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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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고난

종교 경전

사람이 큰 고통에 처하게 되면 “아이고 두통이야, 아이고 내 팔이야”라고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악한 자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보시고서 고통을 당하신다면 의인이 흘리는 피를 보시고서는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시겠느냐.
미슈나, 산헤드린 6.5 (유대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마태복음 23.37 (기독교)

“그들이 고통으로 인하여 그가 고통을 당하였고”[이사야 53.9]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는 나 여호와 역시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을 너는 모르느냐? [불타는]가시나무 속, 내가 너에게 말하였던 그곳을 너는 알아야 한다. 그곳은 내가 이스라엘의 고통 가운데 서 있던 곳이다.”
출애굽기 랍바 (유대교)

내 아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그러나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바알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워 올렸다.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팔에 안아 키워 주고 죽을 것을 살려 주었지만, 에브라임은 나를 몰라본다. 인정으로 매어 끌어 주고 사랑으로 묶어 이끌고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에 비비기도 하며 허리를 굽혀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지만, 에브라임은 나를 몰라본다.
호세아 11.1-4 (기독교)

정각자께서 생사고해를 헤매는 중생을 보시고, 이들을 구제하고자 자비심을 내었더라.

미혹된 길을 방황하며 갈 길 몰라 허둥대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오욕의 진창에 뒹굴며 방종하고 탐닉을 일삼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재물을 탐하고 처자에 발목 잡혀 헤어날 길 알지 못하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수족으로 죄를 짓고, 혀로 사악을 말하여, 가슴으로 애욕을 달구며, 온갖 과보를 받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오욕의 타는 갈증을 갈애의 물로 축이며, 끝없이 이를 즐거워하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행복을 구하되 선업을 쌓지 않으며, 고통을 싫어하되 스스로 악업을 짓기에 즐거워하며, 천계의 안락을 원하되 땅에 내린 그의 가르침을 좇지 않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생로병사의 고통을 두려워하되 다만 생로병사의 업을 짓는 일에 몸을 맡기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고통과 비탄의 불길에 몸을 사를 뿐 서늘한 삼매의 물길을 알지 못하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의 마음을 내었더라.

악의 세상에 살며 포악한 군주에 짓밟히고 온갖 질병으로 고통당하되, 다만 망령되이 쾌락을 쫓아가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악한 전쟁을 일삼으며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또한 고통의 끝없는 악의 과보를 받을 운명을 아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그의 화현에 때맞추어 여러 생을 받고 그가 설하는 거룩한 법을 들었으되, 이를 받아 삭여내지 못하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지 못하는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자비심을 내었더라.

더러는 밭을 갈아 씨 뿌리며, 더러는 머리에 이고 등에 짐을 지고 애써 사고팔며, 더러는 악덕거래를 일삼지만 마침내 쓰라림을 얻을 뿐인 인간 세상을 보시고, 이를 위하여 그가 자비심을 내었더라.
우파색계경 (불교)

말씀 선집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투입하고라도 보호하고 싶은 것입니다. 왜? 창조이상이 그렇습니다. 본래 창조이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 때문에 자기 생명까지 투입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슬픈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206-26, 1990.10.03)

본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내정적 심정의 세계를 알고 나서 얼마나 많은 날을 눈물과 통곡으로 지새웠는지 모릅니다. 당신의 자녀로 창조해 놓고 영원한 참사랑의 대상 자리에 세우려 했던 인간 조상이 타락의 길로 떨어진 후, 지난 수천수만 년의 탕감복귀노정을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한에 맺힌 모습을 어느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까? 불쌍하고 억울한 하나님이요, 분통이 터지고 한이 넘치는 하나님의 노정이었습니다.

영광의 아버지요, 대왕이신 하나님이 그 왕좌와 부모의 자리를 원수 사탄에게 빼앗겼습니다. 엄연히 살아서 역사하시는데도 죽었다고 조롱하고 천대해도 인고의 길을 걸으시며 인간 스스로 깨우치는 그날만을 기다려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위하는 참사랑을 토대로 하여 영원을 두고 창조 섭리를 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자식이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우주를 폭파해 버리고 다시 시작하지 못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전지전능의 권한으로 온 세계와 사탄까지도 한꺼번에 심판하고 깨부수어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이신데도, 그런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신데도, 지금까지 하나님은 고독단신으로 온갖 수모와 참소를 감수하시면서 영어(囹圄)살이를 자청해 오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어느 한 날이라도 진정한 동정과 참회의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악마의 핏줄을 받아 사탄의 주구(走狗)가 돼 있는 인류를 놓고 혀를 깨물고 참으시며 해방과 석방의 한 날만을 고대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못 본 척 눈을 감으실 수 있겠습니까?
(447-166~167, 2004.05.01)

아들을 그렇게 죽일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딱한 사정을 그 누가 알았겠느냐? 그것은 성경에 없습니다만, 아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딱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기독교의 예수를 믿겠다고 그렇게 아둥바둥 모이는 것도 비참하다 말입니다. 모든 선민의 편이 돼야 할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는 곳마다 피를 흘리고, 모가지가 떨걱떨걱 떨어지지 않나, 기름에 튀겨 죽지 않나, 태워 죽지 않나…. 이러한 운명에 부딪치는 것을 보고 ‘아이구, 하나님은 막을 수 있지 않소?’ 하겠지만 전지전능하면서도 그것을 참아야 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한이 맺히겠습니까? 그거 생각해 봤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최고로 높으냐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번 깨끗이 청산해 버리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64-222~223, 1972.11.12)

여러분, 우리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아버지입니까? 역사노정에서 제일 비참하게 걸어오신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에 있었던 어떠한 참사 이상의 참사를 당해 나오신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죽음의 울타리에서 허덕이는 자식을 바라볼 때 ‘너희들 잘하는구나!’ 하는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슬픔에 사무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슬픈 자리에 계셨으며, 고통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고통스런 입장에 계셨던 아버지셨습니다. 또한 죽음으로 사라지는 그 아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은 아버지이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길을 가다 허리가 굽은 불쌍한 노인을 보게 되면 ‘내 아버지도 저런 모양으로 찾아 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또 부풀은 노동자의 손을 보게 될 때도 ‘아들을 찾으려는 내 아버지는 저 이상의 모양을 하셨겠구나!’ 하고, 불쌍한 거지를 보게 될 때도 ‘이 거지는 거지가 아니라 내 아버지구나!’ 하며 머리 숙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보잘것없고 가련한 인생이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내 아버지라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자기의 처지와 자기의 위신을 초월하여 행동할 수 있어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8-345~346, 1960.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