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천적 생애를 통한 선의 개발
종교 경전
악한 일 멀리하고 선한 일 두루 증장하여 청정한 마음을 닦으라. 이것이 부처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법구경 183 (불교)
더욱 더함(益): 군자가 볼 때 선함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
역경 42 (유교)
항상 토라와 자선에 힘써라. 심지어 다른 저의가 있을 때조차도, 선행의 습관이 쌓여 결국 동기까지 선하게 될 것이다.
탈무드, 페사힘 50b (유대교)
지혜로운 사람은 차례차례 조금씩 자기의 때를 없앤다. 금 세공장이가 은의 때를 벗기듯이.
법구경 239 (불교)
꿋꿋한 인내와 다함없는 열망으로 참아 견뎌내며 자기를 닦는 지혜로운 이는 큰 물결에도 휩쓸리지 않는 섬이 된다.
법구경 25 (불교)
토라를 연구하면 정확한 사람이 된다. 다음은 열정을 갖게 되며, 열정을 넘어 청결함으로, 청결을 넘어 자제력으로, 자제력을 넘어 순결함으로, 순결함을 넘어 고귀함으로, 고귀함을 넘어 온순함으로, 온순함을 넘어 죄를 경계하는 사람이 되며, 다음은 숭고함으로, 숭고함을 넘어 거룩한 영혼으로, 거룩한 영혼 이후에는 영원한 삶으로 들어간다.
탈무드, 아보다 자라 20b (유대교)
청정한 제자들이 육신 안에 거하면서 바라보는, 눈부시게 빛나며 순수한 이 아트만은 진실, 고행, 바른 지식, 금욕의 끊임없는 실천에 의해 얻어진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3.1.5 (힌두교)
여러분은 열심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도록 하시오.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풍족해진다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있어서 쓸모없는 자나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5-8 (기독교)
들으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다. 그런데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 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별로 없는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곧 났지만 흙이 깊지 않아 해가 뜨자 싹은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 말라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자라 그 기운을 막아버리니 열매를 맺지 못했다. 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씨들은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가 삼십 배도 되고, 육십 배도 되고, 백배도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느냐? 씨를 뿌리는 사람은 곧 말씀을 뿌리는 사람이다. 길가에 뿌려진 씨라는 것은 말씀이 뿌려지기는 하나 그들이 그 말씀을 듣자마자 사탄이 와서 그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돌밭에 뿌려진 씨라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이긴 하나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후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라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나 세상살이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라는 것은 계속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더러는 삼십 배, 더러는 육십 배, 더러는 백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가복음 4.3-20 (기독교)
덕은 우리가 먼저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얻게 된다. 여러 기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먼저 그것을 함으로써 비로소 배워 알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을 지어 봄으로써 건축가가 되며, 하프를 연주해 봄으로써 하프 연주자가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옳은 행위를 함으로써 옳게 되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 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함으로써 용감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2.1.4(헬레니즘)
조심스럽게 적절한 행위규범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낮과 밤으로 본받아 따라하여 한순간의 태만이나 중지도 없도록 해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는 그것들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그것들을 따라할 필요가 없이도 우리 자신의 기준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주희(朱熹)
네가 습관을 들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을 실천하라. 그리고 네가 어떤 것을 습관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을 실천하지 말고 너 자신을 다른 것에 익숙해지도록 하라.
에픽테토스 (헬레니즘)
자기 수양을 오랜 기간 계속하게 되면 점차적으로 즐거운 정신으로 이끌어지게 된다. 즐거운 정신은 부드럽고 너그럽고 상냥하고 조화로운 것을 찾게 할 것이다. 이것을 바라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나쁜 감정을 제거하고 화를 없애야 하며, 반대를 불러오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역경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개인의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의 면밀한 조사는 점차적으로 이치(理)의 설명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완전한 이해는 다른 사람에게 공공연하게 그를 비판함이 없이 순순히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알게 할 것이다. 이것을 유의하는 사람은 누구나 견문이 넓어지고 영향력이 있게 될 것이며, 거절당해서 그리고 다툼 속에서 생겨나는 근심걱정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더더욱 적극적으로 사물의 이치(理)를 관찰하고 우리의 기본적인 감정을 조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일들에 대해 시간을 두고, 주의 깊게 생각해 보는, 자신의 지적 정신적 능력을 통해서 경험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행하면 편견과 허위의 잘못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모든 일들에서 항상 자신의 배움의 힘을 점검하는 것은 중요하다. 만일 어떤 장애물이나 잘못이 있다면 그 병폐를 발견하고 그것을 뿌리째 뽑아버릴 때까지 깊이 있게 규명하라.
주희(朱熹)
말씀 선집
선과 악은 미래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하루하루 시간에서 결정된다.
(뜻길, p.36)
마음, 생각 가지고는 선악이 결정 안 됩니다. 행동을 해야 선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행동 안 하는 열정 가지고는 죄로서 규명하지 못합니다. 나타나지 않으니까. 실체가 아니면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엇을 하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결정을 못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행동적 결과로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생각만 가지고 다 안다고 해야 그 세계와 나는 아무 관계없습니다.
(359-166, 2001.11.07)
여러분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냥 봐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보는 연습을 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한 번 들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음악에 대해 깊고 세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적 과정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말하는 것이 남보다 드러나고 특출하기 위해서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훈련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 쓰는 것,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명상이니 기도니 하는 것도 그것을 위한 하나의 수양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7-178, 1973.06.10)
이름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많이 닦고 만지고 수많은 연습을 했기 때문에 그 바이올린 통의 음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알고 하기 때문에 화음이 될 수 있는 음의 구조가, 그 자체의 세포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소리가 신비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기도는 뭐냐?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안테나를 꽂고 있어야 됩니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41-179, 1992.12.24)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선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느냐? 먼저 양심을 통하여 본체의 선을 닮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여 하나님의 본체의 선과 말씀의 가치를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피조만물을 지으시던 선의 이상인 기쁨을 찾으실 것이요, 선의 목적을 지향해온 인간들도 하나님의 선의 가치를 느끼는 선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전부 좌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320, 1957.07.21)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소(양성)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음성)의 두 요소가 수수작용을 하는 가운데서 성장한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으로부터 생력요소를 받는 반면에 그가 육신에게 돌려보내는 요소도 있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생령요소라고 한다. 인간이 신령에 접함으로써 무한한 기쁨과 새로운 힘을 얻어서 고질(痼疾)이 물러가는 등 그 육신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은 그 육신이 영인체로부터 생령요소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서만 성장한다. 그러므로 영인체와 육신과의 관계는 마치 열매와 나무와의 관계와 같다. 생심(生心)의 요구대로 육심(肉心)이 호응하여 생심이 지향하는 목적을 따라 육신이 움직이게 되면 육신은 영인체로부터 생령요소를 받아 선화(善化)되고 그에 따라 육신은 좋은 생력요소를 영인체에 다시 돌려줄 수 있게 되어 영인체는 선을 위한 정상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심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진리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리로 생심이 요구하는 것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해야만 생령요소와 생력요소가 서로 선의 목적을 위한 수수작용을 하게 된다.
그런데 생령요소와 생력요소는 각각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악인에 있어서도 그의 본심이 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그 생령요소가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그 요소도 육신의 선화를 위한 것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따라서 생령요소와의 사이에 있어 올바른 수수작용을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6.3.2)
몸 마음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교만하지 마십시오. 겸손 하라는 것입니다.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전부 몸뚱이를 치는 것입니다. 3년 이상 희생 봉사하라, 금식하라 하는데, 그거 인간이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245-58, 1993.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