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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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느 피조물보다 뛰어난 인간

종교 경전

하나님은 아담의 자손을 영광되게 하셨으며 땅과 바다에 그들을 옮겨 좋은 양식을 베푸셨으며 하나님이 창조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베푸셨노라.
꾸란 17.20 (이슬람)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창조했을 때, 그분은 당신의 구애받지 않는 주관 의지를 직접 작용시켜 인간에게 당신을 알고 사랑할 유일한 특성과 능력,… 전 피조물에게 기초가 되는 창조 충동과 기본 목적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능력을 베풀 것을 결정하셨다. 모든 피조물 개개의 내면적 실재에 그분은 자신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인 빛을 비추셨고, 그것을 그분의 한 속성인 영광을 받는 수혜자로 만드셨다. 그러나 인간 실재에는 당신의 모든 이름과 속성을 발하셔서 당신의 자아를 반사하는 거울로 만드셨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매우 위대한 은총, 매우 영속적인 선물의 수혜자로서 발탁되었다.
바하울라 저서의 낙수집 27 (바하이교)

인간 육신은 주 하나님 선의 계시이며 창조주의 섭리이다. 인간의 감각기관과 다른 이들이 배열된 방식을 살펴보면 육신이 분명 이성적 영혼에 일조하도록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 특유의 외양, 형태, 키 등을 보아도 분명하다. 이성을 갖지 않은 동물들의 몸은 땅을 향해 집착하고 있지만, 인간의 눈은 하늘을 향하며 직립 보행하도록 만들어졌다. 사물의 생각을 항상 위로 향하여 성찰하도록 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도성 22.24

실로 하나님은 하늘과 산과 대지에 신뢰를 보였으나 그것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거절했느니라.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하였으나 실로 그는 정직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였느니라.
꾸란 33.72 (이슬람)

인간은 세 혼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동물적 혼은 동물과 교류하고, 육체적 혼은 식물과 연결하고, 인간적 혼은 천사와 유대한다.… 인간의 기능인 이성적 혼은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기능이다. 그것 자체가 가장 고귀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기능은 예술품에 대한 감상과 미(美)에 대한 생각을 구성한다. 그것이 응시하는 것은 더 높은 세계를 향해 있고, 낮은 처소와 비열한 위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러하듯이 사람은 더 높은 삶과 주요한 물질에 속해 있으며, 먹고 마시기 위해 일을 하지 않음은 물론 사치와 성관계를 필요치 아니한다. 오히려 그것의 기능은 진실의 계시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
아비체나 (이븐 시나), 카티브 알 나자트 (이슬람)

인간은 신의 현현으로서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기에 인간 이상으로 존경받아야 할 존재는 없다. 지상의 모든 만물은 각각의 이름대로 본연의 모습을 지니며, 신이 인간을 위해 그리 하였음을 알게 된다. 무엇이든 만물은 자신의 근원이 되는 신을 잃어버리거나 정해진 법도로부터 어긋남이 없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깨달은 만큼 일하도록 창조되었다. 자신을 낮추며, 인간을 존경하며, 화내지 아니하며, 그릇된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며, 슬퍼하지 아니하며, 치우치지 아니하며, 자신의 본연의 개성을 발휘하기 위해 인간은 창조되었다.
기도 (피엘교단)

인간이란 참으로 오묘한 천지조화의 결과로구나! 이성은 얼마나 숭고한가! 능력은 얼마나 무한한가! 그 모습과 움직임은 얼마나 다양하며 감탄할만한가! 행동에서는 천사 같고, 이해력에서는 신과 같도다! 세계에서 완전한 아름다움이요, 걸작품이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Ⅱ막 ⅱ장

말씀 선집

인간은 동물과 무엇이 다릅니까? 사람이 귀하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육적인 사람이 아니고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것이 귀하다는 것은 육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이 높다면 육적인 것이 낮다는 것입니다.
(129-307, 1983.12.01)

그러면 사람과 원숭이를 비교해 봅시다. 원숭이와 사람은 근본이 다릅니다. 원숭이는 그저 낑낑대고 먹고 자고 새끼 낳는 것이 제일입니다. 원숭이가 고향의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어서 웁니까? 원숭이가 형님을 염려해서, 혹은 부모를 위해서 죽으려고 합니까? 그러면 사람은 어떻습니까? 종자가 다릅니다.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중심삼고, 더 큰 것을 중심삼고 소망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 자기보다 낮은 것을 소망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곧, 인간이 생겨날 때부터 신을 숭상해 왔습니다. 신을 숭상하지 않은 종족이 없습니다. 신을 생각하고 우리 인간이 보다 나을 수 있는 우주를 생각하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몇 천, 몇 만 단계가 지나도 안 되는 것입니다. 원숭이에게 그럴 수 있는 내용의 힘이 어떻게 가중해 들어가겠습니까?
(39-333, 1971.01.16)

하나님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울 때 하늘땅의 모든 환경을 대표한 그 가운데 중심으로 세웠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한 부분으로 세웠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되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주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숭이라든가 사자, 호랑이의 세계에는 없습니다. 인간세계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적인 인간이냐, 인간적인 인간이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동물적인 인간에 가깝습니까, 인간적인 인간에 가깝습니까? 지금 세상 인간은 어디에 가깝습니까?
(117-35, 1982.01.31)

인격자는 어떤 사람이 인격자냐? 밥만 잘 먹고 밥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인격자입니까? 예술이나 문학이나 시에 조예가 있어서 풍부한 감상을 하면서 산을 대하고 속삭이고 들을 대하고 속삭이고 흐르는 물을 대하고 찬양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인격자입니까?
(85-143, 1976.03.03)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오늘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영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영 중의 장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서는 원인을 통할 수 없고 원인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으로 말미암아 점령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이라는 것은 영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암암리에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인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32-137, 1970.07.05)

하나님이 사랑을 찾기 위해서 만물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의 대상 존재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주체로 되어 있느니만큼 그 주체 앞에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형태를 가진 물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형태라는 것은 그 주체의 성품에 반대되는 형태가 아닙니다. 모든 성품의 상대성을 지녀 가지고 사랑이라는 본질에 딱 들어맞을 수 있는 상대적 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 존재인데 사랑에만 맞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무슨 지식이나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이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고 피조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은 사랑으로 피조세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그 주인 앞에 첫 번으로 중심자리에 서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하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영장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상대적 사랑권을 빼버리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특유한 가치는 사랑의 특권을 지닐 수 있는, 온 피조세계를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첫 번으로 상대적 입장에 서서 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인연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빼놓으면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132-245~246, 1984.06.20)

사랑의 이상을 중심하고 볼 때, 동·식물세계에서는 사랑의 관계가 모두 번식을 전제로 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예외입니다. 인간은 부부사랑의 관계에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 된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인 인간이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갖도록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의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의 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282-213, 1997.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