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생무상
종교 경전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전도서 1.2-3 (기독교)
주님을 불신하는 자를 비유하사, 그들의 업적이란 폭풍우 치는 날 폭풍에 휘날리는 재와 같으니, 그들이 얻은 것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니라. 진실로 그것은 목표에서 멀리 벗어난 방황이로다.
꾸란 14.18 (이슬람)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향상과 여러 가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하여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달콤한 설탕을 입힌 유혹적인 과자 같은, 그러나 그 속에 지독한 쓴맛으로 가득한 이 부패한 세계에서는 그 어떤 향상도 없다. 그것은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것을 잡으려 해보라.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요가 바시슈타 (힌두교)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고 해도 사람의 욕망에 만족은 일어나지 않는다.
법구경 186 (불교)
욕망이란 이를 탐닉함에 의해서는 결코 잠잠해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마치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쏟아 부으면 그 불꽃이 더욱 거세게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라.
마누법전 2.94 (힌두교)
미혹된 자는 자신의 고통을 삭여내기 어렵나니, 이는 갈애에 꺼들어 음란을 일삼는 까닭이요, 마침내 그는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심한 고뇌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리라.
아차랑가 수트라 2.74 (자이나교)
술에 취한 사람처럼 미망의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악령 들린 사람처럼 이리저리 날뛰며, 큰 뱀에게 물린 사람처럼 감각의 대상에 물려 허덕이며, 어두운 밤처럼 격정으로 앞이 캄캄하며, 요술처럼 미혹되고, 꿈처럼 거짓되며, 바나나 속처럼 무기력하며, 광대처럼 찰나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그림 속의 사물처럼 보기에는 그럴싸하다고… 그들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
마이트리 우파니샤드 4.2 (힌두교)
나 설교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으며 하늘 아래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아보아 지혜를 깨치려고 무척 애를 써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괴로운 일을 주시어 고생이나 시키신다는 것을 알기에 이르렀다. 하늘 아래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니 모든 일은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 구부러진 것을 펼 수가 없고, 없는 것을 셀 수 없지 않는가!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서 왕 노릇 한 어른치고 나만큼 지혜를 깊이 깨친 사람이 없다. 나만큼 인생을 깨쳐 지혜를 얻은 사람이 없다.” 나는 이렇게 자신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어리석고 얼빠진 일인지 알아보려고 무척 애를 써보았지만, 그것 또한 바람을 잡는 것 같은 일이었다. 어차피 지혜가 많으면 괴로운 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다.
그래서 향락에 몸을 담가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더니 그것 또한 헛된 일이었다.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았고 누리고 싶은 즐거움을 다 누렸다. 스스로 수고해서 얻은 것을 나는 마음껏 즐겼다. 나는 이렇게 즐기는 것을 수고한 보람으로 알았다.
그러나 내가 이 손으로 한 모든 일을 돌이켜보니, 모든 것은 결국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 하늘 아래서 하는 일 가운데 쓸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왕위에 오르는 사람이래야 선왕들이 이미 한 일밖에 더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혜롭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리석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고 했다.
빛이 어둠보다 낫듯이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지혜로우면 제 앞이 보이고 어리석으면 어둠속을 헤맨다고 했지만, 그래 보아야 둘 다 같은 운명에 빠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리석은 사람과 같은 운명에 빠진다면 무엇 때문에 지혜를 얻으려고 했던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이것도 또한 헛된 일임을 깨달았다.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모든 일은 잊혀지고 말리라.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죽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산다는 일이 싫어졌다. 모든 것은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라,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나는 하늘 아래서 애쓰며 수고하는 일이 모두 싫어졌다.
힘껏 애써 얻어 보아야 결국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것, 그것을 물려받아 주무를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 그런데도 내가 하늘 아래서 지혜를 짜고 애를 써서 얻은 것을 물려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라. 나는 하늘 아래서 수고한 모든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고 돌아보기도 싫어졌다.
지혜와 지식을 짜내고 재간을 부려 수고해서 얻은 것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며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제아무리 애를 태우며 수고해 본들 돌아올 것이 무엇이겠는가? 날마다 낮에는 뼈아프게 일하고 밤에는 마음을 죄어 걱정해 보지만 이 또한 헛된 일이다.
전도서 1.12-2.23 (기독교)
위대하신 상제님은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 포악하신 상제님은 그 명령이 편벽되고, 하늘이 백성을 낳게 하셨으나 그 천명을 믿을 수만은 없어라. 모두가 시작은 좋아도 유종의 미를 거둔 사람은 드물도다.
