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슬픔의 세계
종교 경전
고성제(苦聖諦)란 다음과 같다. 태어남이 고통이요, 늙음이 고통이요, 질병이 고통이요, 죽음이 고통이요, 슬픔과 괴로움과 절망이 또한 고통이라,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것이 고통이요, 원한 있는 이와 만나는 것이 고통이요, 바라는 바가 채워지지 않음이 고통이라. 필경 집착으로 가득한 오온은 본래 고통이라.
상윳타 니카야 56.11 (불교)
땅에서 불행이 솟아나는 일 없고 흙에서 재앙이 돋아나는 일도 없으니 재난은 사람이 스스로 빚어내는 것, 불이 불티를 높이 날리는 것과 같다네.
욥기 5.6-7 (기독교)
이 세상은 감관들의 접촉으로 불타오르며 고뇌에 빠져 스스로 한탄하네. 내 것이라 부르는 것은 무엇이나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무상하리라. 변하여 다른 것이 되는 것 그것이 만유의 본성인 것을 그러나 그 속에 빠져 즐거워하네. 기쁨 속에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을 품은 것은 무엇이나 고통이라.
우다나 32 (불교)
비구들이여,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불타고 있는 모든 것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눈이 불탄다. 보이는 형상들이 불탄다. 눈으로 짓는 인상이 불탄다.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모든 감각들은 눈으로 짓는 인상으로 인하여 일어나느니, 그것 또한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는가? 욕망의 불로 타고 증오의 불로 타며 미혹의 불로 탄다.
내가 말하노니, 그것은 태어남으로 불타고 늙음으로 불타며 죽음으로 불타며 슬픔, 비탄, 고통, 고뇌, 낙심으로 불탄다. 귀가 불탄다. 소리가 불타며 듣는 의식이 불타며 귀가 짓는 인상이 불탄다.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모든 감각들이 귀로 짓는 인상으로 인하여 일어나느니, 그것도 또한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는가? 욕망의 불로 타고 증오의 불로 타고 미혹의 불로 불타고 있다. 내가 말하노니, 그것은 태어남으로 불타고 늙음으로 불타며 죽음으로 불타며 슬픔, 비탄, 고통, 고뇌, 낙심으로 불탄다.
코가 불탄다. 냄새가 불타고…. 혀가 불탄다. 맛이 불타고…. 몸뚱이가 불탄다. 접촉되는 대상들이 불타고 접촉하는 의식이 불타며 접촉하는 감각이 불타며…. 의근(意根)이 불탄다. 상념들이 불타고 상념 하는 의식이 불타며…. 무엇으로 더불어 불타는가? 욕망의 불로 타고 증오의 불로 타며 미혹의 불로 탄다. 내가 말하노니, 태어남으로 불타고 늙음으로 불타며 죽음으로 불타며 슬픔, 비탄, 고통, 고뇌, 낙심으로 불타고 있느니라.
상윳타 니카야 35.28, 불의 설법 (불교)
파리드여, 나는 혼자만이 슬픔을 지녔다고 여겼더니 슬픔은 지천에 널렸도다. 내가 높은 지붕에서 굽어보았거늘 집집마다 슬픔의 불길로 휩싸였도다.
아디 그란트, 샬로크, 파리드, p.1382 (시크교)
말씀 선집
본연의 동산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사망의 세계에 떨어져 흑암과 싸웠사옵고, 원수들의 장중에 사로잡혀 탄식과 절망 가운데 있었사오나 본연의 마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양심을 통하여서는 본연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6-291, 1959.06.14)
타락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오늘날 어떠한 세계에 처해 있느냐? 행복한 세계가 아닌 불행한 세계에 처해 있고, 기쁨의 세계가 아닌 슬픔의 세계에 처해 있으며, 감사하며 사는 세계가 아니고 원망하며 사는 세계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런 불행한 세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코 여러분 앞에는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불행한 자신임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빼어낼 수 없는 비통한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탄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증거입니다. 또, 여러분에게는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지요? 이것은 본연의 에덴동산을 향해 나가지 못하도록 사탄이 우리의 마음에 철망을 씌워 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생명이 없는 사망의 세계이며, 절망과 암흑의 세계입니다. 인간들은 원래 생의 가치를 노래하면서 살아야 할 입장에 있었고, 생명을 중심삼고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과 화동할 수 있었던 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하나님의 이상 앞에 설 수 있는 소망이 끊겨져버린 가운데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246, 1957.06.09)
전체가 악에 접할 수 있는 요인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악이 가는 길에서 교육은 필요 없습니다.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악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이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든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의 길을 가게끔 교육할 필요성이 있습니까? 스스로 그렇게 됐기 때문에 오늘날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양심의 표준 앞에 가려가라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양심을 중심삼고 교육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교육의 표준에 입각한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악한 것은 배우지 않고도 누구든지 다 할 수 있고, 누구든지 다 만점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심은 언제나 선하라 하고 마음은 언제나 선한 사람이 되라고 쉬지 않고 나를 자극시키고, 나에게 권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선한 내가 되었습니까?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오늘도 탄식이요, 내일도 탄식이요, 이 해도 탄식이요, 청춘시대도 탄식이요, 중년시대도 탄식이요, 노년시대도 탄식이니, 탄식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악한 것으로 끝장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36-57, 1970.11.15)
인간의 타락으로 역사는 슬픔으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그 출발점에서 가장 슬픈 사실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과 생명과 모든 것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행복과 생명과 모든 것이 인간으로부터 잘려 나가 버리고, 인간은 깊은 절망과 어둠과 불행 속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은 완전한 절망과 어둠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요, 부모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이 인간이 느낀 것보다 말할 수 없이 더 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52-36, 197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