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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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에 근거한 본심과 심정

종교 경전

율법을 가지지 않는 이방사람이 인간 본성에 따라 율법대로 행할 때 그들이 율법을 갖지 않았을지라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그들은 율법이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그 행위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그 행위를 증언하고 그들의 이성이 그 행위를 서로 고발도 하고 변명도 합니다. 이런 일은 내가 전하는 복음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예수를 통해 사람들의 비밀을 심판하시는 그날에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2.14-16 (기독교)

부드러움과 선은 인간 성품의 바탕이다.
예기 38.18 (유교)

참된 종교란 궁극적으로 인간의 영성에 근거한 덕행이다.
쿤다쿤다, 프라바차나사라 7 (자이나교)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누가복음 17.21 (기독교)

와비사 이븐 마아바드가 말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사도를 만나러 갔을 때, 그가 ‘덕목에 관해 나에게 질문하려 하느냐?’라고 나에게 말하기에 ‘예’라고 내가 대답하였다. 그가 계속하기를 ‘너의 마음에 물어 보아라. 덕이란 영혼이 안식을 취하고 마음이 평안한 것이니라. 죄란 것은 영혼에 혼란을 가져다주고 사람의 가슴에 고통을 주는 것이니,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종교적 충고이니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27 (이슬람)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자신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보는 자,…그는 영웅이며, 신들과 사람들의 스승, 깨달은 자 붓다이다.
육조단경 1 (불교)

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성하면 네 온몸도 밝을 것이요,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 네 온몸이 밝아서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등불이 그 빛으로 너를 환하게 비출 때와 같이 네 몸은 온전히 밝을 것이다.
누가복음 11.34-36 (기독교)

인간에 대한 당신의 계시 속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높이는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의 참된 내면의 자아의 광산 속에 감춰져 있는 그 보석들을 드러내는 것이라.
바하울라 저서들의 낙수집 132 (바하이교)

일체중생이 불성을 지니는데 이것이 참된 자아이다. 그러나 무시 이래로 온갖 미혹에 덮여 있기에 사람이 그것을 여실히 보아 알지 못한다.
선남자야! 어떤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집 어디엔가 숨겨진 황금이 있었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낯선 이가 방편으로 그녀에게 “나는 당신을 부려 김을 매게 할까 하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이 말하였다. “지금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소,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내 아들에게 황금이 묻힌 곳을 가르쳐 준다면 당신을 위해 내가 일을 하겠소.”
그 사람이 다시 말했다. “내가 그 방법을 알고 있으니, 당신의 아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겠소.” 그 여인이 말했다. “우리 집의 남녀노소 그 누구도 묻힌 곳을 알지 못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소?” 이에 그 사람은 묻힌 황금을 캐내어서 그 여인에게 보여 주자 그 여인은 기뻐하며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선남자야, 사람의 불성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아무도 그것을 볼 수 없으니, 이는 마치 그 가난한 여인이 지니고 있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던 황금과 같다.
내가 지금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지니고 있는 불성을 보게 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온갖 미혹으로 가려져 있다. 여래는 일체를 중생에게 한 덩어리 빛나는 황금과도 같은 깨달음의 곳집, 곧 불성을 보여준다.
대반열반경 214-15: 숨겨진 보화의 비유 (불교)

사람은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제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 해서도 아니며 마을의 벗들에게 명예를 얻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그 비난하는 소리를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한 마음은 인의 단서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체(四體)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데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요, 자기 군주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무릇 사단이 나에게 있는 것을 알아서 모두 넓히고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니, 진실로 잘 채우면 족히 사해를 보존할 수 있고, 진실로 채우지 못하면 부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맹자II. A.6 (유교)

말씀 선집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을 향해 달리려 합니다.
(219-118, 1991.08.28)

석가모니도 하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불심을 가지고 있다 했는데, 그 불심이 뭐냐? 그것은 순수한 본연의 마음을 말합니다.
(33-45, 1970.08.20)

'마음의 본원지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그 대상적인 위치에 있는 나다' 하는 이런 평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62-40, 1987.03.22)

인륜도덕은 인류의 양심을 중심삼고 하늘을 향해 바른 길을 가야 됩니다. 바른 길을 가야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양심은 고차적인 이상세계를 향해서 이렇게 발전하려고 합니다.
(90-161, 1976.12.26)

본래 천법의 도리를 따라가는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이 망하는 것을 방비해 주고 보호해 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본래 있다는 것은 뭐냐? 하나님에게 본래부터 그러한 마음이 있기에 인간에게도 본래부터 있게 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자기가 만든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심아, 내가 이렇기 때문에 이런다' 그럽니까? '내 생각이 그렇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고 명령한다고 해서 양심이 작용합니까? 어디인지 모르지만 다른 데서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감정이 자기를 지배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공사문제를 중심삼고 지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1-241, 1970.06.0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만은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지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대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상충되어 투쟁의 역사를 엮어 내려온 것이 사실이지만, 선을 찾아 세우려는 그들의 근본목적만은 모두 동일하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의 본심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시공을 초월하여 선을 지향하고 있는가? 그것은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선의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비록 타락인간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선의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으나 선을 추구하는 그 본심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들로써 엮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갈 곳은 결국 선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원리강론, 인류역사 종말론 2.3)

하나님의 창조는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양심' 이라는 최고 최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지상계에서 일생을 항해하는데 필요한 나침반으로 하사하신 것이 양심이라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흔히들 인생 100년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양심의 작용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양심의 작용 중 최고 최상의 기능이 바로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의 역할 기능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심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의 위치에서 우리의 생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하나님의 대신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인도하고 감시하는 책임이 양심의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우리의 모든 언행은 물론 생각까지도 부모보다 먼저 알고, 스승보다 먼저 알고, 하나님보다도 먼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을 지도하고 감시하는 본원적인 기능을 양심에게 전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정처럼 맑고 투명해야 할 인간의 양심에 타락성의 때가 끼어 지금까지 각종 죄악과 질병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 주관권의 이 사악한 세계에서 하루라도 빨리 해방-석방을 받고 싶어 울부짖고 있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5-277~278, 2007.07.04)

양심의 방향성과 목적의 내용에 있어서 무엇이 되느냐 하면 참사랑이 목적의 내용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방향, 양심의 뿌리의 방향과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변하지 않는 이런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16-311~312, 1991.04.15)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를 100퍼센트, 120퍼센트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타락한 세상에 하나 남아 있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불씨와 같이 남아 있습니다. 이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잘만 피우면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없으면 구원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본성의 씨가 남아 있기 때문에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99-276~277, 1990.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