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내 북마크

아직 북마크가 없습니다.

2. 율법을 전수하고 광야노정을 인도한 모세의 고난

종교 경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있는 이 산으로 올라와 머물러 있어라. 내가 이 백성을 가르치려고 훈계와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너에게 주리라.” 모세는 자기의 시종 여호수아를 데리고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 일러두었다.
“우리가 그대들에게 돌아 올 때까지 여기 앉아 기다리시오, 아론과 후르가 그대들과 함께 여기에 남아 있을 터이니, 사건이 생기거든 그들에게 가서 판단해 달라고 하시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산을 덮었다. 여호와의 영광이 시나이 산 위에 머물러 있어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뒤덮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이레째 되는 날 그 구름 속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마치 그 산봉우리를 태우는 불처럼 보였다. 모세는 구름을 뚫고 산으로 올라가 사십 주야를 그 산에서 지냈다.
출애굽기 24.12-18 (기독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내가 율법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모른다. 어떤 고생, 어떤 노력이라도 나는 율법을 위해 참아내었다. 사십 주야를 나는 하나님과 같이 지냈다. 나는 살아 있는 피조물들인 천사들, 스랍들과 함께 있었다. 나는 기꺼이 그들에게 율법을 주었다. 내가 고생을 통하여 율법을 배운 것처럼 너희들도 고생을 하면서 율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고생으로 율법을 배운 것처럼 너희 후손에게도 고생 가운데 율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시프레 신명기 (유대교)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은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산 사이에 있는 씬 광야에 이르렀다. 이집트를 떠난 지 한 달째 되는 보름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온 회중은 이 광야에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다.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여호와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
출애굽기 16.2-3 (기독교)

사십 주야가 끝나는 날 여호와께서 나[모세]에게 계약이 적힌 두 개의 석판을 주셨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일어나라. 속히 이곳에서 하산하라. 왜냐하면, 네가 이집트에서 데려온 백성들이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가르쳐준 길에서 벗어나서 딴 길로 가는 데는 너무나도 잽싸다. 그들은 우상을 만들었다.… 나 혼자 있게 하라. 나는 저들을 멸망시키고 하늘 아래에 저들의 이름을 지워 없애버리리라. 나는 저들보다도 훨씬 강하고 큰 한 국가를 네게 이루어 주겠노라.” 나는 산에서 내려 왔다. 산은 여전히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두 개의 계약 석판은 나의 양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보았다.
너희들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거슬러서 죄를 짓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였다. 너희는 송아지를 만들었다. 너희는 너무도 빨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길을 벗어났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안고 있던 두 석판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내어던져 버렸다. 그리고 난 후에 나는 예전처럼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나는 그 동안 한 모금의 물이나 한 조각의 빵도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희가 범한 죄가 컸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해 버리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호와께 기도를 하였다. “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의 백성이요 당신의 선민인 자들을 멸하지 마옵소서. 저들은 당신의 큰 은사를 통하여 속죄 받은 자들입니다. 저들은 당신께서 놀라우신 능력의 손길로 이집트로부터 구해낸 자들입니다. 당신의 종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기억하옵소서. 이 백성의 완고함을 보지 마시고, 죄를 보지 마시옵소서. 당신께서 우리를 이끌어내었던 그곳의 사람들이 ‘여호와는 자기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갈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그는 자기 백성들을 미워하고 광야에서 살해해 버렸기 때문이야’라고 말하지 않게 하소서, 이 백성들은 당신의 백성이요, 당신의 유산입니다. 그들을 당신의 놀라우신 힘과 편 팔로 이끌어 주소서.”
신명기 9.11-29 (기독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나이 이제 백스무 살이 지나 다시는 일선에 나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나에게 ‘너는 이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몸소 앞장서 건너가셔서 저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없애주시고 너희로 하여금 그 땅을 차지하게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너희의 앞장을 서서 건너갈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그들의 땅을 해치우시고 쓸어버리셨듯이 그들도 해치우실 것이다.
이렇게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시거든 너희는 나에게 받은 명령대로 어김없이 그들을 해치워야 한다. 힘을 내어라.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하지 마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몸소 함께 진군하신다. 너희를 포기하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지도 아니하신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내어 온 이스라엘 앞에서 일렀다. “힘을 내어라. 용기를 가져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의 선조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이 백성을 이끌고 들어갈 사람은 바로 너다. 저 땅을 유산으로 차지하게 해줄 사람은 바로 너다. 여호와께서 몸소 너의 앞장을 서주시고 너의 곁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너를 포기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기도 마라.”
신명기 31.2-8 (기독교)

