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랑 : 영생의 토대
종교 경전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을 하는 사람입니다.
살인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한일서 3.14-16 (기독교)
말씀 선집
사랑은 영원하길 바라지요? 그건 절대적 사랑과 하나 되어야 됩니다. 그 절대적 사랑과 하나 되려면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됩니다. 근본 하나님의 뿌리에서부터 절대적 사랑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절대적인 사랑에는 영원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며 인간은 상대라면 하나님이 영원히 사니 사랑의 상대, 일체된 인간도 영원히 살아야 되는 것은 이론적이요,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참사랑에서만이, 절대적인 사랑에서만이 영생이 존속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251-120, 1993.10.17)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 되어 있으면 세상이야 망하든 뭐하든 걱정을 안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칼을 붙들고 하나 못 되게 하더라도 그 칼이 무섭지 않습니다. 죽어서라도 간다는 이런 개념이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생애를 중심삼은 그 생애만이 아닙니다. 영생이 그렇게 다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히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현세의 생활보다도 영생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본체가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이 본체의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플러스 됐으면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위에 마이너스가 안 오고 플러스가 붙어야 됩니다. 그래서 큰 하늘과 거기에 상대적인 것이 하나 되어 돌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플러스만 붙게 되면 여기를 따라서 크는 것입니다. 자식이 크고 전부 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인간생활의 완성 표준을 중심삼고 그것이 하나의 씨와 같이 되어서 순환운동을 해서 춘하추동 사계절을 통해 열매 맺히는 것입니다. 씨가 다시 씨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수증기가 되어 가지고 조화를 부리지만 나중에는 수증기로 돌아와 담수로 돌아오는 거와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돌기 위해서는 이중적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80-88~89, 2002.06.05)
아버지는 저희 자신을 입증할 수 있고, 저희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거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신념뿐만 아니라 체휼적인 자리에서 아버지와 나는 전후관계, 좌우관계에 있음을 입증하고 그런 입장에서 영원히 같이 있었고, 영원히 같이 살고 있고, 영원히 같이 살 것이라는, 변함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논증의 기원을 스스로 세울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참된 길인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40-350, 197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