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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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보답을 바라지 말고 남을 섬겨라

종교 경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는 대로 이방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교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0.25-27 (기독교)

사심 없는 봉사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상의 청정행은 사심 없는 봉사에 있다.
아디 그란트, 마루, M.1, p.992 (시크교)

남을 위하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는 주와 하나 됨을 얻는다. 나나크가 말하노니, 그와 같은 종만이 거룩한 주의 이끄심을 받으며 거룩한 은총이 그에게 내린다.
아디 그란트, 가우리 수크마니 18, M.5, p.286 (시크교)

너희가 이웃을 위해 일하는 것이 다만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몰몬경, 모사이야서 2.17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성인은 자기를 위해 쌓아 놓지 않는다. 본래부터 남을 위해 모든 것을 주기 때문에 도리어 자기에게 더 많이 있게 되고 본래부터 남을 위해 모두 베풂으로써 도리어 자기에게 더 많게 된다. 하늘의 도는 오직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치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오직 남을 위해 베풀기만 하고 다투지 않는다.
도덕경 81 (도교)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빌립보서 2.3-4 (기독교)

물질과 달리 선이란 나누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혹은 영원히 누구와 나눴을 때 선은 점점 커진다. 선을 사랑하는 자들이 진심으로 이 선을 향유할수록 더 큰 선이 자라난다. 나아가 선은 그것을 갖기를 꺼리는 자라 해서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가진 자가 더욱 더 나눔을 사랑할 때 커지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도성 15.5

말씀 선집

복 중의 최고의 복이 무엇이냐 하면 희생적인 사랑, 봉사적인 사랑, 남을 위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43-309, 1971.05.02)

어느 누구나,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사랑을 다 원하지요? 무슨 사랑? 위하는 사랑! 위하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위하는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211-207, 1990.12.30)

나를 중심 삼고 사랑을 받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입장에 선 것이 하나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희생하려고 합니다. 양보하려고 합니다. 주고도 또 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100억이 있어서 길가에 나가 전부 다 나눠 주었는데,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를 못 도와주었기 때문에 돈이 더 있으면 더 나눠 주고 싶다는 말입니다.
(133-180, 1984.07.10)

하나님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주고 나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도 더 주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는 사랑입니다. 주고 나서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사랑의 주인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옷을 해 입히고 나서도 더 좋은 옷을 해 입히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주면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을 통해서 보충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하게 주지만 완전한 것으로 보답해 오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큰 것으로 보태지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이는 흥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 없이는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38-327~328, 1971.01.08)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남을 위하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주적인 본질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내 사랑이 부족하여서 그렇다. 모든 것은 내가 너를 더 사랑하지 못한 탓이다’ 하면서, 그 자식의 뼛골이 녹아나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자식 앞에 나서게 될 때에, 그 자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돌아서는 것입니다. 더 큰사랑은 약한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닙니다.
(48-182~183, 1971.09.12)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그 몇 가지 요건을 들어 보겠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에게 묻겠는데 만일 여러분들을 위해서 누군가가 진정으로 생명을 다하고 희생을 다하면서 100퍼센트 은사를 베푼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의 본심이 그 은사를 갚는 데 50퍼센트는 주머니에 집어넣고 50퍼센트만 갚고 싶습니까, 아니면 있는 대로 다 갚고 싶습니까?
우리의 본심이 어떻게 작용합니까? 누구나 더 갚고 싶어 하는 것이 본심입니다. 여기 통역하고 있는 미스터 박에 대해서 내가 만약에 100퍼센트 그런 것을 줬다면, 주는 데도 진정 사랑하는 가운데서 준 것을 안다면 이 사람은 100퍼센트 이상을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100퍼센트가 110퍼센트로 돌아오고 그 110퍼센트 돌아온 것은 또 그쪽에서 진정으로 주었기 때문에 120퍼센트를 갚게 되고….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영원이라는 개념이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영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비로소 발전과 번창이 생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여러분의 가정에 있어서도 다섯 식구가 있는데 누군가가 그 다섯 식구를 위해서 살게 되면 나중엔 그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 그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같이…. 그러한 중심이 결정됨과 동시에 주체와 대상, 중심과 상대관계에 있어서의 자원적(自願的)인 주관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절대 위하는 그 주체 앞에 주관 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은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직접주관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여기에서 비로소 주종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이냐? 이상과 사랑은 인간에 있어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이런 것이 자기의 것으로서 자기에게 나타나는 줄 아는 것, 이것이 큰 오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이상은 어디에서 오느냐? 대상에게서 옵니다. 대상에게서 오기 때문에 위하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결과를 아시기 때문에 그런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여러분들이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73- 326~327, 197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