말씀 선집

모세가 한 생명을 들어 전 민족의 생명을 구원하는 산 제물로 삼으려고 몸부림친 것을 그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친구가 되어 주셨고, 하나님만이 아버지로서 그를 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40일간 먹을 것을 잊어버리면서도 다시는 아버지께서 슬픔과 비운의 심정을 갖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책임감을 느껴, 있는 정성을 다해 호소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부활시킬 수 있는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쁨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남모르는 가운데 배후에서 슬픔의 제물이 된 자가 있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것을 알았던들 광야에서 60만 대중이 쓰러지는 일은 면했을 것입니다.
그 후에라도 그들이 모세의 십계명을 받들고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 자기들의 몸은 제물 될지라도 굽히지 않고 나가겠다는 믿음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3-287, 1958.01.19)

애급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해야 했던 모세도 바로궁중에서 40년 동안 남이 모르는 심적인 고민을 하면서 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정신에 불타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애급사람을 때려죽인 것이 광야에서 처량한 목자의 생활을 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처한 모세는 애급 궁중의 호화로웠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도리어 미디안 땅에서의 고역생활이 닥친다 하더라도 변치 않는 마음을 품고서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온갖 풍우에 시달리는 서글픔을 맛본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밀어제치고, 민족으로부터 몰림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을 붙들었던 모세의 변치 않는 결심이 있었던 연고로, 민족이 어려운 사정에 처하고 모세가 그런 고난의 환경에 들어갔을지라도 민족이 단결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요, 하늘은 모세를 세워 섭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38~39, 1958.02.23)

모세가 하늘로부터 허락하신 바의 약속을 받고 애급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기쁨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코 그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생애를 바치겠다고 하늘 앞에 호소하던 그 뜻이 이루어져 민족의 살길을 개척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고, 이제부터 제2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지 않았고, 조그만 일이나 큰일이나 어느 한 가지 일이라도 하나님과 인연을 맺지 않고 수행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모세가 포악한 바로 궁중에 들어가 그들의 신 앞에 10회 이상의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험난한 광야로 이끌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와 하나 되어야 했습니다. 즉 험난한 광야이지만 자유로운 환경으로 탈출해온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는데 있어서 모세의 마음이 곧 자기들의 마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바로 궁중으로부터 구출해 준 모세와 마음이 달라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와 하나 되지 못하여 천륜에 어긋나는 길을 감으로써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멸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에서 하늘 앞에 호소했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가 자기들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한 그 날로부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자기들을 위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세의 수고와 고생을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모세는 광야에서 갈라졌고,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불신했던 역사적인 사실이 오늘날 끝 날의 성도들에게도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자신이 하나 되지 못하는 사실에 직면하게 될 때 모세는 불신하는 민족을 책망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부족을 하늘 앞에 호소했습니다. 즉, 그는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면서 ‘아버지여, 이 민족이 어찌하여 허락하신 땅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를 제물삼아 민족의 멸망의 길을 막아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숨은 정성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의 모세가 남모르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금식하는 것이 모세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는 것임을 알았던들 그들은 모세의 40일 금식 기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불신의 놀음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이 민족의 축복을 대신한 모세가 하나의 숨은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쳐지게 될 때 모세의 마음을 동정하고 그의 수고를 염려해서 시내산에 있는 모세와 같이 눈물 흘리며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었던들,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홀로 민족을 대표하여 외로운 길을 갔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그러한 길을 가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역사적인 희생과 모세의 민족을 대표한 제물의 노정을 통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이 가정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고 모세가 민족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를 대신해서 홀로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막아야 했고 승리적인 탕감의 발판을 닦아야 했습니다.
(1-143~145, 1956.07.01)

가나안땅에 들어가야 될 텐데, 요단강가에서 천막을 치고, 이제는 다 왔으니 여기서 천년만년 살아야 할 텐데 하고 있으니 이 천막을 깨뜨리고 밟아 치우고, 강으로 처넣어야 됩니다. 그럴 때에는 모세가 와서 불을 사르고 전부 다 차 버려야 됩니다. 처넣어야 됩니다.
물에 처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단강 물이 깊은 줄 알았더니 눈을 뜨고 보니 깊지 않습니다. 무르팍 밖에 안 올라오는 것입니다. 시내를 건너가서 죽어야 됩니다. 3분의 2의 몸뚱이가 땅을 붙들고 거기서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거 사탄이 못 가져갑니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죽어도 성공입니다. 우리 땅에 들어서서…. 그게 길고 긴 40년간 노정의 목적입니다.
요단강도 안 보이는 광야 복판에서는 모세보다 먼저 가면 죽습니다. 그때는 모세가 나를 따라오라고 했지만, 요단강이 보일 때는 ‘먼저 가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멋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다 건너가고 모세만 못 건너갔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모세가 ‘아, 저주를 받을 무리야! 나를 버리고 갔구나, 죽을 것들! 멸망해라’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 나는 죽어도 좋으니 너희들은 영원히 축복 받으라’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 나보다 용맹한 저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저들의 장래를 보호하소서! 얼마나 희망찬 저들이오!’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 훌륭한 지도자로다! 네 기도대로 해주마! 너는 편안히 영면 할지어다’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죽음입니까!
(189-249~250, 1989.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