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리 수행을 위해 속세를 떠난 붓다
종교 경전
부모가 그것을 원치 않아 눈물로써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고타마는 머리칼과 수염을 자르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사문의 길로 들어섰다.
디가 니카야 1.115 (불교)
샤카족의 왕은 현자 아시타로부터 왕자가 지복을 구하여 숲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를 염려하여, 왕자로 하여금 애욕을 탐닉하게 하여 출가할 뜻이 그에게 일어나지 않게 하려 했더라. 부왕은 곧 모든 신하들에게 분주를 내려 우의(羽儀)를 마련하라고 명하였다.
왕이 다니는 길을 다시 손보고, 또 여러 가지 더러운 것과 늙은이나 병자나 쇠약한 이나 빈궁에 괴로워하는 이들을 모두 치워서 태자가 그것을 보고 불쾌한 마음 일으키지 않게 하였다.
그 때에 정거천왕(淨居天王)이 갑자기 내려와 길 곁에 있으면서 쇠약한 노인의 형상으로 변하여 이 세상을 싫어하는 마음 우러나게 하였나니, 이에 태자는 그 노인의 꼴을 보고 놀랍고 괴이하여 어자(御者)에게 물었다.
“저 이는 어떠한 사람인가? 머리는 희고 등은 굽으며 눈은 어둡고 떨면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비틀 걸음 걷나니, 이는 그 몸이 갑자기 변함인가? 본래 받은 성질이 스스로 그러한가?”
어자가 마음으로 망설이면서 감히 진실을 말하지 못할 때, 이에 정거천왕은 신력을 부려 그로 하여금 참을 고백하게 하였다.
“빛깔은 변하고 기운은 허약하여 근심은 많은데, 즐거움은 적으며, 기쁨을 잊고, 모든 근(根)은 허물어지나니, 이것을 늙고 쇠한 모양이라 하나이다. 저 이도 본래는 어린애로서 어머니 젖으로 자라났으며, 소년 시절에는 장난쳤으며, 단정히 젊었을 때는 오욕을 즐겼나니, 그러나 세월은 흘러 몸뚱이 말라지고 지금은 늙음으로 허물어졌나이다.… 젊음으로 늙지 않음이 없건마는 온 세상이 알면서도 구하나이다.”
태자는 늙고 쇠함의 괴로움을 듣고 두려움에 온몸의 털이 일어섰나니, 마치 번개치고 천둥치는 소리를 듣고 뭇 짐승이 두려워 달리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두려움에 떨면서 길이 한숨 쉬네. “마땅히 빨리 수레를 돌려 돌아가자. 늙음은 닥치거니 이 동산 구경이 무엇이 즐거우랴.” [두 번째 성 밖 구경에서 왕자는 질병으로 신음하는 이를 보고 또한 큰 두려움 마음이 생겨 몸과 마음이 함께 떨리니, 마치 물결 속의 달과 같았네, 세 번째 성 밖 구경에서 마치 왕자는 마침내 슬퍼 한탄하며 따르는 시체를 보게 되었더라.]
왕자가 물었다. “이것은 어떠한 가마이기에 꽃과 깃발로 장엄하게 꾸미고 따르는 사람들은 근심하고 슬퍼하며 머리를 흩트리어 울부짖고 따르는가?” 하늘 신은 어자를 통해 대답하였다. “이것은 죽은 사람, 모든 근(根)이 무너지면 목숨이 끊어지고, 마음은 흐트러지고, 염식(念識)이 떠나며, 정신은 가고, 몸뚱이는 말라빠져 뻣뻣이 굳어 마른 나무 같나니, 일가친척과 모든 벗들은 은혜와 사랑이 본래부터 얽혔지만 이제는 모두 보기 싫어해 빈 무덤 사이에 가져다 버립니다.”
태자는 죽음이라는 이 말을 듣고, 슬프고 아픈 마음이 맺히어 물었다. “오직 이 사람만 죽는 것인가. 천하 사람이 다 그러한가?” “온 천하가 다 그러하나니, 대개 처음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어, 어른이나 어린이나 또 젊은이는 몸이 있고 무너지지 않는 것 없나이다.”
태자는 마음으로 놀라고 슬퍼하여 수레 앞 가로 나무에 몸을 엎치고 숨길이 끊어질 듯 탄식하였다. “세상 사람이 어이 이리 한결같이 잘못인가? 이 몸의 없어짐을 환하게 알건마는 그래도 생각 없이 함부로 놀려 하네. 마음은 말라빠진 나무, 돌이 아니거니, 일찍이 덧없음을 걱정하지 않았구나.” “수레를 돌려 돌아가자. 다시 이와 같이 놀 때가 아니니라. 목숨 끊겨 죽는 것이 기약 없거니 어떻게 마음대로 함부로 놀겠는가?”…
여러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제각기 마음대로 앉게 하시고 자신은 잠부나무 그늘에 단정히 앉아 바르게 생각하고, 모든 것의 나고 죽음과 일어나고 멸하며 덧없이 변하는 것을 관찰할 때, 마음은 안정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오욕은 구름인 듯 사라져 버렸네.
