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악은 마음의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종교 경전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오는데,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태복음 15.19-20 (기독교)
어찌 행위 그 자체에 선악의 분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다만 선한 의지로 행하여지는 행위를 선행이라 이름할 뿐이다.··· 영혼을 청정하게 하는 행위나 그로 말미암아 영혼이 청정하게 하는 행위나 그로 말미암아 영혼이 청정하게 되는 행위를 미덕이라 하니, 언제나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주느니라. 그러나 영혼이 선을 멀리 피해 달아나게 하는 행위는 악행이니, 그것은 다만 마음의 불안을 도모할 뿐이니라.
푸자파다, 사르바르타싯디 6.3 (자이나교)
손에 상처가 없다면
독을 손으로 만질 수 있으리라.
상처가 없으면 독이 그를 해칠 수 없는 것처럼
그릇되게 행하지 않으면 악도 그를 해칠 수 없다.
법구경 124 (불교)
말씀 선집
본래 선과 악은 한 점에서 출발되었는데, 그 한 점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26-282, 1969.11.10)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 자기를 분별해 보면 양심은 선한 입장에 있고, 육신은 악한 입장에 있습니다.
(227-46, 1992.02.10)
마음의 방향과 방법에 따라 선이 생겨나기도 하고 악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바탕이 어떤 방향과 방법으로 나가느냐에 따라서 선과 악이 갈라지게 됩니다.
(37-116, 1970.12.23)
전부 옳다는데, 그 중에 누가 선한 편이고 누가 악한 편이냐? 경계선이 있습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 이상의 것을 중심삼고 위를 위해서 보다 위하겠다는 사람은 선편의 자리에 서는 것이고, 자기를 위해 보다 낮은 것을 따라가겠다는 사람은 악 편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관직에 있는 사람이 나라를 위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선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선은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로부터 출발할 수 없습니다. 선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를 위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데서부터 선이 출발된다고 보지 않은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 하게 되면 자기를 중심삼고 출발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살려하고, 남을 위하여 노력하며, 남을 위하여 활동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생활하는 가운데서나 죽음에 임하는 자리에서 ‘저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라고 보편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선은 자리를 위해서 출발하는 자리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출발 하는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악은 무엇이냐?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 있어라. 모든 것의 출발은 나를 위해서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가 악한 자리입니다. 선과 악이 어떻게 분기선을 두고 엇갈리느냐 하면, 남을 위하고자 하는 데는 선이 머무는 것이요, 나를 위주로 하는 데는 악이 머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두고 보면 그 마음은 언제나 선한 마음으로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남을 위해서 봉사해라, 남에게 자애심(自愛心)을 가져라. 남을 위해 희생하라. 남을 위해서 살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이 가는 길입니다.
(65-13~14, 197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