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타락성
종교 경전
하나님은 사람을 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전도서 7.29 (기독교)
미망과 카르마의 힘은 실로 악마가 내몬 것이니, 본래 청정한 사람의 마음이 온갖 사악함을 즐거워하도록 유도한다.
쿤다쿤다, 판차스티카야 38 (자이나교)
사탄이 말하였다. “나는 당신 종복 중에서 일부를 데려가, 그들을 방황케 하고 그들에게 그릇된 욕망을 심어줄 것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하나님의 참된 피조물을 변질되게 하리라” 하더라. 그러나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을 벗으로 택하는 자는 누구든 실로 명백한 손실을 맛보리라. 사탄은 그들에게 약속하여 그릇된 욕망을 심어 줄 것이나, 그의 약속은 기만에 불과하리라.
꾸란 4.118-120 (이슬람)
무시이래로 축적된 거짓된 감각으로 너의 마음이 병들고 미혹되어, 온갖 욕망과 집착과 나쁜 습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미혹된 마음에서 진아와 비아, 혹은 참과 거짓에 대한 자의적인 상념이 생사윤회의 영원한 흐름을 따라 일어났다. 이러한 그릇된 상념은 너의 본마음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감관이 만들어낸 이전의 거짓된 망상 때문에 그릇되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본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미혹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수능엄삼매경 (불교)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극히 작다. [사람은 천성으로 인의의 덕을 지니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천성의 인의를 내버리고 오직 군자만이 그것을 잘 간직한다.
맹자 Ⅳ.A.19 (유교)
사람의 마음은 세상 어떤 것보다도 거짓으로 가득 차 있고, 절망적일 정도로 부패해 있다. 누가 이런 사실을 알 수 있겠느냐?
예레미야 17.9 (기독교)
하나님께서 그분의 징표를 준 사람의 소식을 그들에게 낭송하여 전하라. 그러나 그는 그 말씀들을 흘려버리니, 사탄이 그를 유혹하여 방황하는 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이 뜻하신다면 하나님은 그를 들어 올릴 수 있었지만 그는 속세에 기울어 그의 욕망을 따랐음이라. 그리하여 그를 한 마리의 개에 비유하였으니, 만약 그대가 개를 내쫓아도 그 개는 혀를 내밀고, 그대가 그 개를 내버려두어도 그의 혀를 내밀고 있음이라. 이는 하나님의 징표를 믿지 않는 자와 같음이니….
그들은 마음을 가졌으나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가졌으나 이를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도다. 그들은 짐승과 같이 더욱 방황하게 되리니, 그들이야말로 부주의한 자들이니라.
꾸란 7.175-179 (이슬람)
한 점 신의 사랑도 불태우지 않는 저 사람, 나나크여, 알지라. 그의 속세의 옷은 개나 돼지의 그것보다 조금도 낫지 않음을!
아디 그란트, 샬로크, M.9, p.1428 (시크교)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더니 도리어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
이사야 1.2-3 (기독교)
자연이 인간에게 준 것 가운데 쾌락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 쾌락의 추구는 모든 신중함이나 억제를 넘도록 사람들을 부추긴다. 이것으로 조국에 대한 배신과 국가의 전복과 적과의 은밀한 소통이 생겨난다. 요컨대 쾌락의 욕망이 한번 감행해 보라고 인간들을 부추기지 않는 범죄나 악행은 없다.
키케로, 노년론 12 (헬레니즘)
인간의 본성은 물과 유사하다. 원래는 맑다. 만일 우리가 깨끗한 그릇에 물을 담는다면 물은 깨끗할 것이지만, 더러운 곳에 담는다면 물은 더러워질 것이다. 그것의 본래의 맑음은 항상 거기에 있지만, 일단 그것이 더러워지거나 탁해지면 그것의 맑음을 되찾기는 어렵다.
주희(朱熹)
저는 사악함이란 무엇일까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어떤 물질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악이란 주 하나님, 지고하신 당신을 배신하고, 저급한 것들을 향하며, 창자까지 빼버리고, 허영에 우쭐해하는, 그런 것이 팽배한 모습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론 7.16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가장 비속한 사람들은 선이나 행복을 쾌락과 동일시하는 것 같다(여기에는 얼마간의 근거가 없지도 않다). 그리하여 그들은 향락적 생활을 좋아한다. 그런데 생활 형태에는 세 가지의 두드러진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방금 말한 향락적 생활, 그리고 정치적 생활, 마지막으로 관조적 생활이 있다. 인류 대중은 짐승에 합당한 생활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들의 기호가 노예와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5 (헬레니즘)
말씀 선집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실현하시려는 인류역사의 첫날,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조상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류의 조상이 될 일남일녀(一男一女)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그 순간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지 못하고 악마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악마는 이기주의의 본산입니다.
