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함의 실수
종교 경전
한편, 노아는 포도원을 가꾸는 첫 농군이 되었는데, 하루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 채로 천막 안에 누워 있었다. 마침 가나안의 조상, 함이 아버지가 벗은 것을 보고 밖에 나가 형과 아우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다.
셈과 야벳은 겉옷을 집어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어드렸다. 그들은 얼굴을 돌린 채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았다. 노아는 술이 깨어 작은 아들이 한 일을 알고 이렇게 말하였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형제들에게 천대받는 종이 되어라.”
창세기 9.20-25 (기독교)
말씀 선집
40일 심판이 끝난 직후의 노아의 입장은 천지창조 후의 아담의 입장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창조된 아담과 해와가 서로 얼마나 가깝고 허물한 것이 없는 사이였으며, 또한 얼마나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었던가 하는 것은, 창세기 2장 25절에 그들이 서로 나체로 있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한 후에 스스로 하체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나뭇잎으로 가렸었고, 또 하나님이 보실 것을 두려워하여 나무 사이에 숨었었다(창3:7). 그러므로 그들이 하체를 부끄러워했던 행위는 하체로 범죄하여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다는 정념의 표시요, 하체를 가리고 숨었던 행동은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범죄의식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40일 심판으로 사탄을 분립한 입장에 있었던 노아는 천지창조 직후의 아담의 입장에 섰어야 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나체로 있어도 그 가족들이 그것을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 숨으려 하지도 않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것으로써, 일찍이 죄를 짓기 전 어디로 가린 데 없이 들어낸 나체 그대로의 인간을 보시면서 기뻐하셨던 그 심정을 탕감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큰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노아로 하여금 나체로 누워 있게 하셨다.
따라서 함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아무 부끄러움 없이 노아를 대했어야 노아와 일체불가분의 뜻 가운데서 죄짓기 전 부끄러움을 몰랐던 아담가정의 입장으로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2.2)
노아 할아버지는 혼자 외로웠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데, 절대 신앙을 가졌지만 가정이 절대 심정일체가 안 됐기 때문에 다 깨져 나간 것입니다. 함도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사랑으로 일체가 되었으면 왜 그것을 부끄러워합니까? 심정이 일체 되었으면 벌거벗고 해도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벌거벗고 그 옆에 가서 낮잠을 자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부끄러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 안 된 것입니다. 심정 일체가 안 됐다는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 옆에 벌거벗고 같이 자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그걸 보고는 ‘야, 이놈의 아들, 나를 닮았구나!’ 하고 축복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268-294, 1995.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