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 : 하나님의 본질
종교 경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한일서 4.16 (기독교)
하나님의 자비는 모든 것을 포용하나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선을 베풀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은혜가 있게 하리라.
꾸란 7.156 (이슬람)
사랑함으로써 내가 누구인지, 나의 가장 내밀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진실로 알게 된다.
바가바드기타 18.55 (힌두교)
대자비심은 깨달음의 본질이다.
화엄경 입법계품 (불교)
주여! 당신은 간청의 유무와 무관한 구세자요, 까닭 없이 자비를 베푸는 분이며, 기도가 없을 때도 기꺼이 들어주시는 분이며, 관계가 없을 때도 정다운 친구이십니다.
비타라가스타바 13.1 (자이나교)
빛나지만 감추어진 참된 자아는 심장 속에 거한다. 움직이는 것, 숨 쉬는 것, 열리거나 닫혀 있는 모든 것이 참된 자아 속에 산다. 그는 사랑의 원천이며, 그는 생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 알려질 수 있다. 그는 인생의 목표이니, 이 목표를 실현하라.
문다카 우파니샤드 2.2.1 (힌두교)
사랑은 맨 처음으로 생겨났으니, 천상의 신들보다도 높고 조상이나 사람들보다 고결하도다. 오, 사랑! 그대는 모든 이의 장자요 지극한 권능이로다.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땅과 하늘 혹은 대양들과 거룩한 불의 너비보다 더 넓은 오, 사랑! 그대는 모든 이의 장자요 지극한 권능이로다.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 가운데, 오, 사랑! 그대는 선의 형상을 그대의 얼굴에 드러내 보이나니, 이 형상들이 우리의 가슴속으로 스며들게 하라. 모든 사악은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시라!
아타르바 베다 9.2.19-25 (힌두교)
선남자야! 자비는 위대한 브라흐마이니, 위대한 브라흐마가 자비요 자비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자비는 일체중생의 불성이로되 이와 같은 불성이 미망으로 덮인 까닭에 중생이 이를 보지 못한다. 불성이 자비요 자비가 곧 여래니라.
대반열반경 259 (불교)
법(달마)의 황소는 자비의 소산이며, 마음의 흡족함이 창조를 끌어안도다. 이를 아는 자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리니, 황소의 등에 지워진 짐의 무게가 실로 놀랍구나.
아디 그란트, 자푸지 16, M.1, p.3 (시크교)
인간의 아들아! 잊히도록 오래된 내 존재와 내 본질이 옛 영원 속에 가려진 채, 나는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알았노라. 그래서 내가 너를 창조하여, 네 위에 나의 모습을 새기고, 너에게 나의 아름다움을 계시하였노라.
바하울라의 숨겨진 말씀 아라비아어 3 (바하이교)
말씀 선집
사랑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사랑을 우주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랑을 영원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 삼아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모체입니다. 사랑의 모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모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자녀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형제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친척의 사랑, 민족의 사랑이 우러나왔습니다. 사랑의 갈래라는 것은 원줄기에서 뻗어나가는 가지나 잎과 같이, 물결이 파문이 되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먼 곳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감도의 차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50-267, 1971.11.08)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것이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의 원천입니다. 여러분이 영적 체험을 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24-325, 1969.09.14)
심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창조는 거기서 우러난 것입니다. 모든 이상도 거기서 우러난 것입니다. 모든 것의 완전한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완전과 완성은 거기서 우러나는 겁니다. 그것을 떠나서는 완전과 완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82-292, 1976.02.01)
하나님은 심정의 주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한히 기쁜 감정을 갖고 계시며 무한히 슬픈 감정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라고 해서 기쁘고 좋은 감정만 갖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슬프다면 인간들이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은 슬픔의 심정을 갖고 계시는 분입니다.
(11-89, 1961.02.12)
하나님이 왜 생겨났느냐 할 때 사랑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필요한 사랑이 됐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까지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논리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나 사는 하나님은 사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태어난 만물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의 세계에서는 자기를 위해서 산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303-287, 1999.09.09)
하나님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지식의 대왕이시고, 능력의 대왕이시며, 전지전능하십니다. 또, 무소부재하십니다.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분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다이아몬드인가? 그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황금, 보석인가?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있어서 ‘아이구, 나 사랑하니 좋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라 하면 입이 있겠지요. 입도 코도 있고, 눈도 귀도 있고, 손 발도 있고, 마음도 있고, 심정도 있을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라면 말입니다.
(142-31, 1986.03.03)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은 혼자로서는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절대로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 즉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인 것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심정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동기가 돼서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특히 이 기간에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닮은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민에 있어서 하나님은 영원한 무형의 내적 부모요, 완성한 아담 해와은 영원한 유형의 외적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135-11, 1985.08.20)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닮은 것과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과 닮지 않은 동물새끼하고 사랑하겠습니까? 닮은 것과 사랑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어떠하냐?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런 상대라면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신은 인격적인 신이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요소가 백 퍼센트 화합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의 소성에 있어서 전부가 화합할 수 있는 신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2-274, 1987.04.17)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로부터 찾아지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으면 못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최고의 귀한 것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상대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상대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상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을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위해 있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이라는 것은 위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태어나기를 어디에서부터 태어났느냐?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사랑이 기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어받은 생명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이념을 통해서 생명이 나왔기 때문에 생명에 앞서서 사랑이 먼저입니다.
사랑에 뿌리를 박고 인간의 생명이 흘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서 태어나 사랑에서 자라고 사랑의 상대를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1대라면 2대에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서야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듯 그 사랑을 체휼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43-310, 198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