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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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조차 바침

종교 경전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 15.13 (기독교)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마태복음 20.28 (기독교)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주신 것같이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에베소서 5.1-2 (기독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물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우리는 말로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요한일서 3.16-18 (기독교)

진실로 우리는 너희를 위했고 너희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불행을 견디어 왔다. 너희는 너희를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신 분을 회피했느냐? … 너희는 그분이 적의 칼에 위협을 당할 때는 언제나 그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느냐? 또는 그분이 가장 황량한 도시에 감금된 이후에 세상의 헛된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느냐?
참으로 그분은 너희가 영광을 얻도록 스스로 굴욕을 당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무관심의 골짜기에서 즐기며 놀고 있구나. 사실상 그 분은 너희가 너희의 궁전에서 살 동안 너희를 위해 가장 황량한 처소에서 거하신다.
키타비악다스 이후 바하울라의 서판들 (바하이교)

오직 사랑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도 감행하게 만듭니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그렇습니다. 펠리아스의 딸, 알케스티스도 모든 희랍인들에게 그와 같은 증거가 됩니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을 위해 죽으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녀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플라톤, 향연 (헬레니즘)

말씀 선집

내가 생명을 바쳐 악을 굴복시키게 되면 생명을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40-243, 1971.02.06)

이웃을 위하여 내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희생정신이 곧 참사랑입니다.
(224-254, 1991.12.07)

사랑이라는 것은 희생의 본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해서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63-25, 1972.10.01)

참된 부모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자식을 사랑할 때, ‘아이고, 내 이거 전부 다 이자 쳐서 받겠다.’ 하는 마음을 가진 부모는 참부모가 아닙니다. 밤낮으로 희생을 하면서도 위하여 사랑하고, 또 하고 또 하려고 하고, 시장에 나갈 때에 거기서도 잊지 않고 더해 주려하며, 24시간 거리를 초월하여 그를 위하는 사랑이야말로 본질적인 사랑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이런 사랑의 기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기초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142-35, 1986.03.03)

사랑하는 경지에서는 모든 것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법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을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은 사망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게 될 때는, 여기서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가슴 깊이 파고들어가더라도 남자가 반대하지 않습니다. 반대합니까? 환영합니다. 남자도 그렇습니다. 천만세의 담이 막혀 있다 해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담이 있더라도 그 담을 무난히 헤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전체를 투입하고 달려드는 거기에서는 그 어떤 담도 전부 무너지는 것입니다.
(49-52, 1971.10.03)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을 복귀하기 위해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주의는 어떤 주의냐? 악한 세계를 구하고, 불쌍한 사람을 구하고, 가난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구원해 나오셨습니다. 종의 종에서부터 아들까지 제물로 삼았습니다. 원수의 족속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아들딸까지 희생시켜 나오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지금까지 이 세계를 위해서, 제일 원수의 종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제일 사랑하는 당신 편을 희생시키며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시요, 자기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계와 원수의 편을 위해서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 인류는 하나님을 푸대접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푸대접하는 현상이 벌이지고 있지만 이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33-298, 1970.08.21)

개인이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면 그는 전체 앞에 선한 사람입니다. 어떤 가정이 전체의 가정을 위해서 희생의 생활을 하면, 전체의 가정 앞에 선한 가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어떤 민족이 자기 민족보다 전체의 민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그 민족들을 위해서 총력을 기울인다면, 그 민족은 선한 민족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또 어떤 나라가 전 세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면, 그 국가는 선한 국가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를 보낸 것은 그런 뜻을 이루기 위해서 보냈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이 인류와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국가를 희생시키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시켜 나왔더라면, 기독교는 선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 시킬 수 있는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69-86~87, 1973.10.20)

참사랑은 누구나 원하는데 누구나 나를 위하라는 감정이 있게 되면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주의는 사탄의 전략이요, 사탄의 목적입니다. 세속적인 세계에서는그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붙여준 열매요, 지옥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위해 주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게 봉사 하게 되면 이 모든 전부가 와서 나를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라’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이 걸작품 전부를 품고 사랑하던 것처럼 위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세 번 이상 생명을 바치고도 위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렇게 세 번 죽어서도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에게 ‘나 알아주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겠습니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 알아주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이 되면 지상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그런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300-223, 199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