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별적 차이 배후의 보편적인 것
종교 경전
그 때 한 무리의 제자들이 세존께로 다가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여기 사밧티 거리에는 끊임없이 논쟁하기를 즐겨하는 온갖 유행자들과 논사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세계는 영원하고 무한한 것이라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세계란 유한하며 영원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소멸한다고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육신이 멸한 후에도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하는 등등의 말을 합니다. 스승이시여, 그들에 대하여 당신은 무엇이라 할런지요?”
세존께서 답하셨다. “옛날 어떤 왕이 있었는데, 하루는 신하에게 명하였다. ‘여봐라! 가서 사밧티에 살고 있는 모든 소경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라!… 그리고 그들에게 코끼리를 보여주도록 하라!’ ‘예, 폐하!’ 하고 신하가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는 왕이 명한 대로 행하였다.
신하가 그곳에 모인 소경들에게 ‘여기에 코끼리가 있다’고 말하며 어떤 소경에게는 코끼리의 머리를 만지게 하고, 어떤 소경에게는 발을, 또 어떤 소경에게는 등을 만지게 하였으며, 어떤 소경에게는 꼬리를, 또는 어떤 소경에게는 꼬리 끝을 만져보게 하였다.”
“소경들이 코끼리의 각 부위를 더듬어보기를 다하였을 때, 왕이 그들 각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소경들이여, 그대들은 코끼리를 만져보았는가? 나에게 말해보도록 하라! 코끼리란 어떤 것이던가?”
“그러자 코끼리의 머리를 더듬어본 소경들이 말하기를, ‘폐하! 코끼리는 마치 단지처럼 생겼나이다’ 하였다. 코끼리의 귀를 더듬어본 소경들은 대답하기를, ‘폐하! 코끼리는 마치 키(箕)처럼 생겼나이다’ 하였으며, 코끼리의 이빨을 더듬어본 소경들은 대답하기를, ‘폐하! 코끼리는 마치 쟁깃날처럼 생겼나이다’ 하였다.
코끼리의 코를 더듬어 본 소경들은 대답하기를, ‘폐하! 코끼리는 마치 보습처럼 생겼나이다’ 하였다. 코끼리의 몸통을 더듬어본 소경들은 곡식창고, 다리를 더듬어본 소경들은 베개, 등을 더듬어본 소경들은 회반죽, 꼬리를 더듬어본 소경들은 절구공이, 꼬리 끝을 더듬어본 소경들은 빗자루 같다고 각각 대답하였다.”
“소경들은 ‘코끼리란 이와 같은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언쟁하며 마침내 서로 주먹질 하며 다투게 되었다.” “마치 그와 같으니, 외도에 속한 유행자들은 눈이 없어 앞을 보지 못하며 참된 뜻을 알지 못하고… 진실은 이러 이러하다고 우기며 서로 논쟁을 일삼고 있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우다나를 노래하시며 그 진의를 나타내셨다. 오, 바라문이라 사문이라 스스로 칭하는 자들, 그들은 얼마나 집착하고 싸우는가! 각자의 견해에 탐착하기에 그들이 서로 싸우느니, 그와 같은 무리들은 사물의 한 측면만을 보도다.
우다나 68-69: 소경과 코끼리의 우화 (불교)
인도인 몇몇이 전시용으로 코끼리를 데리고 와서 어두운 집에 가뒀다. 군중이 그 짐승을 보기 위해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구경꾼들은 어둠 속에서 한 사람씩 손으로 짐승을 더듬었다.
한 사람의 손이 코끼리의 코를 만졌다. “이 생물은 물줄기 같군!” 하고 그가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의 손은 코끼리의 귀에 닿았다. 그 사람에게 그 짐승은 분명히 프라이팬 같았다.
또 다른 사람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졌다. “나는 코끼리 모양이 기둥 같구만!” 하고 그가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코끼리의 등을 만졌다. “분명히 이 코끼리는 왕좌같이 생겼어” 하고 그가 말했다.
감각의 눈은 손바닥과 같다. 손바닥은 짐승 전체를 덮을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바다의 눈은 하나이고 거품은 또 다르다. 거품이 떠가게 내버려 두고 바다의 눈으로 응시하라. 밤낮으로 거품 조각이 바다에서 부서진다. 놀랍지 아니한가! 너희는 바다가 아니라 거품을 주시한다.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보트와 같다. 우리의 눈은 어두웠으나 깨끗한 물에 있다.
자랄 앗 딘 룻딘, 마스나비 3.1259-1272 (이슬람)
한 무슬림과 한 유태인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무슬림이 말하길, “그분께서 이 세상에 무함마드를 선택하셨도다” 하니, 유태인이 “그분께서 이 세상에 모세를 선택하셨도다”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무슬림이 손을 들어 유태인의 얼굴을 때렸다. 그 유태인이 예언자[무함마드]에게 가서 그와 무슬림 사이에 일어난 경위를 고하자, 예언자가 무슬림을 불러 그 일에 대해 물었다.
