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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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착한 성품을 기르는 종교

종교 경전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27 (기독교)

자신을 하나님에게 복종시키고 선을 행하는 자는 주님으로부터 보상이 있으며 아무런 두려움도 슬픔도 갖지 아니하리라.
꾸란 2.112 (이슬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그 은총은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건함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합니다.
또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복된 소망을 갖게 합니다. 곧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디도서 2.11-14 (기독교)

자비의 모스크, 진실의 기도 매트를, 정직의 꾸란을 만들고 정당한 부를 일구라. 겸손이 그대의 할례가 되게 하고 바른 행위가 그대의 라마단 단식이 되게 하라. 이로써 그대는 참된 무슬림이 되리라.
선행이 그대의 카아바가 되게 하고, 진리가 그대의 스승이 되게 하며 고결한 덕행을 그대의 칼리마로, 매일 매일의 나마즈로 삼으라. 신을 즐겁게 하는 일로 그대의 염주 되게 하라.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영광 있으리라.
아디 그란트, 바르 마즈, M.1, p.140 (시크교)

인생에서 가장 피해야할 것은 동요(우유부단)함과 경솔함이다. 가장 귀중한 것은 경건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우리 유가는 마음의 성실함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며 경건함을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성실함과 경건함은 우리를 천지와 신과 영혼의 짝으로 만들어주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인도자로서 불교를 채택한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부처 앞에 절하고 부처의 경전을 암송하며, 항상 경건함과 외경심을 보존하면서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결코 마음 너머로 주의 깊게 지키는 경계를 풀어놓지 않을 것이며, 차차로 순수해지고 밝아질 것이고, 악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선함을 행할 준비가 될 것이다. 이 깨달음은 그들의 가장 행복한 땅이라고 불린다.
그 때 필수적인 것은 불교인들이 너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동요(우유부단)함과 경솔함을 유교인들만큼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건함과 외경심에 의해 절제된 마음을 항상 유지하라. 그렇지 않다면 불교경전의 암송이나 유가의 담론을 무엇에 쓰겠는가?
음즐문 (도교)

말씀 선집

종교(宗敎)라는 글자는 이처럼 이상한 글자인데, 이런 글자는 처음 보지요? 그 뜻이 무엇이냐 하면, 집으로 말하면 마루 되는 가르침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92-309, 1977.04.24)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인격을 형성하고 인격을 기르는 곳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과 사회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을 복귀하는 데는 그냥 그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나와서 무슨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격이 복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5-126, 1969.09.30)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오늘날 사랑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정신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중심한 것입니다. 육체는 사탄이 활동하는 곳입니다. 육체는 사탄의 무도장이요, 사탄의 정박지입니다.
정신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즉 주체의 위치가 됩니다. 그러나 정신의 대상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 육체는 또 하나의 주체가 되려고 노력하며 계속해서 정신을 유혹하고 속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이러한 관계를 수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탕감복귀 시키고자 종교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종교를 통해 하나님을 중심한 정신을 강화시키는 방법, 삶과 인격에 대한 육체의 지배를 역전시키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종교가 종종 단식, 희생적인 봉사, 온순하고 겸손한 태도 등을 요구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합니다. 이는 육체의 세력을 감소시키고 육체로 하여금 정신에게 복종토록 하는 방법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육체를 중심한 생활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신을 중심한 생활방식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통상 3년 내지 5년이 걸립니다.
더욱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이 역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타락한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루 24시간 모든 방향에서 타락한 인간을 유혹하고 괴롭힙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오로지 한 방향에서, 즉 정신의 수직적인 방향에서만 힘을 미치실 수 있습니다.
(201-208~209, 1990.04.09)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는 것은 빠지기 전 상태로 돌이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사랑이상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이상하였던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 자체에게는 종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랑의 이상을 찾아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종교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112-298, 1981.04.25)

그곳이 우리 인간이 찾아가야 할 본향입니다. 오늘 우리는 타락한 인생으로서 본향에서 추방당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본향 땅을 향하여, 본향을 향하여 돌아가야 할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간 자체로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역사 과정에 설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민족의 문화 배경, 풍습, 혹은 전통이 다름에 따라서 수많은 종교를 세워 사방으로 수습하기 위한 훈련장을 만든 것이 수많은 종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종교는 본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자를 연마시키는 훈련 장소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동서사방의 문화 배경 등의 차이에 따라 하나님은 비준(比準)을 찾아 세우면서 높은 데로 전진할 수 있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세계로 이끌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본향의 땅으로 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위하여 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원칙을 강조해야 되겠기 때문에 온유겸손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뭇사람을 높이고 그들을 위하는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희생 봉사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의 법도에 맞을 수 있는 사람을 훈련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78-117~118, 197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