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기 양심과의 투쟁
종교 경전
너는 평소에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할 것이나, 네가 죄를 지을 때는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칸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베드로전서 3.16 (기독교)
마음은 이중적이다. 순수한가 하면 또한 불순하다. 욕망과 결합하면 불순하게 되며 욕망을 완전히 여의면 순수하다.
마이트리 우파니샤드 6.34 (힌두교)
나는 자책하는 영혼에 걸어 맹세하노라.
꾸란 75.2 (이슬람)
어떤 사람이 아무런 사랑스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유익한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심약한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 주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런 사랑스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는 괴로워했다. ‘나는 악행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그는 괴로워했다. 이 두 가지 생각은 양심을 마비시킨다.
이티붓타카 25 (불교)
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그러나 더럽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생각과 양심까지도 다 더러워졌습니다.
디도서 1.15 (기독교)
몸에 응혈이 있어 그것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면 온 몸이 건강하고, 그것이 온전치 못하면 온 몸도 그와 같지 않느냐? 이것이 바로 마음이지 않느냐?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6 (이슬람)
하기야, 나는 육체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잡힐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에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4-8 (기독교)
선한 이의 영광은 선한 양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을 선하게 유지하면 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선한 양심은 엄청난 열매를 맺고,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한 양심은 언제나 반항하며 공포에 질려있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말씀 선집
사람은 자기 생애의 인연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앞에 모시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철칙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복종치 않는 자는 하늘이 때립니다.
(4-260, 1958.08.03)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천법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17-39, 1966.11.06)
탕자들은 죽어도 고향에 못 찾아갑니다. 양심이 그러합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다른 누가 도와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는 것입니다. 형님 앞에 잘못하면 형님 앞에 나서기 싫어집니다. 형님은 모르더라도 양심이 미안한 것입니다. 그러니 형님을 멀리 대해야 되고 그 앞에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지 이치가 질서를 따라서 돼 있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둔해서 모르지, 예민한 사람은 다 아는 것입니다.
(400-328, 2003.01.11)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신 속에 가장 소중한 스승을 일생동안 내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승을 잘못 대우하고 짓밟고 남용합니다. 그 스승은 바로 인간의 양심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항상 우리 자신에도 도움이 되도록 말을 하며 우리를 참사랑과 연결시켜 주고자 합니다. 부모와 같이 우리의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선하고 비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그러나 각자의 마음속에는 또한 양심의 소리에 항상 거역하는 반란자가 있습니다. 그 반란자는 바로 육체인 것입니다. 육체는 양심을 비참하게 짓밟고 남용해 왔습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양심의 적이었던 육체, 우리 자신의 생명과 인성을 크게 손상시킨 육체의 편을 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양심은 항상 마음속의 스승이요, 부모로서 인류의 궁극적인 부모인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만 합니다. 이때 양심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며, 나아가서는 '제2의 하나님' 이라고까지도 불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양심의 적인 육체에 대해 동정적이며 육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육체를 통제하고 역제하며 양심의 정당함을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육체는 육체적인 욕망만을 추구할 뿐입니다. 배가 고프면 훔쳐서라도 허기를 면하려고 합니다. 육체는 언제나 편안함을 추구하며 남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육체는 나름대로의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육체의 영역을 주관해야 하는 엄청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201-208, 1990.04.09)
하나님은 지혜의 대왕이십니다. 인간이 완성에 이르는 길을 먼 곳에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 가장 은밀하고 안전한 곳, 바로 여러분의 양심 속에 그 길을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양심은 여러분의 주인입니다. 여러분의 스승입니다. 여러분의 부모 대신입니다. 양심은 여러분의 모든 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압니다. 여러분의 생각까지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것이 여러분의 양심입니다. 스승보다, 부모보다, 하나님보다 먼저 압니다.
이런 양심이 여러분을 위해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충고를 해줬습니까? 밤이나 낮이나 나쁜 생각만 해도, '네 이놈!' 하고 나무라면서 지치지도 않고 여러분을 끌고 강을 넘고 고개를 넘으려고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양심은 언제나 참된 주인의 모습을 지니고 여러분을 보호하고 도우려 하는데도 번번이 배반한 여러분이 아닙니까? 우주로부터 점지 받은 하나밖에 없는 귀한 스승인 데도 불구하고 이 선생을 여지없이 천대한 여러분의 몸뚱이를 어찌하렵니까?
여러분의 본연적 사랑을 이어줄 수 있게 한 부모 대신 보내 준 양심을 무자비하게 유린한 육신만을 붙들고 그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한평생을 허송세월로 막을 내리겠습니까?
(447-163~164, 2004.05.01)
여러분은, 나는 당당한 하나의 인격자인데 내 양심이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양심은 자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틀림없이 자고 있습니다. 양심은 누구의 제재나 지배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양심은 쉬지 않습니다. 아무리 캄캄한 밤중에도, 환한 곳에서나 호화찬란한 곳에서도 잘못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야, 이놈아!' 하면서 몸을 치는 것이 양심입니다. 이러한 스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의 양심이 자고 있다고 말하는 이 젊은 사람의 말이 사실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고 있는 양심을 깨웁시다.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잠자고 있는 민족의 양심을 깨웁시다.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잠자고 있는 세계 인류의 양심을 깨웁시다. 하늘땅을 품고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종말세계를 향해 아니 가려야 아니 갈 수 없는 입장에 처한 인간들의 양심을 깨워 줍시다.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세계 인류 전부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고 잠자고 있는 양심을 깨울 수 있는 종교가 되어 있습니까? 그런 내용을 갖춘 주의나 이념이 있습니까? 양심이 깨어 거기에 들어오는 그 충격, 그 결의, 그 각오는 세상만사를 일시에 밟아 치울 수 있는 힘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칼이 무서운가, 죽음이 무서운가, 내 양심에서 일어나는 이것을 어느 누가 막을소냐? 아무도 못 막습니다.
(10-284~285, 1960.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