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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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동하기 이전에 정성을 들여라

종교 경전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
잠언 4.23 (기독교)

진실로 곧다는 것은 신께서 현시하신 성실함의 결과로서 그대의 진정한 내면의 자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행동의 가장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까지도 그대는 성실함을 다하도록 애써야 한다. 성실함과 정직함이 없는 예의나 제의는 잘못된 것이며 불충분한 것이다. 이는 마치 팔을 고정하지도 않고 활을 당겨 살을 쏘거나 노 없이 배를 움직이려는 것과 같다.
히키타 모치마사, 신풍기 (신도)

진실로 사람의 생각이 삼라사의 원인이다. 자신의 생각들을 청정하게 닦도록 하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 사람은 그것이 된다. 이것은 오랜 비밀이다. 자신의 생각을 고요하게 함으로써 그는 선악의 모든 행위들을 잠재울 수 있다. 생각이 고요하게 머무는 자는 영원한 자아 속에서 불멸의 행복을 누린다.
만일 자신의 생각들이 이 세상 것들에 대한 것만큼 브라흐만에 오로지 할 수 있다면,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지 못할 자 누군가? 마음은 청정하고 부정한 두 얼굴을 지니나니, 욕망에 끌려 다녀 더러움에 물들며, 이를 떠나 있음이 곧 청정한 마음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방일하게 하지 말라. 연후에 흔들리지 않고 적정 속에 머무는 것, 그것이야말로 무심의 경지요 구극의 경지이다.
마이트리 우파니샤드 6.34.3-7 (힌두교)

이른바 뜻을 정성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고, 좋은 색상을 좋아함과 같으며, 스스로 정성스런 경지에 만족하고 있음을 말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 있는 경우에 신중하게 행동한다.

소인은 한가롭게 혼자 있으면 선하지 못한 짓을 하고, 그 한도가 끝이 없이 뻗는다. 군자의 언행을 본 후에야 슬쩍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불선을 가리고, 반대로 선함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러나 남들이 그를 보기를 마치 폐나 간을 봄과 같이 할 것이니 숨겨도 소용이 있겠느냐?

이런 것을 이른바 속에서 정성스럽게 하면 밖으로도 나타나 보인다고 함이니라. 고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는 경지에서 신중하게 하느니라. 증자가 말했다. “열 개의 눈이 보고,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얼마나 엄격해야 하느냐!” 부유함은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성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마음이 넓으면 몸이 편하게 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되게 한다.
대학 6.1-4 (유교)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검사해야 하고, 무엇이 심정의 영향이고 목적인지 배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야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정직하게 배울 수 있다.
과학과 건강, 8 (크리스천 사이언스)

비구니들이여! 만일 스스로 몸단장하기를 좋아하는 여인이나 젊은이, 혹은 어린 소년이 있어 밝고 깨끗한 거울이나 맑은 물이 담긴 항아리에 제 모습을 비춰 보고 그 속에서 어떤 얼룩이나 때가 묻은 것을 발견한다면, 그는 그 얼룩이나 때를 지우려 애쓸 것이며, 마침내 뜻을 이룬다면 그는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깨끗하게 된 것은 나에게 참 좋은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구의 내적 성찰은 그것이 잘 닦여질 때 그에게 가장 큰 이득이 된다. 이에 그는 이와 같이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평소에 혹 남의 것을 탐하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악의를 품고 말하거나 행한 적은 없는가? 내가 평소에 수행을 닦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마음이 들떠 평정심을 잃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의심이 들어 마음이 동요하며 혼란에 빠지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화를 잘 삭여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평소에 탁한 상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색을 탐하는 마음을 품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무기력하게 지내는가, 아니면 활기찬 모습으로 수행에 임하는가? 내가 평소에 나를 통어하며 사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만일 이와 같이 자신을 돌아보고 어떤 비구가 생각하기를, “나는 평소에 남의 것을 탐하고, 가슴에 악의를 품으며, 방일하고 지둔(遲鈍)하며, 마음에 평정심을 집지하지 못하며, 의심에 들어 마음이 동요하고 혼란에 빠지기 잘하며, 화내기 좋아하며, 색욕에 빠진 몸을 지니며, 굼뜨고 나를 통어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여기면, 그 비구는 자신을 책망하여 한층 더 수행에 전념해야 하리니, 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보다 더 높은 열망을 내며, 보다 더 많이 실천하고 마음을 흩트리지 않으며, 사악하고 유익하지 못한 것들을 떨쳐버림에 전심전력하여야 한다.
앙굿타라 니카야 5.66 (불교)

