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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 눈물을 대신하기

종교 경전

백성은 영영 살아날 길이 막혔습니다. 가슴은 미어지고 마음은 터질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안 계시는가? 왕 노릇 그만하시려고 물러나셨는가?” 이렇듯이 내 딸, 내 백성이 신음하는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려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직도 우상을 섬기며 내 속을 썩여 주느냐? 어찌하여 남의 나라 허수아비를 들여다가 섬기며 내 속을 썩여 주느냐?
여름도 지나고 추수도 끝났건만 우리는 이제 살아 나갈 길이 없습니다. 내 딸, 내 백성이 치명상을 입었는데 전들 어찌 아프지 않겠습니까? 앞이 캄캄하고 마음은 떨립니다. 길르앗에 약이 떨어질리 없고 의사가 없을 리 없는데, 어찌하여 내 딸, 이 백성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합니까?
내 머리가 우물이라면 내 눈이 눈물의 샘이라면 밤낮으로 울 수 있으련만, 내 딸, 내 백성의 죽음을 곡할 수 있으련만.
예레미야 8.18-9.1 (기독교)

하나님을 믿고 바라는 자들이 나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당신을 찾는 자들이 나로 인하여 욕보지 않게 하소서. 이 몸은 하나님을 위하여 욕을 당했고 온갖 모욕을 다 받았습니다. 동기간에게는 따돌림을 받았고 내 어머니 소생에게는 남과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당신 집을 향한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 당신 향한 욕설이 이 몸 위에 쏟아져 있습니다.
시편 69.6-9 (기독교)

너에게 부족한 것을 달라고 기도하지 마라. 그러한 기도는 열납되지 않는다. 기도하고 싶을 때는 세상 저 꼭대기에 계신 하늘을 위해 기도하라. 네가 원하는 바람 역시 주의 영광 안에 있다. 인간은 주 하나님의 일부이며, 개체의 욕망은 곧 전체의 욕망이니, 전체가 개체가 원하는 것을 같이 갈구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너의 기도가 전체를 향한 욕망으로 향하게 하라. 하늘의 영광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 유랑으로부터 구함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바알 셈 토브

말씀 선집

역사적인 서러움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 심정을 체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곳에 머물든지 하나님을 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 싸우게 될 때 그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자리에 찾아오셔서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서러움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일신에 있는 동시에 이 나라, 이 세계, 이 만물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청산 짓고 하나님의 기쁨을 복귀해 드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우리에 있어서 생명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 하는 것입니다.
영계의 영인들이 이 땅에 오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땅이 탄식의 울타리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 자신이 머물러 있는 환경이 탄식의 조건을 벗어날 수 있고,자신의 몸을 통하여도 탄식의 조건을 벗어날 수 있고, 사탄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 안식권내에 들어섰다면, 하나님은 나를 협조해 주시게 됩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슬퍼하고 염려하며 눈물짓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서는 사탄도 그와 같은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의 세력도 근본적으로 붕괴됩니다.
(4-60, 1958.03.20)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구속을 받고 있구나. 나 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을 받고 있구나. 나라는 한 개체 때문에 하나님이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구나. 나 때문에 예수도 죽었구나. 나 때문에 성신이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붙안고 뒤넘이쳐 나오는구나. 하나님이시여,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안식시켜 해방의 자리에 옮겨드리겠습니다. 예수도 성신도 해방의 자리에 옮겨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는 신앙에 주린 자, 소망에 주린 자, 사랑에 불타는 자를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7-162~163, 1959.08.30)

