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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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의 회고

종교 경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심지어 남몰래 한 일까지도 사람이 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는 심판에 붙이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전도서 12.14 (기독교)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덮어둔 것이라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마태복음 10.26 (기독교)

나는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마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또 죽은 사람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다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들을 펴놓고, 또 다른 책 하나를 펴놓았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12 (기독교)

대지가 지진으로 격렬하게 흔들리고 대지가 그 짐을 내던지고 인간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말할 적에 그날 대지가 소식을 전하리라. 너의 주님이 계시를 내렸기 때문이니라. 그날 인간들은 흩어진 집단으로 되어 자기가 행한 것들을 보게 되리라. 티끌만한 선을 행한 사람도 그것을 보게 될 것이고 티끌만한 악을 행한 사람도 그것을 보게 되리라.
꾸란 99.1-8 (이슬람)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목에 그들의 행위의 기록을 매어 놓았으며 부활의 날 그 기록을 펼쳐 보게 되리라. 너에 대한 기록을 읽어보라, 네 자신의 영혼은 너의 청산으로 충분하리라.
꾸란 17.13-14 (이슬람)

너희가 이승을 떠난 후 신은 너희의 행업을 헤아려 셈하리니, 이 모두가 그의 장부에 낱낱이 적혀 있도다. 순종치 아니한 자들은 소환되리니, 죽음의 사자인 아즈라엘이 그들의 머리 위를 배회하리라. 캄캄한 좁은 길에서 덫에 걸린 그들은 도망칠 곳을 알지 못하리라. 나나크가 말하노니, 거짓은 쇠망하고 마침내 진리가 우세하리라.
아디 그란트, 람칼리 키 바르 13, M.1, p. 953 (시크교)

인간이 세상을 뜰 때 육신은 분해되고 영혼이 떠날 채비를 한다. 그날 비로소 인간은 육신이 강건했을 때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도록 허락받는다. 세 명의 사자가 그 앞에 서서 그의 삶과 지상에서 했던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면 자기 입으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자기 손으로 거기에 서명한다.… 이는 마치 욥기 37장 7절의 “모두가 자신의 과업을 인정해야 한다”고 적혀 있는 것과 같다.
조하르 1.79a (유대교)

말씀 선집

이 땅 위에 왔다가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최후의 자리에서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과거의 모든 사실들이 영상으로 지나갈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 것입니다.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생명체를 가지고 지금까지 인연된 환경과 남겨 놓은 사연 등, 지난날의 모든 것이 일생의 최후의 순간에 자기의 마음에 영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참이 있었다, 내 생명보다도 귀한 그 무엇을 남겼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비록 이 땅에 왔다가 가더라도 보람 있는 한 때를 남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왔다 가는 이 인생행로가 행인과 같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모든 과거의 사연을 회상해 볼 때, 그 모든 사연이 머리를 흔들며 회상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면 그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면 회상할수록 자기 얼굴에 환희가 넘치며 자기의 모든 문제가 이상에 잠길 수 있다면 죽음의 공포도 그에게는 위로의 한 장면으로 장식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을 남겼다면 그의 과거도 죽지 않은 것이요, 현실도 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과거를 지닌 사람은 반드시 민족이 따라올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사람이요, 세계 만민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남긴 사람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생애노정에서 자기를 위해 죽음의 자리까지 가는 것보다 형제면 형제, 친족이면 친족, 남이면 남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서 그들을 구했다면, 그들을 구하기 위해 부딪친 때가 있었다면 그러한 사실들이 최후의 운명의 자리에서 그의 마음 선상에 영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를 중심삼은 행복한 때가 있었고, 수많은 군중으로부터 환영받고 자기가 영광스럽게 찬양받는 거룩한 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순간에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하였느냐, 참되었느냐,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참과 선은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남에게서 결과를 맺게 하든가, 남에 의해서 시작되어 나에게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야만 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리에서 천지의 모든 존재는 주고받는 인연을 거쳐야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생활이 주는 생활이었으면 죽음 길에도 공포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고 남을 위해 희생했으며, 참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눈물도 남으로 말미암아 흘렸고, 내 생명도 남으로 말미암아 투입했고, 내 소원도 남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내 맥박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생명력을 끌어 모아 남을 위해서 투입했다고 할 수 있다면 그 과거는 빛나는 과거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험상스런 환경을 갖춘 이 타락권내에서 여러분 자신이 가는 모습을 도표로 그려 보게 될 때, 1년은 이렇게 가고 1년은 저렇게 갈 것이다, 혹은 10년은 이렇게 가고 10년은 저렇게 갈 것이라며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일생 행로를 계획하면서 높고 낮음을 예측할 것입니다. 그 높고 낮음이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사람은 최후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 때, 자기를 위해 살면서 남을 희생시킨 그 모든 것이 자기를 얽어맬 것입니다.
(31-308~310, 1970.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