무슬림이 말을 하자 예언자가 말했다. “나를 모세 우위에 놓지 말라. 왜냐하면 인류는 부활의 날에 모두 의식을 잃을 것이고 나도 그들과 함께 의식을 잃게 될 것이라. 나는 제일 먼저 깨어나 권좌 옆을 차지하고 있는 모세를 보게 되리라. 나는 그가 나보다 먼저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자들 중 하나인지, 하나님이 예외로 두신 자들 중 하나인지 모를 지니… 예언자들 사이에 차이를 두지 말지어다.”
부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 (이슬람)
어떤 이들은 주께 ‘라마’라고 외치며, 어떤 이들은 ‘투다’라고 외친다. 어떤 이들은 그를 ‘고사인’으로, 어떤 이들은 ‘알라’로 경배하도다. 그는 토대 중의 토대이며, 아낌없이 주는 자요, 인정 많고 자비로운 이라. 힌두는 그를 얻고자 성스런 물에 목욕하며, 무슬림은 메카를 순례하도다.
힌두는 푸자를 행하며, 다른 이들은 나마즈에 머리 숙여 절하도다. 베다를 낭송하는 자들이 있으며, 다른 이들—기독교도, 유태교도, 무슬림—은 셈족의 경전을 외우도다. 어떤 이들은 푸른 법복을 입고, 어떤 이들은 흰 법복을 입으며, 어떤 이들은 자신을 무슬림이라 칭하며, 또 어떤 이들은 스스로 힌두라 칭하도다.
어떤 이들은 바히사트[무슬림의 천국]을 열망하고, 어떤 이들은 스와가[힌두의 천국]을 간구하도다. 나나크가 말하노니, 주의 뜻을 실현하는 자는 누구나 주의 비밀을 알리라!
아디 그란트, 람칼리, M.5, p. 885 (시크교)
고타미드여, 무슨 가르침이든지 그대는 이와 같이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의들이야말로 마음의 고요함이 아니라 들뜸, 집착에서 벗어남이 아니라 집착에 사로잡힘, 세속적인 것들의 감소가 아니라 증가, 검약이 아니라 탐욕, 만족이 아니라 불만족, 고독이 아니라 벗들과 어울림, 원기 왕성함이 아니라 굼뜸, 선한 일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일에 즐거워하게 하는 것이다.”
고타미드여, 이와 같은 가르침들에 대하여 이렇게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른 규준이 아니다. 이것은 수행이 아니다. 이것은 스승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러나 무슨 가르침이든지 그대는 이와 같이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의들이야말로 마음의 들뜸이 아니라 고요함에 이르게 하고… 고요함이 아니라 들뜸, 악한 일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에 즐거워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들에 대하여 이렇게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른 규준이다. 이것은 바른 수행이다. 이것은 스승의 메시지이다.”
비나야 피타카 2.10 (불교)
말씀 선집
모든 문화에서 종교는 중심핵이어야 했고 공의의 표준이어야 했습니다. 각 종교들은 자기 자신들의 전통을 끊임없이 지켜온 것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는 자신의 종교를 다른 모든 종교보다도 우수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가르침은 우주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234-222, 1992.08.20)
유감스럽게도 오늘에 이르러서는 종교는 종류의 여하를 막론하고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기능과 인간정신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종교는 점점 그 생명을 잃어가고 있으며 신앙은 점점 더 형식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제 종교로부터 점점 관심이 멀어져 가고 있으며 열화같이 타올라야 할 신앙본연의 자세는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중대한 사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정신을 선도해야 할 종교가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을 때, 세계는 무법천지로 화하여 인류는 온갖 폭력과 난행과 살육의 바다 속으로 빠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지로 오늘날 그 같은 현상들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공산주의의 책략에 의하여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종교적 가치관의 붕괴현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붕괴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첫째, 과학기술의 발달과 경제성장 등으로 인간정신이 물질주의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요, 둘째, 공산주의를 위시한 각종의 무신론과 유물론사상이 급속히 또 광범하게 만연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요, 셋째, 정교 분리의 이름 밑에 국가의 교육 정책에 있어서 종교를 교과목에서 배제함으로써 어렸을 때부터 무신론사상을 주입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요, 넷째, 공산주의자들이 적화공작을 위해서 그나마 남아 있는 가치관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요, 그리고 다섯째, 종교적 가치관을 이론적으로 수호해야 할 확고한 본체론이 결여된 때문입니다.
(122-300~301, 1982.11.25)
인간들이 사는 데 있어서 세상에서는 평면적으로 살기 때문에 옆으로 보면 종교는 다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배후를 따져 보면,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종의 종의 종교권이 있었고, 종의 종교권이 있었고, 그리고 양자·서자·직계 자녀·어머니의 종교·아버지의 종교를 거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성립됩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그 내용은 무엇이냐? 내용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라 하는 말, 하나님을 절대 주인으로 모셔라 하는 말인데 그 내용은 다 같다는 것입니다. 대동소이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내용을 보고는 그 단계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다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종교를 다 마찬가지로 보고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시대를 보면 복귀섭리는 끝 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작에서부터 끝 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143-75, 1990.12.09)
선악이라는 것은 생각 가운데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생활권내에서 결정되어집니다. 천국과 지옥이 여러분의 관념 세계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무대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40-294~295, 1971.02.07)