만민이 탄식권을 벗어나지 않는 한, 부모의 입장에 선 하나님은 탄식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근심하고 있는데 부모가 편안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됩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되느냐? 하나님이 만민을 사랑하지 못하는 구속권내에 있기 때문에 만민을 대해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해방권을 하나님 앞에 찾아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졌기 때문에 타락선을 넘어선 승리한 아들딸이 되어 해방시켜 드려야 됩니다.
(65-100~101, 1972.11.13)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이 고통을 받게 된다면 구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누가 구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정을 더 잘 알고, 그 이상의 그 무엇을 갖기 전에는 고통의 자리를 모면할 길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행복해 할 수 있으면, 그 외의 고통스러운 모든 존재는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결론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고통을 받는 입장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게 한 것은 아담 해와의 타락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우리 인간들은 그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들들이 타락했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의 연결이 벌어집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를 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끊겨 나가는 것은 육적인 고통이요, 마음적인 고통이요, 심정적인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하나님 앞에서 떠나게 되었을 때,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쳤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의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이 당하고, 마음이 당하고, 심정이 당한 고통은 역사적 고통의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신, 자기 몸, 자신의 실체적인 무대가 되어야 할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몸 자체가 끊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침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의 자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잃어버린 자리요, 하나님의 몸이 침해를 받는 자리요, 하나님의 사랑이 침해를 받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결국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아들딸인 동시에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 사랑의 실천적 무대, 즉, 실천적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느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 관념적으로는 느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실제의 입장을 어떻게 여러분이 체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인이 있는데, 아들딸을 잃어버리고 남편을 잃어버리고 부모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가정합시다. 그럴 때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때의 그 여인의 모습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우리 타락한 인간권 내에서 심정이 찢길 때로 찢기고,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여인으로서도 비참한 것인데, 이런 심정의 고통을 느끼지 않은 순결한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타격이 미치게 되었을 때,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오늘날 자살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큼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이렇게 볼 때 고통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이외에 딴 사람은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최고의 고통의 절정에서 구원섭리를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을 보게 된다면, 다 파탄되어도 시일이 가면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하나님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적 하나님 앞에 시간관념이 있습니까? 천년만년이 그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이것을 빼 버릴 수 있습니까?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이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다른 데에서도 전능의 하나님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더 절대적입니다.
자식이 죽고 앞으로 부모가 죽으면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내가 떼어버린다.’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망권 내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았던 하나님의 마음을 그 사망권 내에 그냥 두고는 풀길이 없습니다.
(94-34~36, 1977.06.26)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봤느냐? 하나님이 하신 수고 앞에 대신 수고하기 위해 사지가 찢기는 길이라도 찾아가려고 얼마나 발버둥쳐 봤느냐?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라는 그 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런 공적인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인 나를, 혹은 우리 조상을 잃어버렸을 때 당신의 마음에 얼마나 슬픔이 사무쳤습니까? 또한 그 후손을 통하여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당하시던 수욕과 고통과 극난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라고 위로해 드리면서 무한히 동정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권한으로 온 세계와 사탄까지도 심판해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지지리 수고하는 입장에 서서 손을 대려야 댈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이 가져야 할 환경을 갖지 못한 채 고독단신으로 사탄 앞에 참소 받고 사탄세계에 발판을 몽땅 빼앗겨서 신음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입장을 동정하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51-111~112, 1971.11.18)

아버지여! 당신의 슬픈 마음이 땅 위에 서려 있는 것을 인간들이 모르고 있사옵고, 하늘의 서글픈 눈물자국이 인류역사의 발자취에 스며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사옵니다. 한없는 하늘의 탄식이 저희의 마음과 몸에 감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는 하늘 앞에 면목을 세울 수도 없고 하늘의 신임을 받을 수도 없는 패역한 인간의 후손이 됨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 땅에는 당신의 눈물을 거두어 드릴 자가 없사옵고, 당신의 슬픔을 붙들고 위로해 드릴 자가 없사옵고, 당신이 가시는 그 길을 지킬 자가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한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하늘의 한이 사무친 땅이라는 것이요, 슬픔이 있다 할진대 하늘의 슬픔이 사무친 땅이라는 것이요, 원한이 있다 할진대 하늘의 원한이 사무친 땅이라는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슬픔의 제물이 되지 않으려야 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사옵고, 한스러운 자리를 넘지 않으려야 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사옵니다.

낙망 가운데에서 최후의 음성으로 하늘을 향하여 ‘아버님이여!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을 때가 되었사옵고, ‘아버님이여,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인류를 찾아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어야 할 끝 날이 당도하고 있사온데, 이러한 때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서러워한 자 누구이오며, 아버지의 마음을 붙들고 통곡하는 자 그 누구이옵니까? 그런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아버지의 참다운 아들딸이라 할 수 있고, 아버지의 실체적인 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6-235~236, 1959.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