시경 255 (유교)
기교를 가지고 힘겨루기를 하는 사람은 시작할 때는 정당하게 겨루지만 끝에 가서는 음흉하게 수작을 부린다. 그리고 꼭 이기겠다는 경쟁심이 커지면 결국에는 간교한 꾀를 많이 부린다. 예절을 따라 술 마시는 자들도 처음에는 질서정연하게 마시나 끝판에는 난잡해지고 심해지면 이상한 쾌락을 심하게 좇는다. 모든 일도 역시 같다. 처음에는 선량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야비하게 되고, 처음에 조촐했던 것들이 나중에는 거창하게 확대되기 마련이다.
장자 4 (도교)
말씀 선집
인간이 행복을 찾아가는 데는 어떤 행복을 찾아갈 것이냐? ‘인간이 어떤 유형의 행복을 찾아가든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백년밖에 더 되나. 청춘시대라는 것은 한번밖에 없는데 젊을 때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놀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죽는 것이 그럴 듯한 인생이지’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했지만, 나중에 가면 모두가 허사입니다.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몇 해 안 가서 모든 것이 다 싫증난다는 것입니다.
(41-144, 1971.02.14)
지금까지 종교는 내세를 찾기 위하여 현실을 부정하기에 필사적이었으며, 심령적인 기쁨을 위하여 육신의 행복을 멸시하기에 몸부림쳐 왔다. 그러나 끊어버리려야 끊어버릴 수 없는 현실과, 떼어버리려야 떼어 버릴 수 없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육신의 행복욕은 끈덕지게 도인들을 붙들어 오뇌의 골짜기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인들의 도의 생활에도 이러한 모순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모순성을 지닌 도인생활의 파멸, 이것이 바로 오늘의 종교인들의 생태인 것이다.
(원리강론, 총서)
우리가 돈을 벌어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합시다. 죽도록 해 가지고, 20대를 지나서 30대, 40대, 50대, 60대, 한 30년을 노력하지 않으면 백만장자가 될 수 없다고 볼 때, 60대에 가서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60대가 되면 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돈이 좋아서 60세가 되도록 벌어 놓고 보니 은퇴를 해야 됩니다. 은퇴 연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백만장자가 된 입장에서 그 돈더미를 바라볼 때 희망적이겠습니까, 절망적이겠습니까? 과거를 생각할 때, 기가 찬 사실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 놓고 나서 그 돈을 번 그 자체를 가만히 생각할 때,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여러분들이 공부를 하느라고…. 여기서 무슨 대학을 가서 박사가 되고 뭐가 되고 야단을 합니다. 수건을 동여매고, 밥도 잘 못 먹고, 놀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쉬지도 않고 밤을 새워 가면서 공부해서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합시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가 되어서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 자신을 가만히 보면 비참한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노벨상 수상자가 되고,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좁은 전문분야입니다.
이 넓은 세상 가운데 조그만 굴을 뚫어 그 분야에 대해서 알아 가지고 이 울타리 가운데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전체를 보게 될 때, 자기는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무엇을 안다고 자랑을 하지만 지극히 작은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안다는 것, 지식이 인간에게 행복을 갖다 주고 인간에게 안일을 갖다 주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지식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하여 학교에 들어가서 유명한 교수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매일같이 분필이나 잡고 무얼 쓰고, 무얼 맡고 이러고 일생 동안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분필 가루를 먹으면서 큰소리를 쳤지만 그 분야에서나 큰소리를 하지, 세계에 무슨 영향을 미치고, 대번에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 그런 건 하나도 모릅니다. 세계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의 뜻이니 뭐니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보다 더 모른다는 것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지식이 있다고 해도 일생 동안 그저 책벌레로, 자기에 대해서 자신을 가진 것이 아니라, 누가 그 분야에서 말 한마디 하면 그걸 주어다 모아서 또 비교 연구하고, 그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주장했다는 게 희미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또 유명한 학자가 됐으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내 생명을 투입하고 내 전체를 투입하기에는 너무나 아깝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권력입니다. 어느 누구나 이 나라의 대통령이 한번 되었으면 하고 꿈을 꾸지요? 무엇이 한번 되었으면 하고 꿈을 꿉니다. 권력, 힘, 그런 힘을 쥐어 봤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게 만년을 갑니까? 여기 미국 대통령은 4년 동안 권력을 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역사과정에서 눈을 한번 깜박이는 것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 먹고, 춤을 추고, 뭐가 어떻고, 그거 미치광이 같은 기분이라는 것입니다. 좋다고 해도 한번 거기서 딱 끝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가 찾아와 가지고 그것을 알아줍니까? 도리어 평민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98-82~85, 1978.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