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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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을 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종교 경전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창세기 1.31 (기독교)

나는 숨겨진 보물이니, 나를 알리기 위해 피조물을 창조하였도다.
하디스 (이슬람)

오, 만유의 주, 만세! 모든 행위의 원천이며 만유를 향유하는 이, 그대는 만유의 혼, 만유의 생명이라! 모든 지락과 환희의 주이시여!
마이트리 우파니샤드 5.1 (힌두교)

행복은 진리와 사랑으로부터 생겨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이기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인간이 그것을 함께 나누기를 요구한다.
과학과 건강, 57 (크리스천 사이언스)

씩씩한 젊은이가 깨끗한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듯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아내로 맞으신다.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너의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신다.
이사야 62.5 (기독교)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맑아져서 즐거움이 넘치게 살아가게 되면,
월일도 확실히 마음 용솟음치면 인간들도 모두 다 같은 것.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 용솟음치면 월일도 인간도 다 같은 거야.
친필 7.109-111 (천리교)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그를 하나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시편 8.4-5 (기독교)

브라흐만의 창조행위는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유희에 의한 것이다.
베단타 수트라 2.1.32-33 (힌두교)

하나님이 하늘과 땅 그리고 천지간의 만물을 창조한 것은 공연한 일이 아니었도다. 하나님이 소일거리를 찾고자 했다면 그분 스스로 그것을 찾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리 아니하고 위선을 향해 진리를 던지니, 진리가 펼쳐지고 위선은 소멸되리니….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그분에게 속함이니, 그분 가까이 거주하는 자들은 그분을 경배함에 거만하지 않고 피로해하지도 않으리라.
꾸란 21.16-19 (이슬람)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당신의 구애받지 않는 주관과 의지를 직접 작용시켜 인간에게 당신을 알고 사랑할 유일한 특성과 능력을 베풀 것을 결정하셨다. 그 능력은 전 피조물에게 기초가 되는 창조 충동과 기본 목적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능력이라.
바하울라 저서들의 낙수집 27 (바하이교)

알라의 선지자가 말했다. “하나님이 이르시길 내가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승리를 하라고 인간을 창조했다.”
알 가잘리, 종교 과학의 부흥

말씀 선집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서 기쁨을 누리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셨다.
(뜻길, P196)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지만 당신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좋다'는 말, 행복하다는 말은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서라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평생을 성악가로 살아온 사람이라도 무인도에 버려져 혼자서 목이 터지라고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행복하겠습니까? 자존하시는 하나님께서도 기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15 2005.09.12)

하나님은 참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동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필연이었습니다. 참사람의 창조이상은 혼자 이루는 이상이 아닌 것입니다. 당신의 높고 선한 뜻을 인간과 더불어 기뻐하시기 위한 이상입니다. 참사랑의 하나님을 바로 이해한다면 오늘날 죄짓고 싸우는 불행한 이 세계는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 아니었음이 자명해집니다.
(400-81, 2002.12.27)

가정에는 반드시 부모가 있고 처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가정이 행복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신이 인류를 찾아 나오는 목적도 신 자신의 행복을 모색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신 자신이 행복의 터전을 찾아 나오는데 인간을 떠난 자리에서는 그러한 이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일치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정서적인 모든 내용을 갖춘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도 역시 그러한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겠다는 것입니다.
(32-179, 1970.07.15)

하나님에게 '당신이 이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서 뭘 할 것이오? 뭘 하려고 그런 세계를 원하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아, 하나의 세계가 되면 기쁘니 좋지' 하실 것입니다. 왜 좋으냐? 좋아서 뭘 하느냐? 좋은 것은 기쁘기 위해서인데, 기뻐서 뭘 하느냐?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슬퍼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지식이 없어서 슬퍼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권력이 없어서 슬퍼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나니 바로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어서 슬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을 하나 만들 수 있는 사랑만 갖는다면 하나님은 기쁜 하나님이 되는 것이요, 영광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요, 더 나아가 행복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과 인간의 심정을 통하고 만물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가진 것이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113-315~316, 1981.05.10)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실 때, 온갖 정성을 다 들이시고 또한 심혈과 당신의 생명의 핵심을 다 기울여 지으셨으며, 사랑과 애정을 몽땅 퍼부어서 지으셨습니다. 어떠한 힘 가지고도 떼려야 뗄 수 없고,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는 인연 가운데서 지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으신 인간이기에 그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평화가 깃들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정과 행복은 그 인간을 통해서만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20-207, 1968.06.09)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보고 좋아하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오늘날 기성교인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 인간은 피조물인데 창조주와 피조물이 같을 수 있느냐? 다른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언제나 홀로 절대적인 자리, 상대가 없는 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 이상 불행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나라의 대통령의 권한을 가졌을지라도, 어머니가 죽어 혼자 살고 있는데 '혼자 사니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하는 아들이 있다면 '이놈의 자식아, 무엇이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인데 아버지가 세계적인 대통령이라고 해서 '아버지, 행복하지요?' 하면 '오냐, 오냐, 행복하다' 그러게 되어 있습니까? 효자라면 혼자 있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내가 어머니 한 분 모셔다 드릴까요?' 이래야 효자입니다.
(57-247, 1972.06.04)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중심한 사위기대를 완성하고, 3대 축복의 말씀을 이루어 천국을 이룩함으로써, 선의 목적을 완성한 것을 보시고 기쁨을 누리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중심한 피조세계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려드리는 데 있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