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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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기적 욕망과 정념

종교 경전

이것이 고통의 뿌리에 대한 거룩한 진리, 곧 고성제이다. 재생으로 끌고 가는 것은 갈애(渴愛)요, 그것은 탐욕과 밀접하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또한 지금 저기서 펄펄 뛰는 쾌락을 구하느니, 이름하여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과, 존재에 대한 갈망과, 생성에 대한 갈망과, 비존재에 대한 갈망이 그것이다.
상윳타 니카야 56.11: 전법륜경 (불교)

욕망과 증오와 미혹은 사악한 자의 가슴에서 일어나 그를 해친다. 마치 대나무를 시들어 죽게 하는 열매가 그 대궁에 열리듯.
이티붓타카 45 (불교)

시험을 당할 때 아무도 “내가 당하는 시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고 말하지 마시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으시지도 않고 또 사람을 시험하시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 욕심에 이끌려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야고보서 1.13-15 (기독교)

무엇 때문에 여러분 사이에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의 지체 안에서 싸우고 있는 육욕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욕심을 내어도 자기 것이 되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시기해도 얻을 수 없으면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1-3 (기독교)

아르주나가 말했다. 오, 크리슈나여! 무엇에 내몰리어, 스스로 원치 않을지라도 악을 행하게 됩니까? 마치 무력으로 강요하듯이 우리를 내몰아 대는 것은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 격정에서 일어나는 욕망이 그것이며 분노가 또한 그것이니라. 알지어다! 이들이 만인을 위협하는 적임을. 불꽃이 연기에 휩싸여 가려지듯, 거울이 먼지로 더러워지듯, 태아가 자궁 속 깊은 곳에 막으로 덮여 있듯, 그와 같이 이 세계는 욕망으로 가려져 있나니 이는 지혜의 뿌리 깊은 숙적이니라. 이 영원한 적에 의해 모든 감각과 의근이 미혹에 허덕이며, 지혜는 가려져 있나니.
바가바드기타 3.36-40 (힌두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논어 9.17 (유교)

여자가 유혹물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아니, 그런 것이 아니야. 돈이 유혹물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토지가 유혹물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진짜 유혹물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다. 오, 주 구헤스와라여!
알라마 프라부, 바차나 91 (힌두교)

이 몸에 숨은 도적이 다섯이니 색욕, 분노, 탐욕, 집착, 이기심이 그것이라.
아디 그란트, 소라트, M.3, p.600 (시크교)

그물에 걸리듯 감각적 쾌락에 눈멀고 갈애(渴愛)의 덮개로 씌워져 죽음 그물의 아가리 속에 든 물고기처럼 스스로 삼가지 못한 이들, 그들은 늙음과 죽음의 여정에 몸을 맡긴다. 마치 젖먹이 송아지가 어미를 따라가듯.
우다나 75-76 (불교)

말씀 선집

우리 경계선 가운데 제일 위험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곁길로 가기 쉬운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살이에 있어서 무엇이냐 이겁니다. 가만히 한번 꼽아 봅시다. 그것은 외적과 내적으로 우리가 가를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 보게 되면 상대적 관계에서 무엇이 필요한 것입니까? 뭣인가 한번 꼽아 봅시다. 그게 뭡니까? 돈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엔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엔 무엇이냐 하면 권력입니다. 대개 이렇게 잡습니다. 그러한 돈이라는 것이 나를 잡아당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뭣 때문에 끌려가느냐? 내가 거기에 유혹받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내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것이 바로 욕심,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욕심이냐? 이 욕심은 나쁩니다. 나를 위한 욕심입니다.
(90-12, 1976.12.05)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욕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 본래의 의미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그 욕망이 선보다도 악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를 맺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심은 이러한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지향하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망의 어두움을 헤치고 생명의 빛을 찾아 고달픈 길을 더듬고 있는 인생이다. 옳지 못한 욕망을 따라가서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누려본 사람이 어디에 있었던가? 인간은 누구나 그러한 욕망을 채울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민하게 된다. 자식에게 악을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제자에게 옳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어디 있을 것인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심에서 오는 것이다.
(원리강론, 총서)

인간은 하나님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기뻐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시기 질투 교만과 같은 타락성으로 결함 있는 실체라면 어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기뻐하실 수 있겠는가?
(뜻길, p.194)

외적인 몸을 중심삼은 사랑이 내적인 마음을 중심삼고 이상적인 영원한 생명의 기원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여 나오는 역사의 결과가 빚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외적인 사랑, 즉 사탄의 사랑을 제거하고 거기에 본연의 내적인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아서 몸과 마음을 규합시켜야 됩니다.
(20-179, 1968.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