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하는 삶으로 보답하는 하나님과 자연과 조상에게 진 빚
종교 경전
인간은 모두가 신의 대물이다. 무엇으로 알고 쓰고 있는가?
친필 3.41 (천리교)
사람이 태어날 때 누구를 막론하고 신들과, 현자들과, 조상들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빚도 또한 함께 생겨난다. 그가 희생 제의를 바칠 때 그것은 관련 있는 신들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제의를 드리거나 공물을 마련할 때 그가 하는 행위는 바로 신들을 위한 것이다. 그가 베다를 낭송할 때, 그것은 관계있는 현자들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행위는 그들을 위한 것이다. 베다를 낭송하는 사람은 현자들의 보고를 지키는 수호자라고 일컬어지는 까닭이다.
그가 공물을 바치고자 할 때, 그것은 관계있는 조상들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다. 그와 같은 그의 행위는 그들을 위한 것이다. 이에 그들의 자손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가 집에 찾아온 이들을 기쁘게 할 때, 그것은 관계있는 사람들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가 손님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음식과 마실 것을 준다면, 그가 행하는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행하는 자는 참된 일을 하였으며, 그는 모든 것을 얻었고 또한 모든 것을 정복한 자이다.
사타파타 브라흐마나 1.7.2.1-5 (힌두교)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에 비길 수 있다.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몸과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랬더니 그 종이 엎드려서 무릎을 꿇어 애원하기를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였다.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 그를 놓아 주고 빚을 삭쳐 주었다.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기를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가두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간청하기에 내가 네게 그 빚을 다 삭쳐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마태복음 18.23-34 (기독교)
말씀 선집
생명이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본전을 다 찾자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가 본전을 전부 다 찾아가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만물이 전부 다 ‘내 것 다오’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생명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도 생명을 돌려 달라고 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부 내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는 빚더미 위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빚을 갚았습니까? 빚을 갚으려고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빚진 사람은 감사해야 합니다. 빚 준 사람이 달라고 하지 않고,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빚진 자가 빚을 탕감 받고서 자기가 빚 준 자를 빚을 갚지 않는다고 벌주는 사람을 도리어 벌하는 성경 말씀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빚진 사람으로서 빚을 갚으려니 할 수 없이 우리가 남을 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서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무조건 받았으니 남을 위해 무조건 넘겨주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93-193, 1977.05.29)
신앙자로서 제일 중요한 자세는 무엇이냐? 빚진 자의 자세입니다. 여러분, 빚져 봤습니까? 빚진 것이 없으면 빚을 좀 져 가지고 단련해 보십시오. 빚진 자의 수고가 어떻구나 하는 것을 알아보십시오. 빚을 갚지 못하는 자리에 서 보라는 것입니다. 정말 비참합니다. 한 푼이라도 빚을 지면 그 조건으로 멱살을 잡힐 수 있고, 근본적으로 인격을 부정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거기에는 인격이 없습니다.
(43.-108, 1971.04.25)
‘하나님, 걱정 마시고 합시다.’라고 권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지쳤습니까? 몸부림치며 나오신 그 하나님이 얼마나 지쳤겠느냐는 말입니다. ‘걱정 마소. 제가 해 주겠습니다’ 해야 말이라도 그게 좋습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도 ‘야, 그놈 그거 훌륭한 녀석이구나. 그 녀석 장래성 있는 녀석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펀드레이징 하러 나갈 때, ‘하나님, 오늘 장사 잘되게 해 주소’ 하는 이런 기도는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 오늘 백 불을 벌었습니다. 내 당신을 위해서 정성껏 벌었기 때문에 바치는 데도 정성껏 바치니 오늘날 역사상에 어떠한 사람들이 헌금한 것보다도 더 귀하게 받으십시오.’ 하면 하나님도 ‘음, 그 녀석 쓸 만한데’ 하며 좋아하는 것입니다.
(93-22, 1977.05.08)
하늘의 복을 받기 위해 너희는 무엇으로 그 값을 치르겠는가? ‘효자의 피 끓는 사랑으로 갚겠나이다!’ 해야 한다.
(뜻길 p.353)
아무리 초조하고 아무리 처량하고 아무리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는 저희들이라 할지라도 저희들보다 더 불쌍한 아버님이 계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앞에 저희가 제물이 되어 저희보다 더 불쌍하신 아버님을 위로해 드려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25-41, 1969.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