머트러운 생각이 있고 자세한 생각이 있는, 눈물이 없는 선에 들어가, 욕심을 떠나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삼매를 바로 받았도다. 늙음, 병, 죽음으로 무너지는 이 세간은 참으로 수고롭고 괴롭다. 몸이 맞도록 큰 괴로움 받건만,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늙음, 앓음, 죽음을 싫어하나니, 이야말로 큰 근심거리 아닌가? 나는 이제 훌륭한 법을 찾고 있거니, 마땅히 세상사람 같지 않아서, 스스로 늙음, 앓음, 죽음에 얽매이면서 도리어 다른 사람 미워하지 않으리라.…
왕자는 단정히 앉아 깊이 생각하다가 곧 바른 법에 대한 생각을 얻었나니, 마땅히 어떠한 방편을 지어 소원대로 길이 집을 나갈 수 있는지 생각하였다.
아슈바고샤, 불소행찬 3-5 (불교)
그런데 그 때 마가다국의 고귀한 가문의 훌륭한 젊은이들이 세존의 가르침을 받으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경멸하고 비난하며 이 사실을 널리 퍼뜨렸다. “저 은둔자 고타마는 우리를 무자식으로 만듦으로써 잘 살아가고 있다. 저 은둔자 고마타는 우리를 과부로 만듦으로써 잘 살아가고 있다. 저 은둔자 고마타는 우리의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고도 잘 살아가고 있다. 이제 또 누구를 꼬여내 갈까?”
비나야 피타카 1.43 (불교)
어느 때 석가모니 부처께서 코삼비 마을에 머물고 계셨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그를 원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악한 자를 뇌물로 꼬여 부처에 관한 거짓된 이야기가 온 동네에 두루 퍼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일이 있자 그의 제자들은 탁발 걸식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고 온갖 학대가 뒤따랐다.
아난다가 부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마을에 더 이상 머물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나이다. 우리가 머물 수 있는 훌륭한 마을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나이다. 이 마을을 하루 속히 떠나는 것이 좋을 듯하나이다.”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아난다야, 다른 마을도 이와 같다면 그때는 어찌할까?” “그러면 우리는 또 다른 마을로 옮겨갈 수 있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아난다야, 그와 같은 길에는 끝이 없으리라. 차라리 여기에 그대로 남아 학대와 비난이 잠잠해질 때까지 참아 견디는 편이 나으리라. 그런 연후에 우리가 다른 마을로 가도록 하자. 세상에는 득실이 있고 비방과 명예가 있으며, 찬사와 학대가 있고, 고통과 즐거움이 있느니라. 그러나 깨달음을 연 자는 이러한 바깥일들에 끌려 다니지 않느니라. 순식간에 다가오는 세상일이니, 또 순식간에 우리를 떠나리라. 공연한 일로 걱정하지 말거라.”
법구경소(불교)
말씀 선집
석가 같은 양반도 마찬가지입니다. 출가해서 참의 도리를 찾아 모든 것을 극복해 나서면서 세계 인류와 더불어 살고 공의의 법도인 천륜을 세우려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겠다고 고독단신으로 나선 것입니다.
그 걸음 앞에는 개인의 눈물바다가 막고, 가정의 눈물바다가 막고, 나라의 눈물바다가 막고, 인류의 눈물바다가 막고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도의 길을 찾아 가는 성인의 걸음은 가장 비참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101-151, 1978.10.29)
육신의 낙을 즐기는 속인의 기쁨은 청빈을 즐기는 도인의 기쁨에 미칠 수 없으리라. 왕궁의 영화를 버리고 마음의 보금자리를 찾아 정처 없는 구도의 행각을 즐긴 것은 비단 석가뿐이 아닐 것이다.
(원리강론, 총서)
석가는 어떤가? 왕자의 자리를 버렸기 때문에 왕족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그 왕족을 숭배하는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258-87, 1994.03.17)
성인치고 그 나라에서 핍박 안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인도의 석가는 그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인생은 고해라 하며 진리의 길을 찾기 위해 왕자의 자리도 버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불교가 인도에서 나왔지만 인도에는 불교인이 많지 않습니다. 성인치고 그 나라로부터 대접받은 성인은 없습니다. 성인을 대접해 준 나라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핍박을 했습니다.
(39-255~256, 1971.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