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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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절대 예정

종교 경전

나는 돌보고 싶은 자는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고 싶은 자는 가엾이 여긴다.
출애급기 33.19 (기독교)

실로 이것이 하나의 교훈이거늘, 원하는 자는 누구나 주님께로 가는 길을 택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뜻 없이는 이를 이룰 수 없도다. 실로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지혜로운 분이시도다.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는 자를 그분의 은총 속에 들게 하시사 사악한 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징벌을 준비하셨느니라.
꾸란 76.29-31 (이슬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함께 일하셔서 모든 것을 선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을 그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시려고 미리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을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을 부르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28-30 (기독교)

주는 행위자, 모두가 그로부터 있나니, 사람의 꾀함이 무슨 소용인가? 주가 뜻한 바, 그렇게 되리라. 전능하신 주, 막을 자가 없어라. 행하여지는 모든 것은 목적 없는 그의 유희. 먼 곳에 또한 지척에 있는 그, 그가 생각하고 헤아려 굽어보는 모든 것들, 그는 하나요 전체라.
아디 그란트, 가우리 수크마니, M.5, p.279 (시크교)

그뿐만 아니라 리브가도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쌍둥이 아들을 수태하였는데,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지속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로마서 9.10-16 (기독교)

은밀한 곳에서 내가 만들어질 때, 깊은 땅 속에서 내가 꾸며질 때 뼈 마디마디 당신께 숨겨진 것 하나도 없었습니다. 형상이 생기기 전부터 당신 눈은 보고 계셨으며, 그 됨됨이를 모두 당신 책에 기록하셨고, 나의 나날은 그 단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습니다.
시편 139.15-16 (기독교)

알라의 사도, 진실이며 진실로 계시를 받은 이가 이르노니, “너희들 모두는 첫 40일 동안 그의 어머니의 자궁에 모아졌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다음 40일 동안 한 덩어리가 되었고 그러고 나서 다음 40일 동안 살덩이가 되었다. 그 후 그에게 보내져 천사가 그의 육신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네 마디를 받아 적으라는 명을 받았다. 그의 삶, 그의 수명, 그의 행동, 그리고 그가 (종교 안에서) 비참하게 될 것인지 축복을 받을 것인지, 진실로 너희 중 하나가 천국에 있는 이들과 같은 일을 행하여, 그와 천국 사이의 거리는 단지 팔 하나 길이에 해당하리라.
그러나 한편으로 그에 대한 기록이 그를 앞지르니,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일을 행하기 시작할지라. 그리하여 그는 지옥에 가게 되리라. 또한 너희 중 하나는 지옥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일을 행하여 그와 지옥 사이의 거리는 단지 팔 하나 길이에 해당하리라. 그러나 한편으로 그에 대한 기록이 그를 앞지르니, 천국에 있는 사람들의 일을 행하기 시작할지라. 그리하여 그는 천국에 가게 되리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4 (이슬람)

말씀 선집

하나님은 사람을 볼 때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과거를 보고, 현재를 토대로 미래를 봅니다.
(100-93, 1978.10.08)

레버런 문이 태어날 때, 레버런 문이 이렇게 된다하는 어떤 동기가 있어서 태어나 가지고 이렇게 자랐겠습니까,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을 적당히 왔다 갔다 하면서 원소를 흡수해 가지고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본래부터 다 결정되었기 때문에, 눈 위에 수평선상이 같고---.
레버런 문이 이렇게 생긴 것은 중간에 자기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이렇게 생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레버런 문 자신도 그 원칙에 따라서 자랐지, 원칙에 역행해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161-160, 1987.02.01)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어떤 사람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와 같이 미리 알고 계시는 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시는 하나님의 책임분담만으로는 그가 의롭다 함을 얻어 영광을 누리는 데까지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부름 받는 입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야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도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도록 예정되는 것이다. 다만 성구에는 인간책임분담에 대한 말씀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다.
(원리강론, 예정론 4)

로마서 9장 10절 내지 13절에는 하나님이 태중에서부터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시어 장자 에서가 차자 야곱을 섬기리라고 한 말씀이 있다.
에서와 야곱은 복중에 있어서 아직 선악 간에 아무런 행동의 결과도 나타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신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 이것은 복귀섭리노정의 프로그램을 맞추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것은 후편 제1장의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설명하겠지만, 에서와 야곱을 쌍태로 세우셨던 것은 그들을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자리에 갈라 세워 놓고, 아벨의 입장에 있는 야곱이 가인의 입장에 있는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일찍이 아담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이루지 못하였던 장자기업 복귀의 ‘뜻’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에서는 가인의 입장이므로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요, 야곱은 아벨의 입장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실제로 미워하시거나 사랑하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서 좌우될 문제였다. 실상에서는 야곱에게 순종 굴복하였기 때문에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야곱과 같은 사랑의 축복을 받는 입장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던 야곱이라 할지라도, 만일 그가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리강론, 예정론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