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늘의 기쁨
종교 경전
당신께서 나의 인생길을 몸소 가르쳐 주시니, 당신을 모시고 흡족할 기꺼움이, 당신 오른편에서 누릴 즐거움이 영원합니다.
시편 16.11 (기독교)
일월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즐거운 놀이를 보고 싶은 까닭이다.
친필 14.25 (천리교)
행복은 진리와 사랑으로부터 생겨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이기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인간이 그것을 함께 나누기를 요구한다.
과학과 건강 57 (크리스천 사이언스)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일도 없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았던 일을,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해 두셨다.
고린도 전서 2.9 (기독교)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어떤 즐거움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꾸란 32.17 (이슬람)
나는 여래이니 가장 높은 양족존 세상에 출현함은 큰 구름이 덮이는 듯 바짝 마른 일체중생 흡족하게 비를 주어 괴로움을 다 여의고 안온한 낙을 얻고 세간의 즐거움과 열반의 기쁨을 얻네.
법화경 5 (불교)
카르마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우주의 구극에 들어가 일체를 관조하여 모든 것을 알며 영원한 지복을 누리느니라.
쿤다쿤다, 판차스티카야 170 (자이나교)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염원하여 마음의 편안을 찾느니라. 실로 하나님을 연원할 때 마음이 편안하니라.
꾸란 13.28 (이슬람)
나의 성모시여! 거룩한 스승과 하나됨으로 내가 지복을 얻었나이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그와 하나 됨 속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 즐거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주옥같은 선율의 천사들이 내려와 성가를 노래합니다. 그대 모두 찬양하라, 가슴속에 품었던 주의 노래를! 나나크가 말하노니, 나는 거룩한 스승과 하나 되는 지복을 얻었도다.
아디 그란트, 람칼리, 아난두, M.3, p.917 (시크교)
지고선이 우리의 것이기를! 바라는 대로 복 받기를 원합니다. 보지 못할 곳이 없는 당신의 영으로. 오, 주여! 당신의 의로서 주실 선한 마음의 놀라운 기적을 내리소서! 언제나 장수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아베스타, 야스나 43.2 (조로아스터교)
말씀 선집
기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목적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인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정이 보이는 인간의 심정에서 현현되는 것입니다.
(27-29, 1969.11.15)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하나님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또 만물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났고 만물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81-334, 1975.12.29)
도대체 신의 창조는 무엇을 목적한 것이냐? 신이 있다면 신이 창조한 그 목적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이 바라는 목적과 같은 것이냐? 하나님께서도 기쁘시기 위해서 지으셨던 것입니다. 기쁘고 좋기 위해서 말입니다. 기쁘고 좋은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기쁠 것인가? 돈을 놓고 기쁠 것인가? 이 우주의 모든 만상을 놓고 기쁠 것인가? 인간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놓고 기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놓고 기쁘시기 위해서 만물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 만물들을 그런 목적하에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들이 바라는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며 최고의 종착점이 무엇이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사랑을 통해 기쁨을 목적으로 만물을 지었다 할진대는, 피조세계의 만물은 사랑을 통해서 연결될 수 있는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만물은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이상적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114-63, 1981.05.16)
인정(人情)과 천정(天情)의 합일점이 행복의 출발점이다.
(뜻길,p.174)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부모, 형제, 친척을 찾아 함께 즐기고자 합니다. 좋은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요, 영원한 것은 심정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식입니다. 즉 부모와 나입니다. 하나님과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나는 아들입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를 찾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12-104, 1962.12.16)
어떤 사람이 요런 물건, 요런 물건, 요런 물건을 잔뜩 만들어 놓고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이 '아이고, 좋아! 아이고, 좋아!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게 되면 주인이 그걸 보고 '정말 좋아요? 정말 좋아요? 하고 물어 자기보다 더 좋아한다는 걸 확인하면 그에게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사랑하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든 자기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자기의 것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 있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쥐새끼를 봐도 '아이고, 하나님이 저걸 얼마나 사랑하시겠느냐?' 하며 사랑하고, 강아지새끼도 사랑하고, 나비를 봐도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러면 너 줄게, 너 줄게. 너 가져라, 너 가져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주지 그렇지 않으면 안 줍니다. 주인 입장에 있으면 아는 것입니다. 그저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래, 너 주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사랑의 자극체로 나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사랑을 유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만물을 사랑하는 걸 볼 때 하나님이 '그 녀석 나보다 나은데' 하십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팔이 있다면 뒤로 와서 붙들고 안고 '야야, 이 녀석아! 좋구나!' 이럴 판입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붙들 때 나도 좋아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붙들면 하나님이 '얘, 그건 안 된다' 그러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좋다고 자꾸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께로 무한히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도 '좋다, 좋다, 좋다' 그러십니다. 그러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취해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쩌겠습니까? 하나님 만나서 사랑의 병이 나서 취해 놀고 있으면 하나님 그걸 보고 좋아하시겠습니까, 나빠하시겠습니까? '아, 내 사랑이 좋긴 좋구만. 하하!' 하고 크게 웃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멘' 하는 것입니다. '에이, 고약한 녀석! 에이, 고약한 것' 그러시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아이고, 좋다!' 그러시겠습니까? 대단히 좋다, 그 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다음에는 둘이 취해서 붙들고 타든 깔든 아무개를 데려가도 좋고, 꽁무니에 그냥 붙여도 좋고, 다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이 제일 바람직한 길이 아니겠느냐? 하나님도 바라고 인간도 바라고 만물도 바라는 길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111-171~172, 1981.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