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망에서 생명으로
종교 경전
외치는 자가 가까운 곳에서 외치는 날에는 귀를 기울이라. 그들이 진리의 소리를 듣게 되는 날 그 날이 무덤에서 나오게 되는 날이니라. 진실로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기도 하고 죽음에 이르게도 하니 우리에게 돌아오리라. 대지가 그들 주위에서 갈라지는 날 그들은 서둘러 나와 모이게 되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에게 쉬운 일이니라.
꾸란 50.41-44 (이슬람)
여호와께서 손으로 나를 잡으시자 여호와의 기운이 나를 밖으로 이끌어내셨다. 그래서 들 한가운데 이끌려 나가보니 거기에 뼈들이 가득히 널려있는 것이었다. 그분이 나를 그리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들 바닥에는 뼈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말라 있었다. 그분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것 같으냐?”
내가 “주 여호와여, 당신께서 아시옵니다.” 하고 아뢰니, 그분이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마른 뼈들아, 이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 뼈들에게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너희에게 힘줄을 이어놓고 살을 붙이고 가죽을 씌우고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되리라.’”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내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붙는 소리가 났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뼈들에게 힘줄이 이어졌고 살이 붙었으며 가죽이 씌워졌다. 그러나 아직 숨 쉬는 기척은 없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또 말씀하셨다. “숨을 향해 내 말을 전하여라. 너 사람아, 숨을 향해 내 말을 전하여라. ‘주 여호와가 말한다. 숨아,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죽은 자들을 스쳐 살아나게 하여라.’”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숨이 불어왔다. 그러자 모두들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서서 굉장히 큰 무리를 이루었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다. 뼈는 마르고 희망은 사라져 끝장이 났다고 넋두리하던 것들이다. 이제 너는 이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리라.
내가 이렇게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그제야 너희는 나 여호와가 한번 선언한 것을 그대로 이루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에스겔 37.1-14 (기독교)
그들이 말하길, 우리가 정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부서진 뼈가 되었는데도. 그들이 말하길, 그러면 그것은 손해 보는 복귀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한마디 외침일 뿐이다. 그러면 그들은 깨어날 것이니라.
꾸란 79.10-14 (이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2 (기독교)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11.25-26 (기독교)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라도 나는 하나님을 뵙고야 말리라.
욥기 19.25-26 (기독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요한복음 12.24-25 (기독교)
하나님의 징표를 그대는 황량한 대지에서 볼 수 있노라. 하나님이 그 위에 비를 내리면 곧 생기로 가득 차 약동하노라. 대지를 소생시킨 분은 죽은 자도 소생시킬 수 있는 분이시리라. 진실로 그분은 만물을 지배하시는 분이니라.
꾸란 41.39 (이슬람)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42-45 (기독교)
말씀 선집
우리는 이제까지 인간이 목숨이 끊어져서 그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타락으로 인한 죽음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을 성서가 의미하는 부활이라고 해석하여 왔기 때문에, 이미 타계한 성도들의 부활은 곧 흙으로 분해되었던 그 육신이 다시 원상태로 살아나는 것으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창조원리에 의하면 이러한 죽음은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것이 아니다. 원래 인간이란 노쇠하면 그 육신은 자연히 흙으로 돌아가도록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한 번 흙으로 분해되어버린 육신은 다시 원상태로 부활할 수도 없으려니와, 영계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된 영인체가 다시 육신을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인간이 그의 타락으로 초래된 죽음, 즉 사탄 주관권내에 떨어진 입장으로부터 복귀섭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 주관권내로 복귀되어 나아가는 그 과정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를 회개하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좀 더 선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만큼 부활한 것이 된다.
성서에서 부활에 관한 예를 들어보면,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한 기록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품속을 떠나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부활이라는 것을 의미한 말씀인 것이다.
한편,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게 된 것이 사망이요, 여기서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혈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부활이라는 것을 의미한 말씀인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창 2:17)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된 아담과 해와는 죽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외형적인 아무런 변이도 일어나지 않았다. 변한 것이 있었다면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그들의 안색이 변했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인간으로 부활된다 하더라도 그의 외형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성신으로 중생한 사람은 중생하기 이전에 비하여 분명히 부활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그와 강도를 비교해 본다면, 하나는 하늘편의 사람으로서 중생한 정도만큼 부활한 입장에 있고, 또 하나는 지옥에 가야 할 사람으로서 죽은 입장에 있지만 그들의 외형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예증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사망으로부터 생명에로 옮겨져서 부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기 전 사망한 상태에 따라 있을 때나 예수를 믿고 생명에로 옮겨짐으로써 부활한 후나 그의 육체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할 인간으로 오셨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형으로 본 예수님은 타락인간에 비하여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만일 그에게 다른 것이 있었다면 당시의 측근자들이 그를 믿고 따르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부활로 인하여 사탄의 주관을 벗어나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룸으로써 신성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타락인간이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의 주관을 받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심령에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심령의 변화에 의하여 인간의 육신도 사탄이 우거하는 전으로부터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성전으로 사실상 성화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육신도 부활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악한 일을 위하여 사용되어 왔던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건물의 외형에 있어서는 하등의 변화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이미 성스러운 건물로 변화된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인 것이다.
(원리강론, 부활론 1.3-4)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죽기 전까지는 내 것이지만 죽은 후에는 하나님 것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락한 혈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기 전까지는 우리의 생명 전부는 사탄편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과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한 시대를 지내지 않고는 다른 시대를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한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하고 참된 생명을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의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은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역설 같지만 타락과 복귀의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귀의 정상적인 논법입니다.
(297-265, 1998.12.19)
성경은 결론적으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을 내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권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걸 부정하면 부활이 벌어집니다. 예수님도 자기 생명을 부정했기 때문에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켜 준 것입니다.
(307-167, 1998.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