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의 고결한 목적
종교 경전
창조자는 탁월한 형식, 법칙을 투사했다. 이 법칙은 군주를 통제하는 자이며, 따라서 그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그래서 심지어 약한 사람도 마치 우리가 왕의 도움으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 법칙을 통해 강한 사람을 쳐부수고자 희망한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1.4.14 (힌두교)
군주와 장관으로써, … 그대는 법을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서, 이로 말미암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되 오직 문왕(文王)의 경건함과 조심함으로 하여 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말하기를 “나는 문왕의 수준에 미침이 있다”고 한다.
서경 5.9.3.8 (유교)
참된 심판에 수긍하는 자가 하나님의 동업자이다.
메킬타, 출애굽기 18.13 (유대교)
임금이 정의로 다스리면 나라가 튼튼히 서지만.
잠언 29.4 (기독교)
만일 형벌이 합당한 고려 후에 적절하게 가해진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나 숙고 없이 형벌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파멸시킨다.
만일 왕이 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을 벌하는 데 게을리 하면,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마치 쇠꼬챙이에 꽂힌 물고기처럼 불에 구워 버린다. 그러면 모든 위계가 무너질 것이며, 형벌과 관련된 실수의 결과로 모든 사람들이 서로 격노할 것이다.
그러나 검은 색조와 붉은 눈을 지닌 형벌이 죄인들을 멸하며 감시하고 있는 곳에서는, 그것을 부과하는 자가 잘 분별하는 한 백성들이 혼란에 빠지는 일이 없다.
마누법전 7.20-25 (힌두교)
악행과 선행을 분별하고 업의 결과들을 보여주는 이, 그는 왕이라 불리네. 신들의 무리에 의하여 축성되었으므로 그 신들이 그를 두고 기뻐하네. 자신 또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자기 나라의 의로움을 보존하며, 자기 영토에서 악한들과 범죄자들을 징벌하는 그와 같은 왕은 만일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명과 왕국도 포기하리라.
금광명경 12 (불교)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로마서 13.8-10
마르둑이 나에게 사람을 바르게 안내하고 땅을 감독할 것을 위임하였을 때, 나는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그 땅의 언어로 된 법과 정의를 제정했다.
함무라비 법전
법률이란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선인들이 서로 우의를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자 그들을 위해 제정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가르침을 거부하여 이를 따르지 않으며 마음이 부드럽지 못하고 죄악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하는 자를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플라톤, 법률 9 (헬레니즘)
자기 안에 있는 신적 분별력에 의해서 지배받는 것이 모두를 위해 낫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외부에 의해서라도 그렇게 되는 것이 더 좋은데, 이는 가능한 한 모두가 동일한 것에 의해서 인도됨으로써 닮게 되고 친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이의 협력자인 법의 취지가 그런 것임이 분명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다스림도 그러하여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통치체제를 확립하게 되기까지는, 그래서 그들 안에 있는 최선의 부분을 우리한테 있는 최선의 부분에 의해 보살핀 다음에, 그 아이 안에 우리 것을 닮은 수호자와 통치자를 우리가 대신 들여앉히게 되기까지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되도록 허용하지 않다가 그렇게 되고서야 자유롭게 되도록 우리가 허용합니다.
그런데 몰래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고서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어떻게 해서 이익이 됩니까? 그러고서도 발각되지 않은 자는 한결 더 사악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반면에 발각되어 벌을 받은 자의 야수적인 부분은 잠들어 순화되는 한편으로, 그의 유순한 부분은 자유롭게 되어 그의 혼 전체가 가장 훌륭한 그 본성으로 돌아가서 지혜와 절제 그리고 정의를 얻고 가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것….
플라톤, 국가 9 (헬레니즘)
지혜로운 자는 언제나 자유롭다. 그는 언제나 명예롭다. 언제나 법의 주인이 된다. 법은 정의로운 자들이 아니라 부정한 자들 때문에 만들어졌다. 의로운 사람들은 마음속에 계명을 새긴 채로 주의 법을 따르며, 늘 마음에 그 법을 품고 다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법 자체가 되며 굳이 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자유롭다. 바라는 대로 행하는 자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모든 바람이 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오직 선한 것만을 바란다. 그는 선만을 택하고 악을 증오한다. 선한 것만 택하기 때문에 그가 곧 자기 선택의 주인이며 스스로 자기의 할 일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는 자유롭다.
