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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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아를 적절히 계발하지 않는 이해는 근원에 이르지 못함

종교 경전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다가 넣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는 못 쓰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한다.
누가복음 5.37-38 (기독교)

처음에 그 말을 따라 그 도리를 헤아려 보면, 이미 일정한 법(방법, 典常)이 있다. 그러나 만일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면 도가 헛되이 행해지지 않는다.
역경, 계사전, 2.8.4 (유교)

마음속에 주인이 될 만한 것이 없으면 [도는] 거기 머물지 않고, 밖에 올바름이 없으면 도는 실행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에서 나가는 도를 밖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인은 나가지 않고, 밖에서 들어오는 도에도 주인 노릇할 만한 것이 안에 없으면 성인은 그것에 의거하려 하지 않는다.
장자 14 (도교)

보지만 베다의 말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 듣지만 그녀(베다의 말)를 듣지 못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이에게 그녀는 남편에게 잘 차려 입은 사랑스러운 아내 같은,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 보인다.
리그 베다 10.71.4 (힌두교)

너희는 이제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무슨 뜻을 지녔는지를 들어라. 누구든지 하늘나라를 두고 하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가에 뿌린 씨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자갈밭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또 가시덤불 속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땅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이야말로 열매를 맺되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결실을 낸다.
마태복음 13.18-23 (기독교)

상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천한다. 중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마음에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다. 하들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그것을 크게 비웃는다. 그들에게 비웃음을 받지 않는다면 도라 하기에 부족한 것이다.
도덕경 41 (도교)

말씀 선집

선생님도 가만 생각하니, 고생을 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그저 못살게 고생한 것이 뭐냐 하면, 결국은 마음 하나 크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뭐 딴 거 없습니다. 딴 거 없더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크게 해서 뭘 하느냐? 하나님이 들어와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발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발을 집어넣으려는데 발이 들어오지 못하게 딱 닫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왼발로 차는 것입니다. 이 발로 차는 것입니다. 자꾸 차다 보면 자꾸 늘어나는 겁니다. 자꾸 찬다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한 발이 들어가던 것이 두 발이 들어가고, 두 발이 들어가서는 손이 들어가고, 머리도 처넣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늘어나면 무척 큰 겁니다.
선생님이 우리 어머니를 보게 되면, 홀쭉하던 배가 애기가 있어서 열 달쯤 되면 자꾸 커집니다. 그거 무엇이 그렇게 늘어났다 줄었다.… 조그마한 자궁이 말입니다. ‘아휴, 사람 그거, 10파운드 가까운 아기를 물에 담고 크니 얼마나 잘 늘어나겠나?
내 마음 보따리는 그거보다 더 잘 늘어나겠지’ 생각해봤습니다. 자, 여자들의 자궁이 늘어나지 않아서, 애기가 있는 자궁이 늘어나지 않아서 죽는다고 생각해 봤습니까? 그런 것은 생각도 안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님과 같은 생명의 씨가 내 마음 보따리에 딱 떨어져서 자라기 시작하면 하나님만큼 클 텐데, 그렇게 큰 하나님을 포괄할 수 있는 내 마음 보따리가 안 되면 하나님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일 납니다. 사람도 큰일 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석 달쯤 자라다가 더 못 커서 유산이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자라다 말고 낙태할 수 있는 마음 보따리에 들어가겠습니까? 거기에 씨를 심겠습니까?
(110-326, 1981.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