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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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지자와 성인의 고난과 핍박

종교 경전

선지자가 고향과 친척과 가족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는다.
마가복음 6.4 (기독교)

싸움터의 코끼리가 쏟아지는 화살들을 참아 견디듯, 나도 비난을 참아 견뎌 내리라.
법구경 320 (불교)

한 율법학자가 와서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마태복음 8.19-20 (기독교)

사도가 말하였다. “주여, 저희 백성들이 이 꾸란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모든 예언자들에게 죄인들 중의 하나를 적으로 두셨으나 인도하고 도우시는 분은 그대 주님만으로 충분하리라.
꾸란 25.30-31 (이슬람)

나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어디로 내 발길을 돌릴까? 가족과 종족이 나를 버렸다. 내가 속했던 동네도, 나라의 악한 지배자도 내게 관심이 없구나. 그러면 오, 주여! 어떻게 내가 당신의 동정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아베스타, 야스나 46.1 (조로아스터교)

그들의 선조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당신께서 계실 그 곳을 구원하실 뜻으로 특사들을 다시금 보내어 경고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사들을 조롱하였다. 그의 말이면 무조건 비웃었다. 보내신 예언자들을 놀림감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여호와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시게 하고 말았다.
역대기하 36.15-16 (기독교)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우리들의 조상이 어떤 종교를 추종하고 있었나를 알며 그 조상들의 발자국을 따라 인도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라. 이처럼 그들의 말은 하나님이 너희 이전에는 경고자를 어떤 도시에도 보낸 적이 없다는 것이며, 부유한 자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우리들의 조상이 어떤 종교를 추종하고 있었나를 알며 그 조상들의 발자국을 따라 인도되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느니라.
경고자가 말하길 너희들의 조상에게서 발견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인도를 내가 너희에게 가져왔다고 하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당신들에게 내려진 것을 믿지 못하리라 하더라.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을 징벌하였노라. 보라, 거부자들에 대한 징벌이 무엇인가를.
꾸란 43.22-25 (이슬람)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나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사도행전 7.51-52 (기독교)

공자 혼자서 성곽의 동문 앞에 서 있었다. 정나라 사람이 자공에게 말했다. “동문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마는 성왕 요를 닮았고, 그의 목 줄기는 고요를 닮았고, 그의 어깨는 자산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허리 밑으로는 우 임금보다 세치 정도 모자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피곤하고 실의에 찼으며, 마치 초상집 개처럼 보였습니다.” 나중에 자공이 공자에게 이 말을 전하자, 공자께서 빙긋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의 용모를 그려낸 말에 대해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를 초상집 개와 닮았다고 한 말은 딱 맞다. 정말 그렇다.”
사마천(司馬遷), 사기 47

말씀 선집

인간세계에서 높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높이 서서 전체를 보고 그것을 등급으로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들이 추구하고 바라고 존경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높고 큰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을 위해서 살겠다는 위대한 미국인과 세계를 위해서 살겠다는 위대한 세계인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더 위대하겠느냐? 위대한 세계인입니다. 같이 살고 같은 생활을 하더라도 높고 더 큰 것을 위하고 더 큰 것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 위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4대 성인을 역사적으로 모시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라든가 석가모니라든가 공자라든가, 혹은 무함마드라든가 있는데, 그들에게 집이 있었습니까? 그들에게 좋은 집이 있었습니까? 그들이 동네를 갖고 살아 봤습니까? 가는 곳곳마다 욕먹고, 죽이려고 하니,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는데 무엇이 위대합니까?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들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사람입니까? 공자님은 이웃집 개라고 했습니다. 얻어먹고 다니니 말입니다. 또, 석가세존은 그때 왕의 아들로서 나라도 있고 집도 있고 모든 것이 있었지만 그걸 다 싫어했습니다. 그걸 다 버리고 나와서 산중수도 한 것입니다.
산에 가서 은둔생활을 시작한 거기서부터 석가모니의 출발이 벌어진 것입니다. 집도 없고 나라도 없고 죽어간 그 사람들을 지금에 와서 왜 추앙하느냐? 위대한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왜 자랑스럽게 생각하느냐? 그들의 위대한 정의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겠습니까? 또, 미래에 달라지겠습니까? 안 달라집니다.
(115-14~16, 1981.10.25)

이 땅에 선지자들이 와서 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고 막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부터 못 간다는 것입니다. 들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부가 ‘이게 뭐 이래?’이러면서 차 버리고, 별의별 핍박을 다 받고, 사람 취급도 못 받고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세상의 낙오자들…. 세상 사람들이 밀치고 다 도망가니 선지자들은 할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따라가는 가운데서도 세상의 낙오자들, 병신들, 상처 입은 사람들, 세상이 싫다는 이런 사람들을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왜 그러고 있소?’, ‘나는 예언자인데, 저들에게 반대 받았기 때문에 이런다’고 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인간 낙오자들을 중심삼고 새로운 인연을 짓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가 있는 것이다. 낙심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 하면서 낙망자를 중심삼고 새로운 희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잘난 사람 다 지나고 못난 사람 다 지나간 다음에 병자, 쓰레기통 같은 사람들이 결국 ‘아이고, 새로운 세계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랬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잘났다는 어머니 아버지, 잘났다는 아들딸을 가진, 그런 가정을 가진 사람은 없고 사탄에게 갈기갈기, 아빠도 엄마도 혹은 아들도 딸도 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만 있는데, 이 사람들이 이 세상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런 말들을 듣고, 거기서부터 인연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106-176~177, 1979.12.30)

그 시대의 성인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인간들이 가야 할 참된 길을 가르쳤습니다. 성인은 그 시대의 백성들을 위해서 앞으로 올 세계를 가르쳤지만, 무지한 백성들은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시대의 주권자들은 성인을 잡아 죽이고 핍박하고 몰아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성인이 나라를 팔아먹고 나라를 망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혼란 가운데 건져내어 미래에 소망의 나라로 만들거나, 어느 나라보다도 고귀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생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하고, 받들지 못하고 쫓아내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인은 만민이 가야 할 길에 대한 도리를 갖췄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은 그 도리를 점점 받아들여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나온 것입니다.
(39-256, 197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