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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주의 떠나 사회적 연대를 요구하는 자유

종교 경전

그대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보호함으로써만 그대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다. 그대는 단지 내가 자유로울 때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클레어런스 대로우
인간의 자연적인 자유는 지상의 어떤 우월한 권력으로부터도 속박 받지 않고, 그리고 인간의 의지나 법적 권위 아래 있지 않으며 오직 자연법을 자기 규칙으로 지니는 것을 말한다.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란 국가 내에 동의로써 확립된 법적 권위 외에 어떠한 입법권 아래에도 있지 않다는 것이며, 입법부가 자체에게 부여된 신탁에 따라서 제정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의지의 지배나 법의 구속에도 종속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자유라는 것은 … 사람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생활하며, 어떠한 법에 의해 얽매이지 않는 자유는 아니다. 그러나 정부 밑에서 인간의 자유는 그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고 그 사회에서 확립된 입법권에 의해 제정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존 로크, 통치론 2, 4.22 (휴머니즘)

사람이 사회계약으로 잃는 것은 자연적 자유와 취하려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한 무제한의 권리이다. 그가 얻는 것은 시민의 자유와 소유한 모든 것의 소유권이다.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휴머니즘)

그들은 인권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무참히 부정한다. 이런 모순의 뿌리에는 자유라는 개념이 있다. 이때 ‘자유’는 절대적으로 독립된 개인을 강조하며, 사회적 결속과 관용, 봉사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비록 이따금 이타주의와 동정심의 이름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문화는 결국 개인의 자유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며, 결국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자유’ 개념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주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가인이 했던 대답과 같다. 가인은 이렇게 답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기 4.9) 그렇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형제’를 지키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를 맡기셨기 때문이다. 덧붙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계성을 포함하는 자유를 허락하셨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남을 향해 봉사할 때 이것은 창조주가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 … 그러나 개인적 차원의 자유만을 절대시하면, 자유 본래의 내용은 사라져 텅 비어버리고 그것의 참된 의미와 권위가 부정된다.
사실 더 심각한 측면이 있다 : 더 이상 자유와 진리의 결합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을 때, 그런 자유는 결국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시켜 버리며, 타인까지도 파괴로 이끌 수 있다.
전통과 권위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에서 기인한 자유는 심지어 가장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개인과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진리의 내용까지도 부정해버린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람은 선악에 대한 진리를 자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주관적이며 변하기 쉽고, 자기중심적인 이해와 변덕일 뿐이다.
잘못된 자유는 사회적 관계에도 심각한 왜곡을 가져다준다. 절대적 자율이라는 측면에서 ‘자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거부하는 데까지 이른다. 나 외에 다른 이는 모두 적이 되고, … 사회는 단지 아무 유대감 없이 공존하고 있는 개인의 집합 정도로 여긴다. …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은 절대 상대주의의 흐르는 모래 속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이 된다. 협상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거래하지 못할 것도 없다 : 심지어 인간의 근본 권리 중 최고인 생명권마저도 협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생명의 복음

말씀 선집

위하고 받드는 거기서는 모든 것이 해방입니다. 위해서 살면 자기도 해방 받지만 위하는 자체가 해방이 됩니다. 상대가 해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323-73, 2000.05.31)

여러분들이 요전에 ‘자유’ 하던데 자유가 무엇입니까? 자유는 자기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 주장하는 데 있어서 제일 방패가 되는 것이 자유입니다.

열 사람이 자유를 주장하게 되면 각각 성격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니만큼 열 사람의 경계선이 생겨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 서구사회가 자유 때문에 전부 다 망해 버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유세계가 자유를 주장하는데, 여러분 자유라는 말을 참 무섭게 알아야 됩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이 세계 위에 올라가서 ‘자유’ 하게 되면 그건 누구나 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밑에서 개인 중심삼고 자유가 어디 있느냐 말입니다.
(107-272~274, 1980.06.01)

보다 차원 높은 질서를 완전히 유지하기 위한 주장에서 자유가 나왔지, 질서를 파탄시키고 체제를 파괴시키기 위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우리들이 제일이다! 먹고 춤추고 록뮤직을 즐기고, 디스코 댄스 하는 것이 제일이다.’ 이렇게 합니다. 사회와 국가와 제도를 전부 다 파탄시키고 무시해 버리고, 질서를 파탄시키는 것이 자유입니까? 그것은 방종이요, 파괴적인 악마의 조작법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16-102~103, 1981.12.27)

자유스러우면 자유스러울수록 그 세계는 질서와 규약이 지켜져야 되는 것입니다. 정밀한 기계면 기계일수록 종횡으로 원리원칙에 의한 질서대로 법칙적인 궤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에 따르게 될 때 자유로운 활동의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과학문명과 사회제도를 중심삼고 볼 때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구조도 자유로운 형태를 요하고 있습니다. 인간만 자유를 요하고 사회제도는 자유를 요하지 않습니까? 사회제도는 인간과 상응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제도가 조직과 체계의 규제 밑에서 형성되었으면 인간은 그 체계화된 제도에 응하고 거기에 대비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도리어 보장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방종적인 자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는 데에는 반드시 길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방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사상은 무방향적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방향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방향 없는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사고방식은 멸망의 사고방식입니다.
(49-190~193, 1971.10.10)

그들에게 최후로 남아지는 것은 무엇인가. 고독이 남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독이 극치에 달하는 경지에 들어가게 될 때에는 너도 믿지 못하고, 나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자신들이 됩니다. 그리고 고독과 불신의 자신이 될 때 우주적인 공포가 휩쓸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자멸을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이런 추세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자유를 부르짖으려면, 과거에 부르짖던 자유나 오늘날 부르짖고 있는 무책임한 자유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이념이 동반된 참된 자유를 부르짖어야 되겠고, 이념적인 동시에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유를 부르짖어야 되겠습니다.
(4-319~320, 1958.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