말씀 선집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우리 한국의 격언이 있지만, 참 그건 천리(天理)를 통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 드린다’ 하는 그 정성 드리는 거기에는 안팎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또, 언행심사와 모든 실천, 안팎의 모든 우리 양심 생활권까지도 몽땅 합해 가지고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게 정성이라 이겁니다.
‘정(精)’은 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誠)’은 말씀 언변에 이룰 성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팎의 모든 것을 이루어 가지고 바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돼야 감천(感天)입니다. 하늘이 감동한다는 것입니다.
(78-31~32, 1975.05.01)

평소에 느낌의 몇 퍼센트가 적중하느냐? 이것은 여러분이 생활과정을 분석해서 그 결과를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것의 몇 퍼센트는 맞는다, 몇 퍼센트는 틀림없다’ 하는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이 같이하고 계시는지, 악이 같이하고 있는지 분석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런 신앙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신앙태도를 키워 나가면 틀림없이 정확한 느낌이 체휼되어 들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길을 나설 때 기도를 안 해도 괜찮습니다.
첫 걸음을 내디딜 때, 이 길이 어떤 길이냐, 좋은 길이냐, 가면 하나님에게 좋을 수 있는 길이냐, 섭섭한 길이냐, ‘아 이건 좋다, 나쁘다’ 하는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쁘다’ 할 때는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내적인 느낌과 관련된 체휼신앙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40-288, 1971.02.07)

원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힘들다! 선생님이 알아준다, 안 알아준다’ 하는데, 정성 들인 것을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랑하는데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알아주면 사랑이 막혀 버립니다. 안 알아줌으로 말미암아 정성이 흘러갈 수 있고 사랑이 흘러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흘러가야 됩니다. 물도 흘러가고, 공기도 흘러가고, 사랑도 틈만 있으면 전부 채우는 것입니다.
(308-205, 1999.01.05)

신앙생활에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폭발적이고도 자극적인 힘을 가지고 뜻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가고자 하는 여력이 있다면,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치고 인류와 더불어 자기의 생명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늘에 속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기중심의 사랑과 자신의 가치를 자랑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서 이미 하나님이 이별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갈 길은 하늘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중심의 한계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나를 중심한 한계의 세계는 하나님의 뜻의 세계와는 다른 것입니다.
(32-21~22, 1970.06.14)

준비 못 한 사람은 흘러가는 겁니다. 준비 못 한 사람은 상속자가 못 됩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나 자기가 하늘을 동정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시간이 어떠한 자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정성 들이고 또 들이려고 할 때이고, 위하고 또 위하려고 할 때이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려고 할 때라는 것입니다.
(308-203, 1999.01.05)

아직도 타락권에 속해 있는 인류는 양심혁명을 완성해야 합니다. 즉 이 세상의 어떤 주권이나 이념 앞에서도 일점일획 가감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본심의 지향성을 따라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의 전통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하늘 앞에서나 만물 앞에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정오정착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일심·일체·일념·일핵의 경지에 도달하여 순결·순혈·순애성을 영원불변의 전통으로 안착시키고 일화통일시대를 꽃피울 때 비로소 양심혁명은 완성을 보는 것입니다.
(433-202, 200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