(219-116~117, 1991.08.28)
타락된 인간은 만물보다 거짓된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다(렘 17:9).
(원리강론, 후편 서론 1.2.1)
여러분, 대양을 다니는 큰 배가 파손될 위험이 생기게 될 때, 그 배 안에 살던 쥐새끼들이 전부 닻줄을 타고 육지로 도망간다는 얘기 들어 봤습니까? 미물에 지나지 않는 동물도 미래의 자기 생사권을 가져갈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꼴뚜기 새끼와 같이 되었습니다.
(215-53, 1991.02.06)
내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완전히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한 번도 하나 된 적이 없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은 사랑의 세계에는 교육이 없습니다. 스승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스승입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벌써 아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우주가 떡…. 전부 우주의 축소체입니다. 다 아는 것입니다.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윤리 도덕이 필요 없습니다. 보십시오. 동물의 세계에 무슨 윤리 도덕 교육을 합니까? 자기들끼리 다 보호하고, 생리적으로 자기 족속을 연결시켜서 살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은 왜 그렇습니까? 타락했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62-223, 1987.04.12)
우리는 타락성을 갖고 있습니다. 타락성의 4대 조건이 무엇입니까? 교만과 시기와 혈기와 거짓입니다. 교만, 질투, 혈기, 거짓, 이것이 타락성입니다. 여러분도 그걸 벗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150-126~127, 1960.09.04)
타락성 본성이 생기게 된 근본 동기는 천사장이 아담에 대하여 질투심을 갖게 된 데 있었다. 그러면 선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된 천사장에서 어떻게 되어 사랑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인가? 원래 천사장에게도 그의 창조본성으로 욕망과 지능이 부여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천사장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오는 그것보다 크다는 것을 비교하여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 그에게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자동적으로 질투심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투심은 창조본성으로부터 유발되는 불가피한 부산물로서, 마치 빛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물체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완성되면 이러한 부수적인 욕망으로 인하여서는 결코 타락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욕망을 충당할 때 느껴지는 일시적인 만족감보다도 그 욕망을 충당함으로써 일어나는 자기 파멸에 대한 고통이 더 클 것을 실감하게 됨으로써, 그러한 범행은 감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락성 본성을 대별하면 넷으로 가를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천사장이 타락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담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그를 도리어 시기하여 해와의 사랑을 유린한데 있었다. 군왕이 사랑하는 신하를 그의 동료가 그 군왕과 같은 입장에서 같이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는 성품은 바로 이런 타락성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는 자기의 위치를 떠나는 것이다. 누시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하여, 천사세계에서 가졌던 것과 동일한 사랑의 위치를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가지려 하였던 불의한 욕망으로 인하여, 자기의 위치를 떠나 타락하게 되었다. 불의한 감정으로 자기의 분수와 위치를 떠나 행동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 본성의 발로인 것이다.
셋째는 주관성을 전도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을 받아야 할 천사가 거꾸로 해와를 주관하였고, 또 아담의 주관을 받아야 할 해와가 거꾸로 아담을 주관하게 된 데서 타락의 결과가 생겼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위치를 떠나서 주관성을 뒤바꾸는 데서부터 인간사회의 질서는 문란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 본성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넷째는 범죄행위를 번식하는 것이다. 만일 해와가 타락한 후에 자기의 범죄를 아담에게 번식시키지 않았다면 아담은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해와만의 복귀는 용이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해와는 이와 반대로 자기의 죄를 아담에게도 번식시켜 그를 타락케 하였다. 악인들이 동료를 번식시키려는 성품은 이와 같은 타락성 본성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원리강론, 타락론 4.6)
이제 모든 타락성 근성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먼저 소유권, 자기를 중심삼은 소유욕으로 출발하였고, 그 다음에는 거짓말을 하였고, 그 다음에는 부조리한 정조의 길을 갔고, 그 다음에는 모든 하늘의 것을 빼앗는 강탈의 길을 갔고, 그 다음에 아들시대에 와서는 죽이는 길을 갔습니다.
역사시대의 모든 독재자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거짓말 한 자요, 불륜적인 사랑의 길을 마음대로 행한 자요,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강탈한 자요, 모든 선한 사람을 마음대로 죽인 자들임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역사적인 오점의 길을 저희들은 가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사랑으로 소화시키는 하늘의 전통을 고이 이어받아 자기 스스로 싸우기를 원하옵니다.
(121-257~258, 1982.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