밀라노의 암부로시우스, 서신 54 (기독교)
말씀 선집
법이 뭐냐는 것입니다. 자체적으로 보호되어진 것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 법입니다. 우주법이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형태에 박자를 맞춰서 국가법도 그 적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준법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18-198, 1982.06.01)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국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선을 지탱하기 위한 목적에서 법을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의 헌법을 보나 국가 관리 체제의 법을 보더라도 전부 다 좋을 수 있는 면을 옹호하기 위해서 되어 있지, 이것을 파괴하기 위해서 만들어져 있는 법은 없습니다.
만약 이 원칙에 어긋나게 될 때는 어떻게 됩니까? 어느 나라에나 감옥이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제재를 합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주권자에 따라서 선의 기준이 달라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모든 선한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양심은 제일 선한 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양심은 무엇이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자기 주체성을 지니고 자기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216-306, 1991.04.15)
국가의 형성이라든가 국가의 법은 그것을 지주로 하고 그 외의 것을 제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주로 하고 외적인 육을 중심삼은 모든 것은 전부 다 제재예요. 가면 갈수록 좁아지는 것입니다.
(105-15~16, 1979.07.08)
순수한 양심에 일치될 수 있는 보편적인 사회체제를 형성하려니 법령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인륜은 어디에 근거를 두느냐? 천륜에 근거를 두는 것입니다.
(33-44, 1970.08.02)
좋고 나쁜 것은 언제나 경계선이 있어야 됩니다. 미국도 헌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좋고 나쁜 것의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런데 공적인 일을 제재하는 그런 법은 없습니다. 공적인 것은 얼마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무한정으로. 그것을 제재하는 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든지 환영한다 그 말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중심 삼은 제안은 ‘하지 말라, 하지 말라’ 제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을 때 법이 문제시합니다. 자기 욕심을 중심 삼으면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파괴하는 것입니다. 파괴하는 것을 문제시합니다. 공공건물을 파괴하는 것은 전부 다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해 가지고 아프게 상처를 주는 것도 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111-239, 1981.02.22)
법이 세워지면 법대로 해야 됩니다. 하늘나라 가정의 법이 없었고, 하늘나라 종족의 법이 없었고, 하늘나라 국가의 법, 가정의 법, 종족의 법, 민족의 법, 국가의 법이 없습니다. 헌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를 전부 내버려놓고 자유분방하게 해서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손을 못 대고 나온 이유입니다.
사탄이 주인 돼 있으니까 하나님이 찾아오려고 해도, 그 질서의 원칙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이것은 안 되었으니 이것은 이리 속한다고 가릴 수 있는 법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제멋대로 산 사람들은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356-315, 2001.10.22)
타락은 악이 먼저 출발하여 올라간 것이므로 악을 끌어내리고 선을 끌어올리는 작전을 해야 됩니다. 이 작전을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걸 알아야 됩니다. 먼저 교만을 때려잡아야 됩니다.
타락은 하나님을 제쳐놓고 자기가 높아지고자 한 데서 되었습니다. 사탄의 본성이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높아지겠다는 것, 환경이야 어떻든, 질서야 어떻든, 법도를 무시해 버리고 자기만을 주장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거기에는 의리도 없고 법도도 없습니다.
법도를 따라 법대로 사는 사람을 어떻다고 합니까? 그렇게 사는 사람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정직은 바를 정(正)과 곧을 직(直)입니다. 바르고 곧다, 똑바르다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똑바른 것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은 무엇으로 가르느냐? 법으로 가르는 것입니다. 교만은 법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법도를 무시하고 위치와 환경을 무시하며 행동하는 것을 꺾어 놔야 합니다. 교만을 제어하고 겸손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37-130, 1970.12.23)
하늘나라의 헌법은 뭐겠습니까?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힘, 사랑의 생명력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헌법의 일종인데 이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법이 활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11-171, 1981.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