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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책임지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고 생활환경을 소화함

종교 경전

심지어 감로수가 독에서 나올 수 있고, 우아한 말이 심지어 어린아이에게서 나올 수 있으며, 선행이 심지어 적에게서도 나올 수 있으며, 불순한 것으로부터 금이 나올 수도 있다.
마누법전 2.239 (힌두교)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아비가 설익은 포도를 먹으면 아이들의 이가 시큼해진다.’는 속담이 너희 이스라엘 사람이 사는 땅에 퍼져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너희 이스라엘에게 이런 속담을 말하지 못하게 하리라. 사람의 목숨은 다 나에게 달렸다. 아들의 목숨도 아비의 목숨처럼 나에게 달렸다. 그러므로 죄지은 장본인 외에는 아무도 죽을 까닭이 없다.”
너희는 “그 아들이 아비의 죄를 쓰고 벌을 받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고들 한다. 그 아들은 내가 정해 준 규정을 지키고 그대로 바로 살았는데 왜 죽겠느냐? 죽을 사람은 죄를 지은 장본인이다. 아들이 아비의 죄를 받거나 아비가 아들의 죄를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바로 살면 바로 산 보수를 받고, 못된 행실을 하면 못된 행실의 보수를 받는다. 나는 너희 하나하나의 행실대로 다스리리라.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에스겔 18.1-30 (유대교)

어떤 은둔자들과 바라문들이 설하기를, 즐겁거나 슬프거나 또는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이 모든 일들이 지난 행위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내가 그들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지난 행위의 결과로 사람들이 살인자가 되고, 도적이 되고, 부정한 자가 되고, 거짓을 말하는 자가 되고, 중상모략하는 자가 되고, 포악한 자가 되고, 허튼소리 지껄이는 자가 되고, 시기 질투하는 자가 되고, 심술궂은 자가 되고, 사된 견해를 지닌 자가 될 것이다. 오늘 자신의 모든 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만 지난 행위에서 구하는 자들에게는 행위 할 욕망도 없고, 애써 노력해야 할 필요도 없으며, 이것은 행하고 저것은 행하지 않아야 할 어떤 필연성도 없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이기 때문에 행해야 할 필연성이나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금해야 할 필연성도 없으며, 그대들은 다만 스스로 제어할 수도 제어할 필요도 없는 요소들에 몸을 내맡기며 살아갈 뿐인 까닭에, 은둔하여 수행을 닦는 자라는 말이 그대들에게 합당하지 않다 해야 한다.”
다른 이들이 또한 설하기를, 즐겁거나 슬프거나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이 모든 일들이 지고한 신의 창조(예정)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내가 그들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신의 예정으로 인해 사람들이 살인자가 되고, 도적이 되고, 부정한 자가 되고,… 자신의 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만 신의 예정에 돌리는 자들에게는 행위 할 욕망도 없고, 애써 노력해야 할 필요도 없으며, 이것은 행하고 저것을 금해야 할 어떤 필연성도 없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행해야 할 필연성이나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금해야 할 어떤 필연성도 없는 것이며, 그대들은 다만 스스로 제어할 수도 제어할 필요성도 없는 요소들에 몸을 내맡기며 살아가는 것일 뿐인 까닭에 ‘은둔하여 수행을 닦는 자’라는 말이 그대들에게 합당하지 않다 해야 한다.”
앙굿타라 니카야 I. 173-74 (불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쏘기는 군자의 도와 닮은 점이 있다. 정곡을 못 맞추면 돌이켜 허물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중용 14 (유교)

사람은 생래적으로 원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는 나쁜 결과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당신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힘쓰고 사람들은 당신을 도우려고 힘쓴다. 당신과 그들은 원인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쁜 일이 일어날 때, 당신도 그들도 원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당신은 결과가 되고자 원한다. 그때 당신은 나쁜 결과를 발견한다. 당신은 결과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때 당신은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을 비난한다.
프리클리어를 위한 지침서 (사이언톨로지)

자신을 아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지 않으며, 그의 운명을 잘 아는 사람은 하늘에 대해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는 사람은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으며, 하늘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은 그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실패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탓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순자 (荀子)

말씀 선집

문제는 누구냐 하면 나입니다.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세상에 대하여 불평을 합니다. ‘망할 세상 됐어’라는 말은 ‘나는 망하지 않을 사람인데 나 이외의 세상만 망할 때가 됐다’는 입장에서 하는 말입니다. 나쁜 것은 전부 다 세상에 갖다 걸어 놓고 불평하고, 좋은 것은 다 자기에게 걸어 놓고 좋아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이 잘못된 것을 불평하기 전에 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140-25, 1986.02.01)

아버지고 할아버지고 전부 내 대열에 서고, 천의에 의한 조상의 명부를 대신해 가지고 생사지권을 쥐고 결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실수의 모든 흠을 없애고 새로운 천지에 다리를 놓을 수 있어야 됩니다.
(310-126, 1999.06.15)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수십만 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나라와 수억만 사람의 희생의 대가를 치른 기반 위에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원소 하나하나가 부활하여 복합적인 구성체와 같은 존재로 태어난 것이 바로 여러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책임을 잘못하면 여러분들의 조상까지 함께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4-77~78, 1983.01.23)

여러분들이 실패자가 되게 될 때는 전부다 후퇴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지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가지고 승리자가 될 때는 여러분의 후손들도 우리 조상이 갔으니 나도 가야 되겠다고 하는 영광의 길이 닦여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98-213, 1978.08.01)

복귀섭리역사가 오랜 기간을 두고 종적으로 요구하여 나오고 있는 탕감조건들을 나 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찾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는 복귀섭리역사가 바라는 결실체로서 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역사노정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부름 받았던 선지선열들이 이루지 못한 시대적인 사명들을 이제 나를 중심하고 일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수한 개체가 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지선열들을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그들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근본 뜻, 그리고 그들에게 맡겨졌던 섭리적인 사명들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
(원리강론, 후편서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