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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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주 창조에서 모든 것을 투입하신 하나님

종교 경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9 (기독교)

천지는 영원무궁하다. 천지가 영원무궁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도를 체득한 성인은 자신을 남보다 뒤로 돌림으로써 남보다 앞에 나서게 되고, 자신을 잊고 남을 위함으로써 자신이 영원히 있게 된다.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영원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니라.
도덕경 7 (도교)

옛날 창조자 프라자파티는 인간과 더불어 사심 없는 봉사의 의무를 지어낸 후 말했다. “사심 없는 봉사로 너희는 번성할지어다. 너희의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리라.”
일체의 사심 없는 행위는, 오, 아르주나여! 영원 무한한 신성으로부터 일어남을 알라! 또한 신은 모든 봉사의 행위와 함께 거하나니 모든 삶은 이법을 지향하느니라. 오, 아르주나여! 자신의 쾌락을 위해 감각적 대상들을 탐닉하고 남의 아픔을 외면하며 이 법을 어기는 자는 누구나 헛되이 사는 것이니라.
그러나 내면에 있는 신을 깨달은 자들은 언제나 스스로 족하다. 내면에서 기쁨과 성취의 원천을 발견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외계 대상에서 기쁨을 구하지 않느니라. 무엇을 하든 그들은 잃는 것도 얻는 것도 또한 없나니, 아무도 아무것도 그들의 흔들리지 않음을 어찌 할 수 없느니라.
뛰어난 자가 하는 일은 다른 이들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세운 기준은 온 세상에 따르게 되리라. 오, 아르주나여! 삼계에서 내가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얻어야 하나 얻지 못한 것 또한 없느니라.
나는 여전히 행위에 임하지만 나 자신의 필요에 내몰리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지속적인 행위를 멀리 한다면 사람들이 나의 예를 따를 것이며, 만일 내가 행위를 멈춘다면 세상은 혼돈으로 내몰릴 것이며, 이로써 온 세계와 온 인류가 파멸에 이르리라.
일체 만유의 복지를 증장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라. 집착 없이 행하라. 사심 없는 봉사와 헌신은 구극의 경지를 얻게 하느니라. 마음속에 언제나 다른 이들의 복지와 안녕을 생각하며 자신의 일을 행하라. 지나카 왕이 완성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사심 없는 행위를 통해서였으며, 다른 이들도 또한 이러하였느니라.
무릇 무지한 자들은, 아르주나여! 다만 자신의 유익함을 구하여 행하되 지혜로운 자들은 사심 없이 일체 만유의 복지를 위해 행하느니라. 행위를 포기함으로써 행위에 집착하는 무지한 자들을 혼란으로 내몰지 말라. 자비와 사랑으로 그들이 행위 속에서 행위를 즐기면서 또한 행위에 집착하지 않도록 할지어다.
바가바드기타 3.10-26 (힌두교)

프라자파티의 세 자손, 즉 신들, 인간, 악마들은 거룩한 지식을 구하는 학생으로서 그들의 아버지 프라자파티와 살았다.
거룩한 지식을 구하는 학생기를 마친 후, 신들이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희에게 말해주소서.”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다”라는 음절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저희는 이해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자제하라’(단야타)고 말했습니다.” “옴, 너희는 바르게 이해했다.” 그가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희에게 말해주소서.” 그는 그들에게 “다”라는 음절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저희는 이해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베풀어라’(닷타)고 말했습니다.” “옴, 너희는 바르게 이해했다.” 그가 말했다.
그러자 악마들이 그에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희에게 말해주소서.” 그는 그들에게 “다”라는 음절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저희는 이해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자비심을 지녀라’(다야드왐)고 말했습니다.” “옴, 너희는 바르게 이해했다.” 그가 말했다.
여기서 신의 목소리로 똑같이 “다! 다! 다!” 즉 “자제하라, 베풀어라, 자비심을 지녀라” 하고 천둥친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즉 자제, 보시,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5.2.2 (힌두교)

말씀 선집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냐? 우주의 공법을 지닌 존재입니다. 우주의 공법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 속성은 뭐냐?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지니는 것입니다.
(105-99, 1979.09.30)

사랑은 자기를 백 퍼센트 투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사랑 때문에 모두, 백 퍼센트를 투입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위해서, 참사랑은 위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189-203, 1989.04.06)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로 인간을 지으신 것은, 당신이 인간을 위하는 입장에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도 하나님을 본받아 위하여 존재하게 되어 있었는데, 타락으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위해서 살라’는 철리(哲理)가 생겨난 것입니다.
(149-273. 1986.11.27)

하나님이 백 만한 것을, 백 퍼센트 만한 것을 가지고 사랑하면 상대가 백 퍼센트밖에 안 나옵니다. 일대일입니다. 이것이 무한배수가 되니 백 퍼센트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이게 자꾸 높아집니다. 투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가지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우주 창조의 원칙, 존재하는 세계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 데서 참사랑이 시작됩니다. 참사랑을 위해서는 자기 생명을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결속된 세계가 참사랑의 세계입니다.
(253-66, 1994.01.07)

하나님의 창조의 원칙이 무엇인가? 창조는 하나님 자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 결과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진실 되게 투입해야 되겠습니다. 진실 되게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실 되게 주는 데서만이 미래의 자기의 상대가 벌어지는 것이요, 자기의 발판이 형성되는 것이요, 나를 입증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받는 데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 원칙에 없습니다.
(82-323, 1976.02.01)

창조역사를 한다는 것은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창조란 힘을 소모시키는 것입니다. 투입했는데 얼마나 투입했느냐?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어! 이래라’ 해서 장난 식으로 창조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에는 참된 생명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사랑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이상을 완전히 투입한 것입니다.
창조하기 전과 창조하고 난 후가 다른 것입니다. 창조하기 전에는 자기를 생각했지만 창조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상을 위하는 시대로 절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있다, 아들딸을 위해 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하나님은 상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완전 투입함으로 말미암아 보다 가치적이고 이상적인 완전형을 전개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는 아담 해와를 위해서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던 때에서 상대를 위하는 때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상적 존재라는 것은 자기를 위주하지 않습니다. 이상적 존재는 남을 위하는 데에, 대상을 위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원칙이 우주의 근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69-82, 197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