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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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운명과 자유의지의 관계

종교 경전

랍비 아키바가 말한다. “모든 것은 다 예견되어진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 세상은 은총에 의해 심판된다. 그러나 심판은 세상을 위해 봉사의 업적을 남긴 비중에 따라 진행된다.”
미슈나, 아보스 3.19 (유대교)

어떠한 재앙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나지 않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인도해 주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아시는 분이시니라.
꾸란 64.11 (이슬람)

오, 나의 종복들이여! 너희들 중에 누구든 잘못을 저지른 자는 내가 인도해 준 자를 제외하고는 나의 인도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인도하리라. 오, 나의 종복들이여! 너희 중에 굶주린 자는 누구든지 내가 양육한 자를 제외하고는 나의 양식을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양육하리요.
오, 나의 종복들이여! 너희 중에 헐벗은 자는 모두 내가 옷 입힌 자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옷을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입히리라. 오, 나의 종복들이여! 너희가 밤낮으로 죄를 짓게 될 때, 나의 용서를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용서해 주리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24 (이슬람)

모든 것이 그대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나니, 권능은 그대의 것. 장기판 위의 온갖 말들을 움직이듯, 그대는 스스로 만든 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도다.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또한 떠나야 하리. 모두가 가야 하리. 어찌 생과 사의 주인이신 주를 망각하려 하는가?
아디 그란트, 아사 키 바르, M.1, pp.473-474 (시크교)

비록 주 하나님께서는 인간 의지의 자유 행위를 예견하실 수 있지만, 여전히 선택의 자유는 인간들에게 남아 있다. 하나님은 모든 때를 동시에 그리고 영원성을 통해 바라보시기 때문이다.
보이티우스, 철학의 위안

말씀 선집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셨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들을 놓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까지나 이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시려는데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뜻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신 절대자이시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역시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목적을 다시 이루시려는 복귀섭리의 뜻도 유일하고 불변하며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뜻에 대한 예정 또한 절대적일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사 46:11).
이와 같이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기 때문에 만일 이 뜻을 위하여 세워진 인물이 그것을 이루어 드리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은 그의 대신 다른 인물을 세워서라도 끝까지 이 뜻을 이루어 나아가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예를 들면, 아담을 중심 삼고 창조목적을 이루려 하셨던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후아담으로 보내시어 그를 중심하고 그 뜻을 다시 이루시려 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뜻도 역시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재림하셔서까지 이 뜻을 기필코 완수하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로 예정하시는 것일까? 이미 위에서 논급한 바와 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 뜻의 성사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95퍼센트의 책임분담에 그 중심인물이 담당해야 할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어서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정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책임분담 5퍼센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비하여 극히 작은 것임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자신에 있어서는 100퍼센트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아담 해와를 중심한 ‘뜻 성사’는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되어지도록 예정하셨던 것이다.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도 노아가 방주(方舟)를 제작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섭리도 타락인간이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비로소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요 3:16). 그러나 인간들은 이 작은 책임분담마저 감당치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연장케 하였었다.
(원리강론, 예정론 1)

되어지는 모든 것은 인간이 아무리 주장하고 아무리 야단할지라도 이 우주의 천운이 원하는 대로 박자는 맞아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는 한 여기에 순응하기 마련이고, 여기에 순응하는 도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우주의 운세와 더불어, 맥박과 더불어 발전해 나갑니다. 영원히 존속할 것입니다. 서양사람 마음대로 아무리 했댔자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사람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은 우주의 법도를 따라 거기에 박자를 맞추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원칙적인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은 다시 연장되어 아시아, 세계의 문화권으로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나 혹은 개인이나 무엇을 막론하고 망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망합니까? 그건 누가 망하게 합니까?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우주가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있는 인간들은 천운의 법도에 따라 박자를 맞춤으로 남아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영웅이 안 되고 싶고 성인이 안 되고 싶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94-19~20, 1977.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