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속죄의 원리
종교 경전
이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실 때, 주 하나님은 병들고 고통 받는 자들 가운데 의로운 한 사람을 치신다. 그리고 그를 통해 모두를 치유하신다. 그러나 그 의인이 그로 인해 고난 받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편’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덕 있는 이들에게 먼저 징벌을 내려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덕 있는 자 위에 군림하기 위해 세상을 무시하는 자들이다.
조하르 5.218a (유대교)
아론은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로 황소를 드려 자기의 죄와 자기 집안의 죄를 벗기는 예식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숫염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만남의 장막 문간, 여호와 앞에 세워 놓고 숫염소 두 마리 가운데서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여호와께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아자젤에게 보내야 한다.
아론은 여호와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리고 아자젤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세워 두었다가 속죄 제물로 삼아 빈들에 있는 아자젤에게 보내야 한다. 아론은 속죄 제물로 바치는 백성의 숫염소를 죽여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황소 피를 뿌렸던 때와 같은 식으로, 속죄판 위와 속죄판 앞에 뿌려야 한다.
이렇게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을 저질러 탄 부정이나 지은 죄를 벗기는 예식을 올려 성소를 정하게 해야 한다. 아론은 그 살려 둔 염소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온갖 잘못과 일부러 거역한 온갖 죄악을 고백하고는, 그 모든 죄를 그 염소 머리에 씌우고 대기하고 있던 사람을 시켜 그 염소를 빈들로 내보내야 한다. 그 염소는 그들의 죄를 모두 지고 황무지로 나간다.
이것은 너희가 길이 지킬 규정이다. 일곱째 달에 들어 그 달 십일이 되면 그 날은 너희의 죄를 벗겨 너희를 정하게 하는 날이므로, 너희가 여호와 앞에서 모든 잘못을 벗고 정하게 되리라.
레위기 16.6-30 (기독교)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나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은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이사야 53.4-6 (기독교)
말씀 선집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선민권으로 말미암아 시작됐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피 흘리게 하는 의식을 통해 자기들이 속죄의 길을 찾아왔는데, 그 근본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주인인데,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물건인데 이걸 두 쪽으로 갈라서 한편은 하나님이 소유하고 한편은 사탄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309-203, 1999.05.30)
탕감이라는 말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100년 동안 탕감해야 할 죄를 지었다면 그것을 다 치르려면 그 인간 자체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구해 주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백년 걸려서 탕감해야 하는데 다 못 하겠기 때문에, 또 그 사람이 못 하고 죽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살아서 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기간으로 1년이라든가 혹은 10년이라든가 하는 단축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될 수 있는 대로 1년을 취하려고 하는데 사탄은 10년으로 하자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은 너 하자는 대로도 하고 내가 하자는 대로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자고 합니다. 그러면 사탄도 ‘예스’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복귀 하는데 있어서도 사탄은 많은 것으로 때리려고 하고 하나님은 작은 것 가지고 용서해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원리적 법도를 주장하는 사탄의 입장도 옳고, 원리적인 입장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의 주장도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여기서 사람을 중심삼고 사탄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겁니다. 그것이 원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111-147, 1981.02.10)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불초한 이 모습들, 수많은 선지자들과 성인들이 쌓아온 피의 제단으로 인해 속죄 받을 수 있게 된 놀라운 은사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과거의 생활을 다시 한 번 뉘우치면서, 실적을 갖고 아버지 앞에 드릴 수 있어야 할 터인데 빈 손들고 나온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9-161, 1960.05.08)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아 나와서 세계적인 발전을 할 때까지 투입한 그 희생의 모든 여건들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을 위한 것도 아니요, 기독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결국은 나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메시아를 보내서 십자가에 돌아가게 한 것도 결국은 그 메시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다시 이것을 연장하여 재림이라는 사상을 중심삼고 새로운 기독교의 체제를 횡적으로 확대시켜서, 세계적인 범위까지 발전시켜서 끝 날까지 이끌어 온, 하나님이 기독교를 발전시킨 역사도 누구 때문인 것이냐? 나를 위한 것입니다. 결론이 전부 나에게 귀결되는 것입니다.
(77-47, 1975.03.30)
영계에 가는 사람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의 명대로 살고 가는 사람과 자기의 명대로 못 살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명대로 못 살고 가는 사람에는 벌을 받아서 빨리 죽는 사람과 민족이나 세계의 죄를 탕감하기 위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어떠한 동네에서 손꼽히는 30대의 젊은이 세 사람만 죽게 되면 그 동네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문중이면 문중에서도 기대를 받던 장대 같은 젊은이 세 사람만 죽게 되면 그 문중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즉, 탕감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과 법칙은 어디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 사람의 가치를 지닌 한 존재를 중심적인 자리에 세워서 천 사람을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가게 했을 때, 천 사람이 그 사람의 은덕 앞에 감동하여 그 사람을 위하고, 그 사람의 생애를 본받고, 그 사람처럼 살겠다고 하게 되면, 그 민족은 그 사람과 같은 혜택권내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충신의 사상을 본받으려 하고, 성현의 사상을 본받으려 하는 것도 그들과 같은 혜택권내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갔지만 금년에도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갈 것입니다. 말은 안 했지만 선생님은 벌써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한 단계 넘어갈 때 반드시 탕감을 치러야 되기 때문입니다.
(33-11, 1970.07.28)
우리는 상복을 입고 복귀의 사명을 다하는 제사장들이 되든가, 혹은 제관(祭冠)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과거를 회개하고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니, 여러분의 민족이 시련의 길을 걸을 때 동참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민족적인 시련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 개인을 위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13-265, 1964.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