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신을 희생하여 악에 대항하는 의인
종교 경전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천하에 오로지 주장함도 없으며 오로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이 의로움(義)만을 좇을 뿐이다.”
논어 4.10 (유교)
만일 하나님께서 다른 자들로 일부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으셨다면 이 땅은 부패하였을 것이니라.
꾸란 2.251 (이슬람)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10 (기독교)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비둘기를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2.13-16 (기독교)
승리를 바라는 그들은 힘이나 에너지로 정복하기보다는 진리, 자비, 정의, 그리고 영적 수련으로 정복합니다. 불의와 정의를 분간하고, 탐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며, 자만하지 않는 싸움, 즉 노력에 호소해야 합니다. 승리는 정의가 있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오 왕이여, 이 전쟁에서 우리에게 승리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십시오. 실로 끄리슈나가 있는 곳에 승리가 있습니다.
마하바라타 브히스마 파르바 21 (힌두교)
왜곡된 비난으로 우리를 욕되지 않게 하고, 정부를 파괴하겠다는 위협에 무서워하지 말며, 우리를 감옥에 가두겠다는 협박 역시 개의치 마십시오. 정의가 힘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 속에서 우리의 의무를 이해하며 그에 따라 자신 있게 행동하시길 바랍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말씀 선집
의로울 의(義)자도 보게 되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양(羊) 같은 나(我)’라는 뜻입니다. 참 이상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92.309, 1977.04.24)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모험이 필요하면 그 모험을 통해서 전진하게 될 때, 하나님이 ‘음! 해라! 해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먹을 자리로 찾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딪치게 되면 하나님은 ‘저거 한번 부딪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고….
그래서 자력(自力)으로 굴복시키게 되면 하나님은 ‘하~ 좋구만’ 하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자, 이건 싸움도 하지 않고 겁을 먹었는데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겠습니까? ‘응응, 해라! 해라!’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선의의 문제를 일으켜라 이것입니다.
(104-108, 1979.04.15)
여러분은 제일 먼저 선이냐 악이냐를 가려내야 합니다. 선악이 어디에 있느냐? 선악은 세계에 꽉 차 있지만 선악을 가려야 할 그 분기점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가 악하다고 할 때, 그 악한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산다고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타락권내에 있으면서도 그물에 걸려 있는 고기와 마찬가지로 반기를 들지 않고 그냥 살고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와 상충을 벌여야 할 때,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악한 세계라는 것을 안다면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럼 왜 그렇게 되었느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여 떨어졌기 때문에 해방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인류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없고, 새로운 역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역사적인 선의 흔적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투쟁해야 되는 것입니다.
(33-42, 1970.08.02)
핍박을 받고 어려울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 정의의 본질이기 때문에, 치면 반대로 더 발전한다는 원칙이 성립됩니다.
(93-134, 1977.05.21)
선한 마음은 어떠한 목적을 지향하더라도 그 목적하는 바를 확실히 알 수 없고, 그 과정에 있어서도 선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인연을 발견하기 어려운 반면에, 악한 것은 그 과정에 꽉 차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고독한 생활, 슬픈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선을 붙잡고 나가는 사람의 길은 평탄한 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남다르게 선한 인격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를 환영하는 사람은 이 땅에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선한 개인이 선의 가정을 그려 나가는 데도 그 환경이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선의 가정이 선의 종족을 그리면서 가는 길에는 더더욱 어려운 악조건이 그 환경에 에워싸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36-52, 1970.11.15)
이제 한 고비를 넘고 가야 할 그 길을 지켜보시는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대담하고 호탕한 사나이로서 가오니, 아버지, 그 길을 지켜보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립니다.
(134-142, 198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