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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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에 관한 무지

종교 경전

하나님을 망각하는 자들처럼 되지 말라. 만일 그리하면 그분은 그들 자신의 영혼을 망각하도록 하느니라.
꾸란 59.19 (이슬람)

그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지 않고 감사도 드리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이 허황하여 그 분간 없는 마음이 어두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는 자라고 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자가 되어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이나 새나 네발 가진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기 욕정대로 서로 자기들의 몸을 욕되게 하며 더럽히는 것을 그들의 자유에 맡겨 두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숭배하며 섬겼습니다. 그러나 영원하도록 찬송을 받으실 분은 창조주뿐입니다.
로마서 1.21-25 (기독교)

어리석은 자들, 제 속으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들 하면서, 썩은 일, 추한 일에 모두 빠져서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여호와, 하늘에서 세상을 굽어보시며 혹시나 슬기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 찾는 자 혹시라도 있는지 이리저리 두루 살피시지만 모두들 딴길 찾아 벗어나서 한결같이 썩은 일에 마음 모두어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언제나 깨달으랴, 저 악한들. 떡 먹듯 나의 백성 집어삼키고 하나님은 부르지도 않는구나.
시편 14.1-4 (기독교)

누구든지 다른 이에 대하여 악을 행하려는 자는 신을 기억하지 않는다.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하늘을 알지 못하는 자는 덕에 대해서도 순수하지 못하다. 도에 통달하지 못한 자는 어떤 일도 잘 하지 못한다. 도를 알지 못하는 자는 불쌍하구나!
장자 11 (도교)

하나님을 부정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감히 거짓말을 못할 것이다. 안식일에 랍비 르우벤이 티베리아에 있을 때 한 철학자가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증오스런 사람은 누구입니까?” 랍비 르우벤이 대답하였다. “창조주를 부정하는 사람이다.” 철학자가 “어째서 그렇습니까?”라고 물었다.

랍비 르우벤이 대답하였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결코 살인하지 않을 것이며, 간음하지 않을 것이며,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며, 이웃에게 거짓 증언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기 전에 이러한 십계명을 부정하는 자는 결코 없는 법이다. 십계명의 내용과 같은 죄를 짓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 자는 결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토세프타 셰부오트 3.6 (유대교)

악귀적인 사람은 마땅히 삼가야 할 것은 하며,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순결도 선행도 진리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도 천칙도 도덕이나 윤리도 없다. 육적 쾌락이야말로 인생의 전부다. 그 외에 또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견해를 고집하면서 미망에 빠진 자들은 보잘것없는 지혜로써 악한 마음으로 잔인한 행위들을 일삼으니 그들은 결국 세상을 파멸시키는 세상의 적이 된다.

위선과 자만, 그리고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혀 미망 속에 살며, 채워질 줄 모르는 욕망을 좇아 부정한 목적으로 만사를 행한다. 오직 죽음으로써 끝이 날 한없는 근심에 자신을 맡기고서도 욕망의 충족을 최고로 삼아 이것뿐이라고 확신한다.

온갖 음모와 근심의 사슬에 얽매이고 노여움과 탐욕에 이끌리며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부정한 수단으로 재물을 쌓으려 애쓴다.

그들은 말한다. “오늘은 이것을 얻었고 내일은 저것을 얻으리라. 이것은 내 것이며 저것도 또한 내 것이 되리라. 저 적은 내가 멸하였고 다른 적들도 또한 멸하리라! 나는 신과 같지 않은가?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도다. 나는 성공한 자요 강한 자니 행복한 자로다. 나는 부자이며 고귀한 사람이니, 나와 견줄 자 감히 누군가? 나는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칠 것이며 자선을 베풀리라.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의 관용을 즐기리라.”

무지에 의해 미혹된 자들의 행위는 이러하다. 자신의 탐욕에 얽매이고 미망의 그물에 걸려 육욕을 탐닉하는 그들은 어두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리라.
바가바드기타 16.7-16 (힌두교)

말씀 선집

지금까지의 출발 기준이 무지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이라든가 인간의 정착 기지가 가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으로부터 세계까지 엉망진창으로 되어 있습니다.
(325-220, 2000.07.01)

일반인들에게는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먹느냐, 어떻게 차리고 사느냐 하는 문제, 이것이 중심입니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인륜도덕에서 서로가 발전하고 좋을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민족과 국가와 세계의 문화 배경의 차이에 따라서 도덕 기준이라든가 사회제도가 전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된다면 오늘날 역사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가야 할 본연의 기준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표준으로 세워 나가는 인륜 도덕들이 여러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로 수습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본래 인간이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살다가 본래의 갈 길, 본연의 세계에 근거해서 우리가 태어나 가지고 살다가 가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이것이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140-122~123, 1986.02.09)

인간은 죽으면 그만이고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들이 세워 놓은 이상적 환경에서 죽기 전에 누구보다도 잘살아 보고 싶은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세계적인 환경에서 행동을 해보고, 한번 관계를 맺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향락에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윤리, 도덕 등 모든 것이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가치관의 상실이라는 것도 유만부동이지, 역사적 전통까지도 거부하고, 가정의 부모와 형제 부부라는 가정제도까지 전부 파탄시켜 놓았습니다. 모두 개인적 향락을 위해 모든 상대적 여건을 제거시키고 있습니다. 개인의 향락을 즐기려는 데 부모가 있어서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향락의 길을 걸어가려는데 그 여편네가 있어서 반대하니 여편네를 얻지 않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172-15~16, 1988.01.03)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지향하는 하나의 목적세계, 하나의 이상세계를 실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그와 같이 모르는 자리에서 타락한 선조를 중심삼고 대를 이어 태어난 인간들이기 때문에 인간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140-14, 1986.02.01)

인간이 타락을 지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이 무지에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은 마음과 몸의 내외 양면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지적인 면에 있어서도 내외 양면의 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지에도 내적인 무지와 외적인 무지의 두 가지가 있게 된다.
내적인 무지란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영적인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사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내세와 하나님에 대한 존재 여부, 또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한 무지이다.
그리고 외적인 무지란 인간의 육신을 비롯한 자연계에 대한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물질세계의 근본은 무엇이며, 그 모든 현상은 각각 어떠한 법칙에 의하여 일어나는가 하는 것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원리강론, 총서)

영적인 무지는 종교로써 타락인간 가운데 잠재해 있는 그 본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이 보이지 않는 원인적인 세계를 찾아 나아감에 따라 점차 일깨워져 왔다. 그러나 종교는 누구나가 다 간절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인 면의 계발은 어느 특수한 인간에 있어서는 비약적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완만한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에 있어서도, 영적인 면에서는 고대인이나 대차 없는 인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원리강론, 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연장시대 7.2.2)

미국에 와서 놀란 것은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 제기랄)’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쁜 말을 할 때나 놀랄 때나 욕할 때 ‘지저스 크라이스트!’ 하는데 그것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복 준다는 말입니까, 화 준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생각과 자기들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좋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젊은 놈들은 전부 연애하고 성 개방이니 뭐니 해가지고 마음대로 놀고 싶은데 하나님은 안 된다고 하니 좋아하지 않습니다.
(91-22, 1977.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