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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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심정

종교 경전

내 아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그러나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바알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워 올렸다.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팔에 안아 키워 주고 죽을 것을 살려주었지만, 에브라임은 나를 몰라본다. 인정으로 매어 끌어주고 사랑으로 묶어 이끌고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에 비비기도 하며 허리를 굽혀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었지만, 에브라임은 나를 몰라본다.
호세아 11.1-4 (기독교)

육도 중생 살펴보니 빈궁하고 지혜 없어 생사의 길 잘못 들어 그 고통을 끊지 못해 다섯 가지 욕심과 쾌락에 탐착하되 모우가 꼬리 사랑하듯 탐욕 속에 갇혀 있어 눈도 멀고 소견 없어 큰 부처를 구하지 않고 고통을 못 끊으며 삿된 소견 깊이 물어 괴로움에 얽혔으니 이런 중생 위하여서 큰 자비심 내었노라.
법화경 2 (불교)

말씀 선집

여러분은 자기 자식 하나 교육시키는 것도 힘들지요? 그 자식은 자기의 피살을 이어받은 아들딸입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 마음이 통하여 같이 눈물 흘릴 수 있는 아들딸입니다. 아버지가 눈물 흘리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동할 수 있는 아들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도하고 육성하려면 지극히 어렵지 않습니까? 그것을 볼 때, 오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울어도 본체만체 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슬퍼해도 본체만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탄의 혈육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찬양합니다. 망하는 것을 보면 좋아하며 웃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인간을 놓고 지도하고 개척하고 개척의 방향을 가르쳐 주려니 얼마나 수고로우실 것이냐? 그러나 하나에서부터 백, 천, 만까지 위하시는 마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하나님에게 없었더라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섭리역사를 붙들고 나오실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42-257, 1971.03.21)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붙들어 복귀섭리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인과 아벨을 택하였고, 노아를 택하였고, 또 그 밖의 수많은 가정을 택해 세우셔서 복귀섭리를 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역사를 이끌어 나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정을 억제하면서 오늘 이 시간까지 참고 견디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참고 견디어 나오신 그 안타까운 심정을 느껴 하나님을 붙들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오늘날 이 땅 위에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만약 이 땅 위에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눈물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즐거움이 있었던 반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서러움이 온 천지만물을 덮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이때까지 참고 견뎌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사람, 또는 하나님의 서글픔을 같이하여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도 창조주의 체면을 잊어버리고, 창조주의 영광이나 권세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와 함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이런 사정에 사무친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239, 1958.05.18)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인간을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갖고 나오셨는가? 자기를 위하려는 마음을 갖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당장 죽어 마땅할 인간이요, 고통당해 마땅할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대해 마음을 다하는 입장에서 참음의 4천년 역사노정을 걸어오셨으며, 뜻을 다하여 4천년 동안 사탄을 분별하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변의 사랑의 마음을 갖고 4천년 동안 참아오셨고, 싸워오셨고, 사랑하여 오셨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78, 1956.05.27)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야, 이놈아, 왜 죄를 지었느냐’ 라고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죄지은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당신의 사정은 생각지 않고 인간의 사정을 알아주려는 하나님입니다. 슬픈 자에게는 슬픈 사정을 갖고 찾아오셨고, 고통 받는 자에게는 고통의 사정을 갖고 찾아오셨고, 억울하고 분통한 자에게는 억울하고 분통한 사정을 갖고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느 정도 사정을 통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환경 가운데도 그렇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심정을 갖고 찾아오셨습니다. 너는 나를 배반해도 나는 네 아버지라는 마음이 있기에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9-232, 1960.05.29)

아버님, 저희들은 고아와 같이 갈팡질팡, 목적도 방향도 모르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역사와 흐름에 따라 뒤넘이 치면서, 생명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밀리고 밀리면서 오늘까지 나온 불쌍한 모습들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반면, 이러한 저희들을 붙드시고, 저희들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도 몰랐사옵고, 사망권내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저희들을 찾으시기 위해 밤과 낮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수고해 오신 주인공이 계시다는 사실을 몰랐사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심정이 하늘과 땅을 통하는 것보다 귀하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5-337, 195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