 괴롭힌다. 그래서 성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 차고 사람마다 못 된 생각만 하였다.’”(창세기 6:5). 그리고 레위의 아들인 랍비 시므온은 이렇게 말하였다. “악을 지향하는 마음은 날마다 사람에 대하여 항거할 강력한 힘을 모은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려고 애를 쓴다. 만약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악을 행하는 세력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분께 큰 축복이 있기를.”
탈무드, 키두신 30b (유대교)
천신, 인간, 아수라, 야차, 건달바, 그리고 일체의 중생들이 시기와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까닭에, 비록 그들이 “우리가 의좋게 미워하지 않으며 해치거나 악의를 품는 일 없이 살았으면” 하고 바란다 할지라도, 여전히 증오와 악의와 원한에 찬 마음으로 살아갈 뿐이다.
디가 니카야 2.276 (불교)
모든 사악은 목에 채워진 쇠사슬과 다르지 않다.
아디 그란트, 소라트, M.1, p.595 (시크교)
적과 적이 서로 치고받으며 싸우고 원수끼리 물어뜯으며 싸운다 해도 사악한 마음이 저지르는 해악보다는 그래도 덜하다.
법구경 42 (불교)
실로 하나님은 조금도 인간을 잘못되게 하지 않으시나 인간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도다.
꾸란 10.44 (이슬람)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마태복음 26.41 (기독교)
자신의 영원한 실재를 알고 자신을 욕되게 하지 말라. 자기 자신이야말로 자기의 벗이며 자기 자신이야말로 자기의 적인 까닭이다. 드높은 자아로 자기를 정복할 때 친구로서의 자아를 지니지만, 만일 스스로 영원한 자아의 실재를 그칠 때 자아는 실로 적과 같이 대항해 오리라.
바가바드기타 6.5-6 (힌두교)
예언자가 선포했다. “우리는 작은 성전(聖戰, 알 지하드 알-아스가르)에서 큰 성전(알 지하드 알-아크바르)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하나님의 예언자시여, 무엇이 더 큰 성전입니까?” 하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약한 자신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니라.”
하디스 (이슬람)
내 안에, 바로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악한 욕망과의 끝나지 않은 싸움에서 구해줄, 덕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남이 나를 유혹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안의 문제이다. 최상의 선 안에서 머무르고자 할 때, 육신과 영혼 사이의 갈등과 영혼이 싸우는 악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그러나 언젠가 죽는 인간의 삶 속에서는 그런 자유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도성 19.4
말씀 선집
사람은 본래 악을 피하고 선을 추구해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선한 세계를 세우고 악한 세계를 제거하기 위하여 언제나 달려가고 있지만, 그 반면 내 자신 속에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을 향하여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우리가 잘 느끼고 있습니다. 선한 마음을 강하게 들고 나오면 나올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악한 마음이 언제나 대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6-51, 1970.11.15)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욕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 본의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그 욕망이 선보다도 악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를 맺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심은 이러한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지향하려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본심이 지향하는 욕망을 따라 선을 이루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바로 도인들의 생활이지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본심대로만 살다 간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서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 3:10-11)라고 하였으며, 또 인간의 이러한 참경에 직면하였던 바울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2-24)라고 개탄하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선한 욕망을 성취하려는 본심의 지향성과 이것과는 반대로 악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사심의 지향성이, 동일한 개체 속에서 각기 상반된 목적을 앞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인간의 모순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내에 모순성을 갖게 될 때에는 파멸된다. 따라서 이와 같이 모순성을 가지게 된 인간 자체는 바로 파멸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모순성은 당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존재도 모순성을 내포하고서 생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러한 모순성을 지닌 운명적인 존재였다면 애당초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모순성은 후천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파멸상태를 일컬어 기독교에서는 타락이라고 한다.
(원리강론, 총서)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을 향해 달리려 합니다. 여기에 몸은 반항을 합니다. 몸은 자기만 편하고자 하고, 이기적이며, 본능적 요구에 따라 욕망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양심은 이 몸을 질책하여 마음에 순응케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항상 피나는 갈등과 투쟁이 한 몸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219-118, 1991.08.28)
지금 우리의 생명의 씨를 어디서 받았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받았습니까, 사탄에게서 받았습니까? 사탄에게서 받았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심은 사탄의 씨가 아니라 본연의 이상적인 생명의 씨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충이 벌어졌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 편에 서고 몸뚱이는 사탄 편에 서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몸 마음의 통일을 가져오지 않는 한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235-203, 1992.09.20)
인류역사에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 종교로 말미암아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육신을 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망했고, 육신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망했고, 육신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육신은 원수의 모태요, 죄악의 근본 뿌리라는 것을 절감해야 합니다.
(18-322, 1967.08.13)
나, 나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수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과 몸이 하나 못 된 것이 원수입니다.
(128-108, 1983.06.05)
이 몸뚱이는 사탄의 무대가 되어 있습니다. 몸뚱이는 사탄의 무도장이 되어 있고, 마음은 하나님의 무도장이 되어 있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몸 마음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혈통을 중심삼고 자연히 하나 되는 것입니다.
(235-203, 199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