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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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상생활 방식대로 사는 천상생활

종교 경전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감히 또 묻겠습니다. 죽음은 어떤 것입니까?”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논어 11-11 (유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8.18 (기독교)

사람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지은 업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자신을 만들어 간다. 그가 이생을 떠날 때 바로 그와 같이 되리라.
상카라, 베단타 수트라 1.2.1 (힌두교)

고행을 행하며, 청정계율을 닦아 구족하는 자는 이승에서나 저승에서 모두 훌륭한 과보를 얻으리니, 살아서는 영예를 얻고 죽어서는 또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죄악을 탐닉하는 자의 삶이나 죽음은 모두 악한 과보를 얻나니, 살아서는 원한을 쌓고 죽어서는 어둠 속에 내던져진다.
다르마다사가닌, 우파데사말라 443-44 (자이나교)

악한 짓을 일삼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근심한다. 스스로 지은 더러운 행업을 보고 그는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선한 일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기뻐한다. 스스로 행한 청정행을 보고 그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 못된 짓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고통당한다. “내가 못된 짓을 저질렀구나” 하고 뉘우치며 괴로워하고 지옥에 떨어져 거듭 괴로워한다. 선한 일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행복하다. “선한 일을 했구나”라고 여기며 기뻐하고 좋은 세상에 태어나 거듭 행복하다.
법구경 15-18 (불교)

하나님은 지상에서 해악을 구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자를 위해 내세의 안식처를 마련하셨도다. 축복받은 종말은 악함을 멀리하는 자들을 위해 있느니라. 선행을 실천하는 자, 그들은 그 이상으로 보답을 받게 되며, 악행을 행하는 자는 단지 그들이 행한 것으로 징벌을 받으리라.
꾸란 28.83-84 (이슬람)

말씀 선집

생애의 가치적인 내용이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하면 생애를 다 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삶의 그 날들이 결정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197-186, 1990.01.14)

여기서 그렇게 살던 사람이 저 세계에 가서 갑자기 변할 수 없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타고난 성격은 고치기 힘든 것입니다. 저 나라에 가 있는 영인체는 지상에서 살던 것과 갑자기 달라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살던 그 모양 그대로 수확되어 가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모든 영인체는 결국 지상에 살던 사람들의 영인체입니다. 그렇게 보게 되면 오늘날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별다름이 없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141-268, 1986.03.02)

영인체의 모든 감성도 육신생활 중 육신과의 상대적인 관계에 의하여 육성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지상에서 완성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해야만 그 영인체도 육신을 벗은 후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영인체의 모든 소성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형성되기 때문에 타락인간에 있어서의 영인체의 악화는 육신생활의 범죄행위에 유인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 영인체의 선화도 또한 육신생활의 속죄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진다. 죄악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지상에 오셔야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에서 선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따라서 구원섭리의 제 1차적인 목적이 지상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문의 열쇠를 지상의 베드로에게 주셨고, “땅에서 매고 푸는 대로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린다.”(마 16:19)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6.3.2)

여러분의 습관성을 어떻게 타도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사탄세계에서 자기 중심삼고 ‘내가 잘나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습관성을 지니고 살았는데, 그 습관성이 고질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고착되어 버린 그 습관성이 김치 된장 고추장 습관성보다도 더 하겠습니까, 약하겠습니까?
이것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악마가 출발한 그날부터 뿌리가 박힌 이러한 전통적 습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빼 버리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원리를 배웠다고 큰소리 말라는 것입니다.
구덩이를 파고 뿌리까지 묻으려 해도, 이것이 내 키보다 더 커서 저 나무에 올라가서 빼려고 해도 못 뺄 정도로 긴데 앉아 가지고 뺐다고 큰소리를 하겠습니까? 이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늘나라에 갈 자신 있습니까? 하늘나라에 가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전통적 습관성이 있어야 됩니다.
(213-20.1991.01.13)

일생동안 하늘 뜻을 위하여 얼마나 살았느냐가 천국에서 그의 자리를 결정한다. 고로 천국 가고 안 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잘 안다. 먹고, 자고, 좋고, 나쁘고, 오고, 가고 하는 것이 무엇을 위하여 하였느냐에 의하여 천국 가고 못가는 것이 결정된다.
(뜻길,p.167)

위해서 존재한다는 원칙으로 구성된 세계가 인간이 바라는 천국이라고 여러분이 단적으로 알아도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곳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어차피 그곳에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우리는 나그네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생을 두고 문제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해서 살았느냐, 남을 위하는 생활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에 따라, 남을 위해 산 것이 크다 할 때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요, 그 반대가 되게 될 때는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죽어 보면 알 것입니다.
(74-51, 197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