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덕적 행위의 자극으로서 하나님에의 두려움
종교 경전
오, 믿는 자들아!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분이 경외되어야만 할 만큼 그분에게 복종하고 그분에게 감사하며 그분을 기억하라. 귀의자로서 죽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꾸란 3.102 (이슬람)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잠언 9.10 (기독교)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만큼 하늘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라!
탈무드, 베라코트 28b (유대교)
“이 백성이 거룩하다고 하는 온갖 것을 거룩하다고 하지 마라.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떨지 마라.” 너희가 거룩히 받들어야 할 분은 만군의 여호와, 너희가 두려워하여 떨 분도 그분이다!
이사야 8.12-13 (기독교)
하나님은 최고의 말씀을 성서로 내려 보내 주셨느니라. 그것의 각 부분들은 서로 닮아 있고(보상의 약속으로) 짝으로(처벌의 경고로) 되어 있도다. 그것으로부터(그들이 그것을 읽거나 들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의 피부는 떨리지만, 곧 그들의 피부와 그들의 가슴은 하나님을 향한 염원으로 부드러워지노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이며, 이것으로 원하는 자를 인도하시느니라.
꾸란 39.23 (이슬람)
비구들이여, 두 가지 밝은 것들이 세상을 보호한다.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이 그 둘이다. 만일 이 두 가지 밝은 것들이 세상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마치 염소와 양, 수탉과 수퇘지, 개와 자칼의 경우처럼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이티붓타카 36 (불교)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이르렀다.
요한계시록 14.7 (기독교)
그날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이집트 군대로부터 건지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이 해변에서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그 큰 팔을 펴시어 이집트인들을 치시는 것을 보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
출애굽기 14.30-31 (기독교)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3.14-19 (기독교)
말씀 선집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범죄를 하게 되었던 것은 실상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어디까지나 관념적이요, 실감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성을 실감하는 자리에서 범죄한 인간은 부득이 지옥으로 보내질 수밖에 없는 천법을 안다면, 거기에서 누가 감히 죄를 범할 수 있을 것인가?
(원리강론, 총서)
아담과 해와가 완성기에 이르러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이전에, 즉 아직 10대 청소년일 때, 천사장은 해와를 꾀어 간음했습니다. 그리하여 천사장은 사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담 역시 타락한 해와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타락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바로 이렇게 불륜의 씨를 뿌림으로써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불륜의 관계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은 성적 타락의 희생자가 되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사회는 성경 속의 소돔과 고모라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불륜한 사랑을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를 두려워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징벌이 임박했습니다.
(201-206~207, 1990.04.09)
해와는 하나님의 천리 법도가 본래 아담이 남편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아담 품에 돌아가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피할 줄 알고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사랑을 중심삼고 공포와 자주성이 결탁되어 결국은 아담까지 사랑에 무릎 꿇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공포와 자기 주장하는 혈통의 역사가 이어져 끝 날에 와서는 개인주의 세계 판도로 망국지세계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256-230, 1994.03.13)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고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하체를 가렸는데, 오늘날 미국의 젊은이들은 공원에서 별의별 짓 다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복귀할 수 있는 가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회개할 마음은커녕 부끄러운 마음도 없다는 것입니다.
(95-149, 1977.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