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내 북마크

아직 북마크가 없습니다.

2. 내적 각성

종교 경전

브라흐만은 일체만유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니, 그는 행위요 지혜이며 지고선이다. 가슴 속 내밀한 곳에 숨겨진 그를 아는 자, 그는 이 땅에서 무지의 사슬을 끊으리라.
문다카 우파니샤드 2.1.10 (힌두교)

심장의 황금도성에, 부분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랑의 주가 거한다. 그를 빛들의 작렬하는 광선으로 알아라.
태양도 빛나지 않으며, 달도 별도 빛나지 않는다. 번갯불의 섬광도 없고 대지에 불도 붙지 않는다. 주는 모든 것에 의하여 반영된 빛이다. 그가 빛날 때, 모든 것이 그를 따라 빛난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2.2.10-11 (힌두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빛이라. 그 빛을 비유하사 벽 위의 등불과 같은 것으로, 그 안에 등불이 있으며, 그 등불은 또한 유리 속에 있도다. 그 유리는 축복받은 올리브기름으로 별처럼 밝게 빛나도다. 그것은 동쪽에 있는 나무도 아니요 서쪽에 있는 나무도 아니니라. 그 기름은 불이 닿지도 아니하나 더욱 빛나 빛 위에 빛을 더하도다.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는 자를 그 빛으로 인도하시며 사람들 위에 비유를 보이시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심으로 충만하시노라.
꾸란 24.35 (이슬람)

때로 얼룩진 거울이 깨끗해졌을 때 빛나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체화된 자는 자아의 본질을 보는 순간에 하나로 통일되며, 그의 목표가 성취되며, 슬픔에서 벗어난다.
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 2.14 (힌두교)

품속에 있는 영원한 자아는 이 세계가 그로부터 떨어져 있게 하는 다리요 경계선이다. 밤과 낮도 그 경계선을 넘나들지 못하며, 늙음도 죽음도 그 경계선을 가로지르지 못하며, 슬픔도 기쁨도 선행도 악행도 그 경계선을 건너지 못한다.

모든 사악함이 그를 피해 달아나느니, 그는 모든 악을 여의어 있는 까닭이다. 이런 까닭에 그 경계선을 가로질러 영원한 자아를 성취한 자는 그가 혹 소경일진대 눈을 뜰 것이며, 그가 혹 큰 상처를 입었을진대 씻은 듯이 나을 것이며, 혹 그가 고뇌 속에 있을 진대 이를 벗어나리라. 그 경계선이 허물어질 때 밤은 낮이 되느니, 브라흐만의 나라는 빛인 까닭이니라.
찬도그야 우파니샤드 4.1.2 (힌두교)

명이라는 비구가 타이유산 만큼이나 멀리서 육조를 뒤따르고 있었다. 육조께서 명이 오고 있는 것을 알고 바위 위에 가사와 발우를 내려놓고 말하였다. “이 가사는 믿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억지로 빼앗는다고 빼앗아지는 바가 아님을 알라. 만일 그대가 그것을 가져가려 한다면 지금 그것을 취하라.” 명 비구는 그것을 취하려 하였으나 태산같이 무거워 꼼짝하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그가 소리쳤다. “저는 법을 구하러 온 것이지 가사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부디 저에게 당신의 드높은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이 순간 비구 명의 본래 면목이 무엇인가?” 이 말은 듣고 비구 명은 문득 깨달음에 들었다. 그의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그가 흐느껴 경배하며 말하였다. “스승께서 방금 저에게 내리신 신묘한 말씀과 그 신묘한 뜻 외에 이보다 더 깊고 신묘한 것이 있나이까?”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에게 말한 것은 전혀 비밀스런 것이 아니니라. 그대가 자신의 참된 자아를 성찰하게 될 때, 보다 깊고 신묘한 것은 무엇이나 바로 그곳에서 발견되느니라.”
무문관 23 (불교)

말씀 선집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본심이 그릇됐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든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러분이 딴 것 보고 물어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양심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본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귀한 것과 하나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 본심과 하나 될 때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전계발이라든가 본심의 마음 문을 맞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맞춰야 됩니다. 이러한 심전계발이 본성계발인 것입니다. 생활 가운데서 그것을 중심삼고 나가려면 영계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07-216~217, 1998.11.21)

현재 여러분이 대하고 있는 스승이나 그가 가르치는 기준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본심을 찾아서 마음의 귀를 통하여 천륜의 부르심을 듣고, 마음의 눈을 통하여 신성을 보고, 마음의 촉감을 통하여 하늘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은 지나온 6천년의 역사과정을 그대로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참으로 귀한 것이 하늘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들의 마음도 그에 못지않게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서 하나님을 상대할 수 있는 높은 가치기준을 세우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고, 마음의 핵심을 찾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천륜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날까지 여러분 나름대로 성실한 신앙생활을 해 나왔다고 하겠지만 ‘여러분은 과연 자랑할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반문한다면 ‘나는 자랑할 것을 갖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설혹 여러분들 가운데 하늘 앞에 자랑할 무엇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본심을 통하여 자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천륜을 대신하여 영원한 이상을 입증할 수 있는 긍휼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생활한다면, 여러분들은 절대로 어긋난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관념적인 세계와 그런 상대로부터 위안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타락했지만 인간들은 본래부터 영원하신 천성과 통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마음 가운데는 창조이상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악을 벗고 완성하여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고 무한히 기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신앙자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 혹은 불교도들이 참선을 통해 무아의 경지를 찾아가는 목적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마음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깨우치자는 것입니다.
(2-192~193, 1957.05.19)

석가모니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은 어디서 가르치느냐? 그 공명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면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는 천년만년의 역사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묘지에 옮겨지는 비참한 인생의 말로를 쳐다보면서, 서로 고민하는 인간의 생애를 되풀이하는 고통의 경지를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하는…. 이것이 각자에게 지워진 숙제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공명권에 들어가는 훈련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223-357, 1991.11.20)

마음과 몸이 대등하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약하게 함으로써 마음이 득세해 가지고 약하게 된 몸뚱이를 몇 달 동안 끌고 넘어가게 되면 몸뚱이를 다시 올려놓아도 올라올 수 없게 습관화되어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자기가 계획하는 모든 일이 하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잘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냥 놔두어도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양심을 위주로 한 절대적인 자리에서 생애를 엮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 생활의 목적입니다.
(38-270~272, 1971.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