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종교 창시자의 전통 고수
종교 경전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질지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복음 5.17-18
나[크리슈나]는 이 불명의 요가를 비바스바트에게 일러 주었노라. 비바스바트는 마누에게 전해 주었고, 마누는 그것을 익슈바쿠에게 가르쳤노라. 이와 같이 아르쥬나여! 수승한 현자들이 끊임없는 전통 속에서 요가의 지혜를 전해 받았느니라.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요가는 세상에서 망실되었노라. 이 가르침의 비의는 실로 심원하나니, 내가 오늘 바로 그 태고의 요가를 그대에게 말해 주었노라. 왜냐 하면 그대는 나의 친구요 나를 신애하는 자이기 때문이니라.
바가바드기타 4.1-3 (힌두교)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았고 그것을 여호수아에게 인계해 주었다. 여호수아는 율법을 장로들에게, 그리고 장로들은 예언자들에게, 예언자들은 회당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미슈나, 아보스 1.1 (유대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전해져 오는 것을 기술했을 뿐 짓지 않았으며, 옛 것을 믿고 좋아했다.”
논어 7.1 (유교)
성서에 있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는 진실한 예언자였다. 그가 그의 아버지께 말하였다. “아버지여! 왜 듣지도 보지도 못하며 당신께 효용도 없는 것을 숭배하고 있습니까?”
그가 그들과 그들이 숭배하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버리고 떠났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삭과 야곱을 주어 그들로 하여 예언자가 되게 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진실을 말하는 참된 명성을 주었도다.
성서에 있는 모세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는 선택받은 예언자이며 선지자였도다. 하나님은 산우 편에서 그를 불러 신뢰하기 위해, 하나님 가까이 두셨다. 또한 하나님은 은총을 베풀어 그의 형 아론을 예언자로 삼으셨다.
성서에 있는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는 약속을 지키는 충실한 자로 예언자이며 선지자였느니라.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예배를 드리고 자선금을 바치도록 요구하였으니, 주님께서는 그로 인하여 기뻐하셨느니라.
성서에 있는 이드리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는 진실한 예언자이었느니라.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를 높은 곳으로 올렸느니라.
이들은 아담의 자손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푼 예언자들이도다. 그 중에는 노아와 함께 방주에 오른 자가 있었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자손이 있었으며, 또한 그 중에는 하나님이 옳은 길로 인도하고 선택한 자가 있노라.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징표가 그들에게 낭송될 때, 그들은 부복하고 경배하여 눈물을 흘렸노라!
꾸란 19.41-58 (이슬람)
우왕·탕왕·문왕·무왕·성왕·주공은 예를 가지고 정치를 성공시켰다. 이들 여섯 명의 군사들 중에는 예를 성실하게 지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예를 밝혀서 의를 얻게 했고, 예를 실천하여 신의가 행해지게 했고, 예를 기준으로 하고 죄를 따졌고, 어진 사람을 표창하고, 다투는 사람에게는 양보하도록 타일렀으며, 백성들에게 오상의 덕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만약 임금으로서 이상과 같은 예를 따르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의 부나 권세를 상실하게 되고, 대중에게 재앙의 존재로 배척받는다.
예기 7.1.2 (유교)
일찍이 헤아릴 수 없는 부처 따라 온갖 도를 구족하게 닦았으니, 심오하고 미묘한 법은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도다. 한량없는 억만 겁에 그 도를 모두 닦고 행하여 도량에서 정각을 이루어 내 이미 그 모두를 다 알고 보았노라.
법화경 2 (불교)
말씀 선집
우리는 역대의 신앙 선조들이 세운 전통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늘의 혈통을 존중해야 합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하늘을 위하여 충성한 그 정신,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방의 황무지를 돌아다니던 그 정신, 야곱이 가나안 땅을 버리고 애급으로 들어가던 그 정신, 이스라엘 민족이 원수의 땅 애급을 버리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을 향하여 총진군하던 그 정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여 새로운 가나안복지, 새로운 에덴복지를 향하여 달리려던 그 정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은 전통을 통하여 이러한 정신을 계승해야 되겠습니다.
(8-25, 1959.10.25)
공자님이 나와 가지고 시대를 거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을 무시하고 역사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했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전에 있었던 그런 류의 사상을 단지 체계화시키고 일반화시켰을 뿐입니다.
(25-93, 1969.09.30)
후손들은 위인이나 성인을 왜 추모해야 되느냐? 그들의 마음속에는 공들인 역사적인 모든 사연이 얽혀 있고, 선의 사연과 곡절이 그 속에 엉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그러한 터전을 통하여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향하는 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비록 타락의 후손들일망정 인심은 천심과 통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인을 추모하고 성인이 걸었던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요, 자연적인 것입니다.
(17-268, 1967.02.15)
부활섭리역사에서 그 사명적인 책임을 맡았던 인물들이 비록 그 자신들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늘 뜻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타락인간이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터전을 넓혀왔던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인간들은 역사가 흐를수록 그 이전의 선지선열들이 쌓아 올린 심정적인 기대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더 받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부활론 2.1)
‘나’라는 개성체는 어디까지나 복귀섭리역사의 소산이다. 따라서 ‘나’는 이 역사가 요구하는 목적을 이루어야 할 ‘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역사의 뜻 가운데 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복귀섭리역사가 오랜 기간을 두고 종적으로 요구하여 나오고 있는 탕감조건들을, ‘나’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찾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는 복귀섭리역사가 바라는 결실체로서 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역사노정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부름 받았던 선지선열들이 이루지 못한 시대적인 사명들을 이제 ‘나’를 중심하고 일대의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수한 개체가 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지선열들을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그들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근본 뜻, 그리고 그들에게 맡겨졌던 섭리적인 사명들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
(원리강론, 후편, 서론 3)
역사시대에 있어서 탕감의 사명을 짊어졌던 선조들의 기백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시대에 당신이 칭찬하고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의 모습, 딸의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습니까?
아버지, 당신은 내적으로 약속하시고 축복하시며 명령하셨지만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저희 선조들은 번번이 당신의 마음에 못을 박고, 아버지를 고독의 자리로 추방시킨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될 때, 저희들이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인연은 기쁜 일이오나, 사명적인 면에 있어서는 슬픈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선조들이 걸어간 복귀의 한스러운 길을 더듬어 볼 적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30-39, 1970.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