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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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푸는 길과 그 보답

종교 경전

너희가 좋아하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 때 너희는 진정한 신앙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너희가 베푸는 자선이 무엇이든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시도다.
꾸란 3.92 (이슬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사도행전 20.35 (기독교)

관대하게 주는 자, 그는 곧장 신들에게 간다. 그는 천계의 높은 산마루 위에 고귀하게 서 있다.
리그 베다 1.125.5 (힌두교)

이득을 바라는 생각으로 베풀지 말라. 너희 주님을 위하여 인내하라.
꾸란 74.6-7 (이슬람)

사람이 부드러운 땅을 걸어가려면 먼저 땅 위에 찬물을 부어야 한다.
요루바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인심이 후하면 더욱 부자가 되지만 인색하게 굴면 오히려 궁해진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어야 풍부해지고 남을 대접해야 저도 대접을 받는다.
잠언 11.24-25 (기독교)

실로 불쌍한 자는 천계에 갈 수 없다. 어리석은 자는 자유를 찬양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보시를 좋아하므로 저 세상에서 복락을 누린다.
법구경 177 (불교)

재물이 모이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들이 모이는 것이다.
대학 10.9 (유교)

적게 뿌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 각각 마음이 정한 대로 하고 아까워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모든 은혜를 풍성하게 하셔서 모든 일에 언제나 여러분을 충족하게 하시며, 온갖 선한 일을 넘치도록 행할 수 있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고린도후서 9.6-8 (기독교)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다른 이와 베푸는 보시의 도를 보고 그를 도와 크게 기뻐하면 또한 복의 과보를 얻으리라.” 어떤 사문이 물었다. “그 복은 장차 줄어지지 않겠나이까?”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그것은 횃불과 같아서 수천 사람이 각기 횃불을 가지고 와서 그 불을 붙여 가서 음식을 익혀 먹거나 어둠을 밝히더라도 그 본래의 횃불은 전과 같은 것이니, 그 복도 그와 같느리라.”
사십이장경 10 (불교)

말씀 선집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우리 인간들의 사랑의 본질이 다르겠습니까, 같겠습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같은 것은 같은 건데 하나는 주고자 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는 주체적 사랑이요, 하나는 대상적 사랑입니다.
(130-118, 1984.01.01)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부터 참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25-15, 1992.01.01)

선한 것은 무엇입니까?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는 무엇을 줘야 되느냐? 제일 나쁜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옷 짜박지를 주는 것이 아니며, 먹다 남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생명뿐만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사랑까지 줘야 됩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며 사랑을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4-246,1970.09.13)

우주운동의 발생은 주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모든 이론적인 기반에서 이 운동을 수수작용이라고 합니다. ‘수수작용’이라는 말은 ‘받고 주는 것’입니까, ‘주고받는 것입니까?’ 주고받을 때는 뿌듯하지만 받고 못 주면 창피한 것입니다.
(239-223, 1992.11.25)

나 자신을 중심 삼고 볼 때 받고 싶습니까, 주고 싶습니까?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일원리에는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수수작용에서 ‘줄 수(授)’가 먼저입니까, ‘받을 수(受)’가 먼저입니까?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줍니까,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줍니까? 부모가 먼저 주지요? 이것을 볼 때, 존재의 최초 기원이 되는 그분으로부터 주는 일이 시작되어서 작용이 연결되었다는 논리를 인정해야 됩니다.
(239-59, 1992.11.23)

통일의 원칙은 창조력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창조력을 투입하는 데서 통일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받고자 하는 데서는 통일이 안 됩니다. 받는 것은 좋습니다. 받았으면 거기에 이자를 가산해 가지고 그 이상 줄 수 있는 나 자신이 되면 됩니다. 그렇지만 그 위에서 또 받고자 하는 사람은 하늘도 절대 싫어하는 것입니다. 안 줍니다.
(82-326~327, 1976.02.01)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 대해서 한 번 예를 들어 봅시다. 선한 사람은 열 친구가 있다면 그 열 친구에 대해서 아침이나 저녁이나 금년이나 내년이나 십년이나 일생 동안 시중들고 봉사합니다. 그러는 친구는 좋은 친구입니다. 열 사람 전부가 제일 좋은 친구라고 말합니다. 자기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어머니라든가 자기 누이동생이 있으면 데려가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열 친구를 대해서 ‘야! 이놈아, 날 위해라’고 세 번만 그런다면 다 도망갑니다. 그가 따라올까 겁이 나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자기를 중심 삼고 주장하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리원칙에 입각해서 남을 위해, 상대를 위해서 투입하는 자는 천국 가는 것입니다.
인류 교육이라든가 모든 지도 이념에 있어서 막연하게나마 이러한 관점에서 선을 세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면 그는 전체 앞에 선한 사람이요, 어떤 가정이 전체의 가정을 위해서 완전히 희생하면 전체의 가정 앞에 선한 가정으로 등장하는 것이요, 또 어떤 민족이 전체의 민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나서면 그 민족은 선한 민족으로 등장하는 것이요, 어떤 나라가 전 세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면 그 국가는 선한 국가로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69-86, 1973.10.20)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사랑의 심정을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한 신이라면 그러한 마음을 가진 대상이 반드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형성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현현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흥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이런 사실을 이론적으로 확실히 모르지만 서로서로 사랑해라, 서로서로 위해라 하는 것이요, 종교는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말이 우리의 인륜도덕과 상치되지 않습니다. 맞는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라 이겁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입니다. 남을 사랑해라 이겁니다. 그래서 위하여 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12-301, 198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