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각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책임을 짐
종교 경전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날 위해 줄 것인가?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할 때에 현재의 내가 있지 않은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나 자신을 위할 것인가?
미슈나, 아보스 1.14 (유대교)
오, 너희 믿는 자들이여! 너희 자신을 돌보라.
꾸란 5.105 (이슬람)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라.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라. 자신을 지키고 삼가면 오, 비구여! 그대는 행복하게 살리라. 자신이야말로 자기의 수호자요, 자신이야말로 스스로 의지할 곳이니, 장사꾼이 좋은 말을 다루듯 자기 자신을 잘 다루라.
법구경 379-80 (불교)
선을 행하는 자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요,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에 반하는 것이니, 그대 주님은 종복들에게 조금도 불공평하지 않으시니라.
꾸란 41.46 (이슬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오.
빌립보서 2.12 (기독교)
각 사람은 자신의 자아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대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야 하며, 남의 도움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법을 등불로 삼아야 하며, 그대들 이외의 다른 곳에서 귀의처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비구는 자신의 등불이 되고 자신의 귀의처가 되며, 끊임없이 자신의 몸과 느낌들과 지각들과 기분과 개념들을 관찰해야 한다. 범부의 욕망과 좌절을 정복한다는 신념으로, 항상 굳건하고 침착하며 바른 마음가짐으로 이와 같이 정진해야 한다.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이와 같이 행하며 열심히 정진한다면, 그는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디가 니카야 2.99-100 (불교)
주 우리의 하나님은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다. 주께서 이 언약을 우리 조상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있는 우리 모두와 세우신 것이다.
신명기 5.2-3 (기독교)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니 어떤 다른 주인이 새삼 있을까? 자기를 잘 다룸으로써 구하기 힘든 주인을 얻는다.
법구경 160 (불교)
도타카가 말했다. “샤캬족의 성인이시여! 저로 하여금 온갖 미혹에서 풀려나게 해주십시오.”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도타카여! 어떤 이를 미혹에서 풀려나게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그대가 으뜸가는 가르침을 깨우친다면, 이로 인해 그대 스스로 이 미혹의 강을 건너게 되리라.”
숫타 니파타 1063-1064 (불교)
세상 끝까지 다 걸어 다닌다 해도 괴로움의 끝에 이를 수는 없다. 벗들이여! 내가 말하노니, 세계와 세계가 일어나는 원인과, 세계의 멸함과, 세계의 멸함에로 인도하는 행위가 놓여 있는 것은 한 길, 육신과 그 속에 사는 상념과 인상일 뿐이니라.
상윳타 니카야 1.62 (불교)
[하나님이 아담에게] “아담아, 우리는 거주할 고정된 장소를 네게 주지 않고, 독특한 형태를 네게 주지 않으며, 네게만 속하는 어떤 기능도 주지 않는다. 너는 너의 기대와 판단에 따라 거주할 어느 곳이든지, 어떠한 형태든지, 너 자신이 선택하는 어떠한 기능이든지 가질 것이다. 모든 다른 존재들은 제한되고 정해진 본성을 지닌다.… 네게는 더 낮은 생명 형태인 짐승으로 너 자신을 떨어뜨릴 능력이 부여된다. 그리고 네게는 네 지성과 판단력에 포함되어 있어 너를 더 높은 형태인 신적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할 능력이 부여된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
인생에서 사람의 주요 과제는 자신을 탄생시키는 것, 즉 그에게 잠재된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기 노력의 가장 중요한 산물은 자신의 인격이다.
에리히 프롬 (휴머니즘)
말씀 선집
신앙생활은 반드시 제삼자의 입장을 탈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선생님을 따라 나가지만 선생님을 중심 삼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 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남이야 어떻든지 나 홀로 지켜 나가야 할 신앙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153-136, 1963.11.15)
광야를 넘어서 가지고 이런 작은 집이라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천루같이 크지는 않더라도 여러분의 모델 형,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 스스로 세워야 됩니다. 아무도 안 도와줍니다. 자립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죽을 자리로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매일 하나씩 더하십시오. 그리고 하나씩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지금까지 그렇게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전통입니다.
(248-134, 1993.08.01)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닙니다.
(36-31, 1970.11.08)
직접주관권과 원리결과주관권, 그때까지 자라 올라와 성숙할 때까지 되지 않고는 사랑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137-100, 1985.12.24)
만물은 원리 자체의 주관성 또는 자율성에 의하여 성장기간(간접주관권)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한다. 그러나 인간은 원리 자체의 주관성이나 자율성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면서 이 기간을 경과하여 완성하도록 창조되었다.
즉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보면, 인간시조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어 따먹지 않고 완성되는 것이나, 그 말씀을 불신하여 따먹고 타락되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완성 여부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만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책임수행여하에 따라서 결정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창조주로서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면서 이 성장기간(간접주관권)을 다 경과함으로써 완성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책임분담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간섭하셔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서만 완성되도록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성까지도 닮게 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에 가담케 하심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시듯이 인간도 창조주의 입장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의 권한을 가지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창 1:28). 인간이 만물과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5.2.2)
생명 길은 누가 권고해서 가는 길이 아니요, 누가 이끌어줘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이를 감당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특별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배가 고플 때면 나 자신이 먹어야 되고, 목이 마를 때면 나 자신이 마셔야 되며, 외로울 때면 이것을 풀기 위해 하나의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위안이 될 자격을 갖추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적인 이치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먹고 사는 데 있어서도 자기 스스로 주체의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피동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자기 스스로 다짐하면서 생명의 힘을 가해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42-90, 197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